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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箱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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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8012507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1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한양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2001

      • 발행연도

        2001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iv, 159 p. : ; 26 cm.

      • 일반주기명

        권두에 국문요지 수록
        Abstract :p. 154-159
        참고문헌 :p. 147-153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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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의여자대학교 학술정보센터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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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소장기관정보
        •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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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상 문학에 대해 육 백 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들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을 발생시키는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배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 특히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은 몸으로 말해진 혹은 몸으로 구현된 실체들이다. 몸으로 근대 및 근대성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의 소설이 근대 및 근대성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이 근대의 현상과 본질, 인식과 실천, 의식과 무의식, 과정과 실재 등을 모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고에서는 몸 체험에 주목하여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을 탐구해 보았다.
      먼저 Ⅱ장에서는 이상 소설 해석의 토대가 되는 몸에 대한 개념 및 그것이 어떻게 텍스트를 발생시키고 또 그것이 어떻게 근대성과 관련되는 지를 살펴보았다. 몸은 그 특성상 역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이것은 소설의 말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육화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몸은 텍스트와 발생론적인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Ⅲ장에서는 이상 소설의 말하기 주체가 보여주는 자신의 주관화된 각혈하는 몸과 그것을 객관화하고 타자화 한 창부의 몸을 통해 어떻게 근대성을 발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말하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 다시 말하면 피를 쏟으면서 점점 탕진되어 가는 몸을 통해서는 육체와 정신의 아이러니와 페러독스, 자기 소외라는 이중화된 근대의 구조와 근대적인 실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읽어낼 수 있었다. 말하기 주체 자신의 몸을 통해 발견한 이러한 근대성은 그것을 타자화 한 창부의 몸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반면 거울 역할을 하고 있는 창부의 몸에서 발견한 것은 독화(毒花)의 이중성과 아무리 벗겨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욕망의 응결체로서의 양파의 이미지, 그리고 몸에 의한 소통의 단절과 물신화라는 근대의 특성이다.
      말하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과 그것을 타자화 한 창부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은 모두 근대의 본질에 닿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중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대는 이미 출발부터가 이중적이었다. 이를테면 근대를 성립시킨 계몽이성이 자유로운 인간의 탄생을 가져온 동시에 인간에게 새로운 압제와 질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거나 주체성의 원리에서 비롯된 지복(至福)의 자유가 인륜적 조화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점, 혹은 자연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계몽의 형식 바로 그것 속에 인간을 복속 시키는 야만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 등은 근대의 이중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본질을 내장하고 있는 이러한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작가의 근대에 대한 통찰이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것이 관념이나 인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몸으로 체험한 근대 및 근대성은 Ⅳ장에 오면 그것은 좀더 확장된 모습으로 드러난다.Ⅲ장에서의 몸과 근대 및 근대성의 발생론적인 인과성이 주로 말하기 주체 개인의 인식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Ⅳ장에서의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실천의 양태로 드러난다. 몸이 골방에서 근대적인 도시 공간인 경성으로 즉흥적인 걷기를 단행한다는 것은 몸으로 근대의 조감도를 작성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흥적인 걷기를 통해 회탁(灰濁)으로 표상 되는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인 근대의 조감도를 작성해 냄으로써 말하기 주체는 우리의 근대 및 근대성의 한계는 물론 그것 일반에 대한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것의 강렬한 표상이 바로 추상화되고 인공화 된 날개를 통해 드러나는 비상 욕망이다. 이 비상 욕망은 추상적이고 인공화 된 세계로의 도피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 서려고 하는 그런 욕망으로 보아야 한다. 진정한 근대에 대한 욕망은 경성에서 동경으로의 공간 이동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지만 여기에서 체험한 결은 환상이 아니라 환멸이다.
      공간의 이동을 통한 근대 및 근대성의 확장 욕망의 좌절은 Ⅴ장에 와서는 새롭게 변주되기에 이른다. 이것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점점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다. 몸의 죽음은 곧 이상이 추구해온 근대적인 기획에 대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말하기 주체는 자신의 몸에서 몸을 분리하는 이른바 자기 시체화를 단행한다. 이 자기 시체화는 현존하면서 부재하고 부재하면서 현존하는 세계의 이중적인 존재성을 극대화하면서 기존의 불완전한 근대 및 근대성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불완전한 근대 및 근대성을 해체하고 궁극적으로 말하기 주체가 욕망 한 것은 몸의 회복과 융화 내지 통합의 근대성이다. 몸의 회복이란 시각중심주의적인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느낌이라든지 접촉과 같은 감각의 총체성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에서는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은 소외되고 배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국부적인 감각이 아니라 온몸에 의한 감각은 그 감각의 대상과 인접한 거리 안에 있지 않으면 포착될 수 없다. 온몸에 의한 감각은 모든 대상을 하나로 뒤섞고 녹여버림으로써 몸의 분리나 분화가 아닌 통합이나 융화를 감각화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임종시에 말하기 주체가 체험한 “全身의 가려움증” 통합과 융화의 논리를 배제한 채 분열과 분화의 논리만을 극대화하고 있는 근대적인 기획이 가지는 불안함과 불완전함을 넘어서려고 한 징표로 볼 수 있다.
      이상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그 자체가 한편의 몸의 드라마인 동시에 근대성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몸으로 말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의 근대나 근대성이 가지는 특수한 측면은 물론 근대 일반의 보편적인 측면을 탐색했던 것이다. 근대 및 근대성을 탐구하면서 그가 몸을 토대로 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 세기까지 자명성의 원천으로 군림했던 자아 또는 주체를 몸에 대한 사유 속에 재창출하고 우리의 존재 이해를 재형성하는 것을 진정한 근대성이라는 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소설이나 그의 문학을 논하면서 자아의 분열 양상을 강조하여 그를 마치 분열증 환자 취급을 한다거나 전기적인 사실을 강조하여 그를 창백한 정신의 표면을 유랑하며 권태와 회의에 깊게 빠져 결국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 혹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세계로 도피하려고 한 무미건조한 스타일리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 대한 관심이 모더니즘이나 근대 및 탈근대 논의와 맞물려 확산일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 인식론적인 차원에서의 지적 유희만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의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수영도 박태진의 시를 평하면서 진정한 현대성은 육체적인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는 발설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온몸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시쓰기의 고전처럼 간주되고 있다. 김수영을 진정한 모더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도 따지고 보면 그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모던한 감각에 있다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현대성과 육체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수영이 현대성과 육체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라고 단정할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이것은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언어 이전의 몸의 고통이 텍스트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몸으로 말하고 사유한다는 인식이 덜 육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이 이상의 문학에 대해 사회의식의 결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가 몸으로 말하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말하는 진정한 현대성 혹은 현대주의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상의 소설과 이상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근대에 놓여 있으며, 앞으로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이행된다고 하더라도 이상이 보여준 몸과 근대성의 문제는 세계 이해의 중요한 토대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상의 소설에서 보여준 몸과 근대성의 문제는 그의 시, 수필은 물론 우리 문학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 더 나아가 탈근대 및 탈근대성을 논하는데 하나의 확실한 준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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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문학에 대해 육 백 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들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을 발생시키는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배제해 왔기 때...


      이상 문학에 대해 육 백 여 편에 달하는 많은 글들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을 발생시키는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배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 특히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은 몸으로 말해진 혹은 몸으로 구현된 실체들이다. 몸으로 근대 및 근대성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의 소설이 근대 및 근대성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이 근대의 현상과 본질, 인식과 실천, 의식과 무의식, 과정과 실재 등을 모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고에서는 몸 체험에 주목하여 그의 소설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을 탐구해 보았다.
      먼저 Ⅱ장에서는 이상 소설 해석의 토대가 되는 몸에 대한 개념 및 그것이 어떻게 텍스트를 발생시키고 또 그것이 어떻게 근대성과 관련되는 지를 살펴보았다. 몸은 그 특성상 역동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이것은 소설의 말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육화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몸은 텍스트와 발생론적인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Ⅲ장에서는 이상 소설의 말하기 주체가 보여주는 자신의 주관화된 각혈하는 몸과 그것을 객관화하고 타자화 한 창부의 몸을 통해 어떻게 근대성을 발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말하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 다시 말하면 피를 쏟으면서 점점 탕진되어 가는 몸을 통해서는 육체와 정신의 아이러니와 페러독스, 자기 소외라는 이중화된 근대의 구조와 근대적인 실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읽어낼 수 있었다. 말하기 주체 자신의 몸을 통해 발견한 이러한 근대성은 그것을 타자화 한 창부의 몸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반면 거울 역할을 하고 있는 창부의 몸에서 발견한 것은 독화(毒花)의 이중성과 아무리 벗겨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욕망의 응결체로서의 양파의 이미지, 그리고 몸에 의한 소통의 단절과 물신화라는 근대의 특성이다.
      말하기 주체 자신의 각혈하는 몸과 그것을 타자화 한 창부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은 모두 근대의 본질에 닿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중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대는 이미 출발부터가 이중적이었다. 이를테면 근대를 성립시킨 계몽이성이 자유로운 인간의 탄생을 가져온 동시에 인간에게 새로운 압제와 질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거나 주체성의 원리에서 비롯된 지복(至福)의 자유가 인륜적 조화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점, 혹은 자연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계몽의 형식 바로 그것 속에 인간을 복속 시키는 야만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 등은 근대의 이중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본질을 내장하고 있는 이러한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작가의 근대에 대한 통찰이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것이 관념이나 인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몸으로 체험한 근대 및 근대성은 Ⅳ장에 오면 그것은 좀더 확장된 모습으로 드러난다.Ⅲ장에서의 몸과 근대 및 근대성의 발생론적인 인과성이 주로 말하기 주체 개인의 인식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Ⅳ장에서의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실천의 양태로 드러난다. 몸이 골방에서 근대적인 도시 공간인 경성으로 즉흥적인 걷기를 단행한다는 것은 몸으로 근대의 조감도를 작성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흥적인 걷기를 통해 회탁(灰濁)으로 표상 되는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인 근대의 조감도를 작성해 냄으로써 말하기 주체는 우리의 근대 및 근대성의 한계는 물론 그것 일반에 대한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것의 강렬한 표상이 바로 추상화되고 인공화 된 날개를 통해 드러나는 비상 욕망이다. 이 비상 욕망은 추상적이고 인공화 된 세계로의 도피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 서려고 하는 그런 욕망으로 보아야 한다. 진정한 근대에 대한 욕망은 경성에서 동경으로의 공간 이동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지만 여기에서 체험한 결은 환상이 아니라 환멸이다.
      공간의 이동을 통한 근대 및 근대성의 확장 욕망의 좌절은 Ⅴ장에 와서는 새롭게 변주되기에 이른다. 이것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점점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다. 몸의 죽음은 곧 이상이 추구해온 근대적인 기획에 대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말하기 주체는 자신의 몸에서 몸을 분리하는 이른바 자기 시체화를 단행한다. 이 자기 시체화는 현존하면서 부재하고 부재하면서 현존하는 세계의 이중적인 존재성을 극대화하면서 기존의 불완전한 근대 및 근대성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불완전한 근대 및 근대성을 해체하고 궁극적으로 말하기 주체가 욕망 한 것은 몸의 회복과 융화 내지 통합의 근대성이다. 몸의 회복이란 시각중심주의적인 감각으로부터 벗어나 느낌이라든지 접촉과 같은 감각의 총체성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에서는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은 소외되고 배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국부적인 감각이 아니라 온몸에 의한 감각은 그 감각의 대상과 인접한 거리 안에 있지 않으면 포착될 수 없다. 온몸에 의한 감각은 모든 대상을 하나로 뒤섞고 녹여버림으로써 몸의 분리나 분화가 아닌 통합이나 융화를 감각화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임종시에 말하기 주체가 체험한 “全身의 가려움증” 통합과 융화의 논리를 배제한 채 분열과 분화의 논리만을 극대화하고 있는 근대적인 기획이 가지는 불안함과 불완전함을 넘어서려고 한 징표로 볼 수 있다.
      이상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그 자체가 한편의 몸의 드라마인 동시에 근대성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몸으로 말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의 근대나 근대성이 가지는 특수한 측면은 물론 근대 일반의 보편적인 측면을 탐색했던 것이다. 근대 및 근대성을 탐구하면서 그가 몸을 토대로 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지난 세기까지 자명성의 원천으로 군림했던 자아 또는 주체를 몸에 대한 사유 속에 재창출하고 우리의 존재 이해를 재형성하는 것을 진정한 근대성이라는 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소설이나 그의 문학을 논하면서 자아의 분열 양상을 강조하여 그를 마치 분열증 환자 취급을 한다거나 전기적인 사실을 강조하여 그를 창백한 정신의 표면을 유랑하며 권태와 회의에 깊게 빠져 결국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 혹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세계로 도피하려고 한 무미건조한 스타일리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 대한 관심이 모더니즘이나 근대 및 탈근대 논의와 맞물려 확산일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 인식론적인 차원에서의 지적 유희만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의 본질적인 토대인 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수영도 박태진의 시를 평하면서 진정한 현대성은 육체적인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는 발설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온몸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시쓰기의 고전처럼 간주되고 있다. 김수영을 진정한 모더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도 따지고 보면 그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모던한 감각에 있다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현대성과 육체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수영이 현대성과 육체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라고 단정할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이것은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언어 이전의 몸의 고통이 텍스트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몸으로 말하고 사유한다는 인식이 덜 육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이 이상의 문학에 대해 사회의식의 결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가 몸으로 말하기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말하는 진정한 현대성 혹은 현대주의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상의 소설과 이상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근대에 놓여 있으며, 앞으로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이행된다고 하더라도 이상이 보여준 몸과 근대성의 문제는 세계 이해의 중요한 토대로 존재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상의 소설에서 보여준 몸과 근대성의 문제는 그의 시, 수필은 물론 우리 문학이 드러내는 근대 및 근대성, 더 나아가 탈근대 및 탈근대성을 논하는데 하나의 확실한 준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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