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일제시대 불교계에서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종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을 비교해 보았다. 이 두 종단의 설립은 총독부가 1920년부터 실시한 문화정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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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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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선교양종 ; 조선불교선종 ; 종헌 ; 비구승 ; 대처승 ; 유학승 ; 선승 ;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 Seonhakwon ; Zen Monks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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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25-16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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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시대 불교계에서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종된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을 비교해 보았다. 이 두 종단의 설립은 총독부가 1920년부터 실시한 문화정치로 인하여 문화단체설립이 허용됨에 따라 시작된 불교계의 통일기관 설립운동과 맞닿아 있다. 두 종단 모두 설립의 주체 세력은 청년 승려들이었다. 청년 승려들은 불교계의 현실이 종단도 없고, 종헌도 없으며, 집행기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승려들의 행동 양식을 규율할 수 있는 법령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도와 법규를 제정하지 않고는 불교계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서 승려대회를 발의하게 되었다. 1929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는 약 두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불교계의 근간을 이루는 종헌을 제정하고, 입법기관인 종회를 설치하고 중앙집행기관인 중앙교무원을 성립시켰다.
조선불교 선종 창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승려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비구승들이다. 이들은 일본 불교의 유입으로 대처승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계율을 지키고, 선 수행을 통하여 정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은 조선불교선교양종의 주류를 이루던 대처승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전통 강원에서 수학하였거나 선방에서 선 수행에 전념하였던 선승들이었다.이들 가운데는 해방 이후 이른바 정화운동에 주역들이 많았으며, 종정을 지낸 승려들도 있다.
조선불교선교양종과 조선불교 선종의 공통점은 두 종단 모두 식민지 상황에서 자주권을 획득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조선불교선교양종은 현실적으로 움직이면서 교단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였고, 조선불교 선종은 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정법을 구현하려고 하였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compared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developed by independent effort.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are in relation to establishing driv...
This study compared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was developed by independent effort.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are in relation to establishing drive for united organization of Buddhism as Cultural Policy had been allowed since 1920 by government general. The establishment of these two religious bodies were started by the young Buddhist monks. In the current situation at that time, there were no religious bodies,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executive bodies and even legislation that can define patterns of behavior of monks. Therefore, with the spirit
which made base to future of Buddhism, the young monks tabled a proposal which was Buddhist monk's general meeting.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General Meeting, held from 3rd~5th Jan, 1929, was prepared for 2months to legislate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and establish a family meeting and Joongang Gyomoowon which was a central executive body.
The monks who played a major role for creating The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are the Buddhist monks worked for Seonhakwon. In a period that the number of a married Buddhist priest was increasing due to introduction of Japanese Buddhism, these monks kept religious precepts and spread the right principles. There were different from the married Buddhist priest who made mainstream of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The monks were Zen Monks who studied in traditional Gangwon or concentrated on learning virtue. Among the monks, some led a cleanup movement after the liberation and some became chief leader of the Buddhism.
There was something in common between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which they tried to obtain autonomy. The Chosun Buddhism Seongyoyangjong, however, tried to protect the religious body with the thoughts of actuality and the last libation in a sacrifice of Zen Sect of the Chosun Buddhism tried to realize right principles as a general rule.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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