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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佛敎禪敎兩宗과 朝鮮佛敎禪宗의 종헌 비교 연구 = Comparative Study for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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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일제시대 불교계에서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종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을 비교해 보았다. 이 두 종단의 설립은 총독부가 1920년부터 실시한 문화정치로 인하여 문화단체설립이 허용됨에 따라 시작된 불교계의 통일기관 설립운동과 맞닿아 있다. 두 종단 모두 설립의 주체 세력은 청년 승려들이었다. 청년 승려들은 불교계의 현실이 종단도 없고, 종헌도 없으며, 집행기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승려들의 행동 양식을 규율할 수 있는 법령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와 법규를 제정하지 않고는 불교계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서 승려대회를 발의하게 되었다. 1929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는 약 두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불교계의 근간을 이루는 종헌을 제정하고, 입법기관인 종회를 설치하고 중앙집행기관인 중앙교무원을 성립시켰다.
      조선불교 선종 창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승려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비구승들이다. 이들은 일본 불교의 유입으로 대처승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계율을 지키고, 선 수행을 통하여 정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은 조선불교선교양종의 주류를 이루던 대처승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전통 강원에서 수학하였거나 선방에서 선 수행에 전념하였던 선승들이었다.이들 가운데는 해방 이후 이른바 정화운동에 주역들이 많았으며, 종정을 지낸 승려들도 있다.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공통점은 두 종단 모두 식민지 상황에서 자주권을 획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조선불교선교양종은 현실적으로 움직이면서 교단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였고, 조선불교 선종은 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정법을 구현하려고 하였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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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일제시대 불교계에서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종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을 비교해 보았다. 이 두 종단의 설립은 총독부가 1920년부터 실시한 문화정치로 ...

      이 논문은 일제시대 불교계에서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종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을 비교해 보았다. 이 두 종단의 설립은 총독부가 1920년부터 실시한 문화정치로 인하여 문화단체설립이 허용됨에 따라 시작된 불교계의 통일기관 설립운동과 맞닿아 있다. 두 종단 모두 설립의 주체 세력은 청년 승려들이었다. 청년 승려들은 불교계의 현실이 종단도 없고, 종헌도 없으며, 집행기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승려들의 행동 양식을 규율할 수 있는 법령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와 법규를 제정하지 않고는 불교계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서 승려대회를 발의하게 되었다. 1929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는 약 두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불교계의 근간을 이루는 종헌을 제정하고, 입법기관인 종회를 설치하고 중앙집행기관인 중앙교무원을 성립시켰다.
      조선불교 선종 창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승려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비구승들이다. 이들은 일본 불교의 유입으로 대처승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계율을 지키고, 선 수행을 통하여 정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은 조선불교선교양종의 주류를 이루던 대처승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전통 강원에서 수학하였거나 선방에서 선 수행에 전념하였던 선승들이었다.이들 가운데는 해방 이후 이른바 정화운동에 주역들이 많았으며, 종정을 지낸 승려들도 있다.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공통점은 두 종단 모두 식민지 상황에서 자주권을 획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조선불교선교양종은 현실적으로 움직이면서 교단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였고, 조선불교 선종은 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정법을 구현하려고 하였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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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compared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developed by independent effort.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are in relation to establishing drive for united organization of Buddhism as Cultural Policy had been allowed since 1920 by government general.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were started by the young Buddhist monks. In the current situation at that time, there were no religious bodies,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executive bodies and even legislation that can define patterns of behavior of monks. Therefore, with the spirit
      which made base to future of Buddhism, the young monks tabled a proposal which was Buddhist monk's general meeting.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General Meeting, held from 3rd~5th Jan, 1929, was prepared for 2months to legislate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and establish a family meeting and Joongang Gyomoowon which was a central executive body.
      The monks who played a major role for creating The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are the Buddhist monks worked for Seonhakwon. In a period that the number of a married Buddhist priest was increasing due to introduction of Japanese Buddhism, these monks kept religious precepts and spread the right principles. There were different from the married Buddhist priest who made mainstream of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The monks were Zen Monks who studied in traditional Gangwon or concentrated on learning virtue. Among the monks, some led a cleanup movement after the liberation and some became chief leader of the Buddhism.
      There was something in common between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they tried to obtain autonomy.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however, tried to protect the religious body with the thoughts of actuality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tried to realize right principles as a gener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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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compared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developed by independent effort.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are in relation to establishing driv...

      This study compared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developed by independent effort.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are in relation to establishing drive for united organization of Buddhism as Cultural Policy had been allowed since 1920 by government general.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were started by the young Buddhist monks. In the current situation at that time, there were no religious bodies,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executive bodies and even legislation that can define patterns of behavior of monks. Therefore, with the spirit
      which made base to future of Buddhism, the young monks tabled a proposal which was Buddhist monk's general meeting.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General Meeting, held from 3rd~5th Jan, 1929, was prepared for 2months to legislate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and establish a family meeting and Joongang Gyomoowon which was a central executive body.
      The monks who played a major role for creating The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are the Buddhist monks worked for Seonhakwon. In a period that the number of a married Buddhist priest was increasing due to introduction of Japanese Buddhism, these monks kept religious precepts and spread the right principles. There were different from the married Buddhist priest who made mainstream of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The monks were Zen Monks who studied in traditional Gangwon or concentrated on learning virtue. Among the monks, some led a cleanup movement after the liberation and some became chief leader of the Buddhism.
      There was something in common between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they tried to obtain autonomy.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however, tried to protect the religious body with the thoughts of actuality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tried to realize right principles as a gener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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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국문 요약
      • I. 머리말
      • Ⅱ. 朝鮮佛敎禪敎兩宗의 성립
      • Ⅲ. 朝鮮佛敎 禪宗의 창종
      • 목 차
      • 국문 요약
      • I. 머리말
      • Ⅱ. 朝鮮佛敎禪敎兩宗의 성립
      • Ⅲ. 朝鮮佛敎 禪宗의 창종
      • Ⅳ. 朝鮮佛敎禪敎兩宗과 朝鮮佛敎 禪宗의 종헌 비교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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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영태, "태고법통 확정의 사적 고찰 in; 태고보우국사"

      2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3 최병헌, "조선시대 불교법통설의 문제" (19) : 1988

      4 김순석, "조선불교단연구" (9) : 1995

      5 김광식, "조선불교 禪宗과 首座大會 in; 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

      6 김광식, "일제하 禪學院의 운영과 성격 in; 韓國近代佛敎史硏究" 민족사 1996

      7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무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8 윤치호, "윤치호일기" 역사비평사 2001

      9 夢庭生, "위기에 직면한 조선불교의 원인 고찰" (101) : 1932

      10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6

      1 김영태, "태고법통 확정의 사적 고찰 in; 태고보우국사"

      2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3 최병헌, "조선시대 불교법통설의 문제" (19) : 1988

      4 김순석, "조선불교단연구" (9) : 1995

      5 김광식, "조선불교 禪宗과 首座大會 in; 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

      6 김광식, "일제하 禪學院의 운영과 성격 in; 韓國近代佛敎史硏究" 민족사 1996

      7 김순석, "일제시대 조선총독무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8 윤치호, "윤치호일기" 역사비평사 2001

      9 夢庭生, "위기에 직면한 조선불교의 원인 고찰" (101) : 1932

      10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6

      11 김순석, "선학원의 전통 禪脈 계승운동과 ‘帶妻食肉’ 금지론의 전개 in;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경인문화사 2003

      12 동아일보, "불교수좌대회"

      13 김순석, "근대 불교 종단의 성립 과정 in; 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

      14 박은식, "韓國獨立運動之血" 白巖 朴殷植全集編纂委員會 2 : 2002

      15 李鍾益, "韓國佛敎諸宗派成立의 歷史的考察"

      16 "錦還할 金法允(麟)師" (34) : 1928

      17 錦還한 白博士의 略歷", 佛敎 제16호, "錦還한 白博士의 略歷" (16) : 1925

      18 業鏡臺, "金剛杵"

      19 朝鮮佛敎禪宗首座大會會錄, "選佛場"

      20 任員選擧, "選佛場"

      21 開會辭, "選佛場"

      22 財團法人認可, "選佛場"

      23 "選佛場"

      24 朝鮮佛敎禪宗宗憲, "近代佛敎其他資料(3)" 민족사 1996

      25 김태흡, "護禪論" (2) : 1932

      26 "禪學院의 皇軍慰問金 獻納" (75) : 1941

      27 고익진, "碧松智嚴의 新資料와 법통문제"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2) :

      28 도진호, "汎太平洋會紀" (75) : 1930

      29 同窓會, "東大七十年史"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6

      30 김순석, "朝鮮總督府의 「寺刹令」공포와 30본사 체제의 성립" 한국사상사학회 18 (18): 2002

      31 김영태, "朝鮮禪家의 法統考-西山 法統의 究明" (22) : 1985

      32 齋藤實文書 제9권, "朝鮮民族運動ニ 對スル 對策案" 高麗書林 9 : 1990

      33 金龍泰, "朝鮮後期 佛敎의 臨濟法統과 敎學傳統"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8

      34 "朝鮮佛敎禪敎兩宗僧侶大會會錄", 불교 제56집,佛敎社, "朝鮮佛敎禪敎兩宗僧侶大會會錄" 佛敎社 (56) : 1929

      35 김광식, "朝鮮佛敎禪敎兩宗 僧侶大會의 개최와 성격 in 韓國近代佛敎史硏究" 민족사 1996

      36 每日申報, "朝鮮佛敎禪宗 復興策 大會"

      37 김광식, "朝鮮佛敎禪宗 宗憲과 首座의 현실인식 in; 한국 근대불교의 현실인식" 민족사 1998

      38 "朝鮮佛敎僧侶大會發起會會錄" 佛敎社 (54) : 1928

      39 "會議院會議顚末" (6) : 1912

      40 강유문, "最近百年間朝鮮佛敎槪觀" 佛敎社 (100) : 1932

      41 강동진, "日帝의 韓國侵略政策史" 한길사 1984

      42 서경수, "日帝의 佛敎政策 in 近代韓國佛敎史論" 民族社 1992

      43 정광호, "寺刹令의 公布와 植民地 佛敎 in; 近代韓日佛敎關係史硏究" 인하대학교출판부 1994

      44 한동민, "寺刹令’ 體制下 本山制度 硏究" 중앙대학교 대학원 2005

      45 한동민, "寺刹令 체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in; 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

      46 金剛子, "僧侶大會에 對한 各觀" (17) : 1929

      47 夢庭生, "僧侶大會를 듯고" (17) : 1929

      48 "佛敎事業의 旣成方針을 實行하라" (103) : 1933

      49 金法麟, "三一運動과 佛敎 in; 新天地" 서울신문사 1946

      50 김광식, "1930년대 佛敎界의 宗憲 실행문제 in 韓國近代佛敎史硏究" 민족사 1996

      51 김광식, "1910년대 불교계의 진화론 수용과 사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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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BOJOSASANG, Journal of Bojo Thought -> Journal of Bojo Jinul's Thought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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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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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2 0.62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7 0.53 1.608 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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