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리소르지멘토와 20세기 반파시즘에 나타난 이탈리아의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유사점과 차이점, 공화주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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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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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리소르지멘토와 20세기 반파시즘에 나타난 이탈리아의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유사점과 차이점, 공화주의적...
본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리소르지멘토와 20세기 반파시즘에 나타난 이탈리아의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유사점과 차이점,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다양성과 모순,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문화적 토양으로서 자유의 정치 문화 혹은 "자유의 종교", 나아가 세계화 시대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전망 등 다양한 쟁점들을 논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방법은 비롤리 등에 의해 발전된, 마키아벨리적인 의미에서의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이론적 프리즘을 채택하고 이를 이탈리아 근현대사에 실제로 투영해봄으로써 애국심의 이론과 역사를 비판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상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1년차 연구는 마치니(Giuseppe Mazzini)와 카타네오(Carlo Cattaneo)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급진파의 애국심을 고찰한다. 마치니와 카타네오는 공히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챔피언들이었지만, 마치니는 "신과 민중"이라는 즐겨 사용한 표현에서도 나타나듯이 종교적 언어를 구사한 반면, 카타네오는 산업과 자본주의라는 과학적 언어를 선호했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마치니와 카타네오는 공히 유럽의 연방주의적 통합을 추구했지만, 마치니는 이탈리아의 중앙집권적 통일을 주창한 반면, 카타네오는 폭넓은 지방 자치에 바탕을 둔 이탈리아의 연방주의적 통일을 제안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마치니와 카타네오의 사례는 리소르지멘토 급진파의 애국심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모순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년차 연구에서는 리소르지멘토에 대한 최근 연구 경향을 반영하여 온건파와 급진파의 날카로운 구별을 지양하고 오히려 양자가 공동의 정치 문화에 바탕을 두고 발전한 측면을 비중있게 제시해보고자 한다. 최근 반티(Alberto M. Banti)와 파트리아르카(Silvana Patriarca) 등 일군의 뛰어난 역사가들은 당시 리소르지멘토 시대 이탈리아 안팎에서 전개된 이탈리아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특정한 담론이 당시 온건파와 급진파에 공히 영향을 미쳤음을 꿰뚫어보았다. 본 연구에서도 이들의 연구를 참조하여 리소르지멘토 애국심에 제한을 가하고 한계를 설정한 공동의 정치 문화의 형성 과정을 탐색해볼 것이다.
2년차 연구는 로셀리(Carlo Rosselli)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파시즘의 애국심을 살펴본다. 로셀리는 마치니주의자에서 출발하여 이른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사상에 도달한 이론가이자 '정의와 자유'라는 비타협적인 반파시스트 단체를 지도한 활동가였다. 그는 파시즘이 조국과 애국심의 담론을 독점한 상황에서 '파시스트 조국'의 의식적인 반역자가 될 것을 주문하고 '또 다른 이탈리아'에 대한 대안적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했다. 우리는 로셀리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파시스트 애국심과 대안적 반파시스트 애국심이 갈등하고 경쟁하는 흥미로운 역사적 국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년차 연구에서는 로셀리의 이론과 실천이 전후 이탈리아적 상황에서 얼마나 현실성 있는 기획이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일찍이 철학자 크로체(Benedetto Croce)는 파시즘의 패망 이후 이탈리아에서 '자유'는 회복되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amore della patria)'은 회복되지 못했다고 개탄한 바가 있다. 즉 파시즘을 경험한 전후 이탈리아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은 자칫 파시즘을 떠올리게 할지도 몰랐고, 그러했기에 애국심은 부지불식간에 기피되고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와 애국심을 결합시키고자 했던 로셀리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은 그만큼 의미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해방 국면에서 한때 유망한 정치적 전망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결국 전후 기민당(DC)과 공산당(PCI)라는 거대 정치 세력들의 틈바구니에서 좌절되었다. 그런 점에서 로셀리가 추구한 길은 당대 이탈리아적 상황에서 대단히 '좁은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곧 시민적, 정치적 자유와 애국적 열정을 결합시키는 정치적 기획 자체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본 연구는 1, 2년 차 연구를 통해 마치니, 카타네오, 로셀리 등 일급의 이탈리아 지식인들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보여준 역사적 다양성과 한계를 면밀하게 추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조국', '민족', '자유' 등 핵심어들에 대한 이들 지식인들의 이해를 통해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역사적 형태를 재구성해본다. 또한 이들 지식인들의 구상 속에서 (무조건적인 종족적, 인종적 단일성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조건적인 시민적, 정치적 자유에의 헌신을 애국적 열정과 결합시켜주는 자유의 정치 문화 혹은 "자유의 종교"가 어떤 형태를 띠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