본고는 박정희 정권기 국가주도 건설기술용역회사의 성립과 의미를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식민지 시기 기술의 연속성과 이를 매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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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박정희 정권기 국가주도 건설기술용역회사의 성립과 의미를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식민지 시기 기술의 연속성과 이를 매개로 ...
본고는 박정희 정권기 국가주도 건설기술용역회사의 성립과 의미를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식민지 시기 기술의 연속성과 이를 매개로 한 한일 기술협력의 형성을 고찰한다. 특히 일제시기 식민지 조선에서 활동했던 일본 기술자들이 해방 이후 남한의 국가 재건 과정에 참여한 양상을 추적하여, 기술과 지식의 단절이 아닌 재편과 이전의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남한은 산업·인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사회간접자본 재건을 추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기술용역업체의 난립과 미국 원조 의존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냉전기 미국의 제3세계 개발 모델이자, 후발산업국의 전후 재건 모델로 인식된 TVA 사업은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에 도입되었다.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실천한 대표적 사례가 박정희 정권기 반관반민 국책회사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였다.
본고는 TVA 사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 한국과 일본 두 후발산업국에서 국가 재건의 핵심 수단으로 작동하였음을 밝힌다. 일본이 전전부터 축적된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전후 배상역무와 해외 진출을 통해 자본과 기술을 확장한 반면, 한국은 기술과 지식이 부족한 조건 속에서 일본 기술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이전과 축적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한일 기술협력의 형성 과정은 1960년대 한일기본조약을 전후한 국가 재건 전략과 긴밀히 연동되어 전개되었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식민지 기술의 연속성과 탈식민적 국가 재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제도적 장치로서, 박정희 정권기 국가주도 개발과 한일 기술협력의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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