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삼국사기』에서 원자라고 적힌 사람들과, 그렇게 적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4명, 백제 7명, 신라 3명 모두 14명의 원자가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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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서강대학교)
2015
Korean
원자 ; 모본왕 ; 장수왕 ; 동천왕 ; 신문왕 ; 효소왕 ; 김사종 ; 김수충 ; 등신불 ; 김교각 ; 정상 혼인 ; Wonja ; King Mobon ; King Jangsoo ; King Dongcheon ; King Shinmoon ; King Hyoso ; Kim Sajong ; Kim Soochoong ; life-size golden Bodhisattva ; Kim Kyogak ; legal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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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121-238(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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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이 글은 『삼국사기』에서 원자라고 적힌 사람들과, 그렇게 적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4명, 백제 7명, 신라 3명 모두 14명의 원자가 기록되어 있다. ...
이 글은 『삼국사기』에서 원자라고 적힌 사람들과, 그렇게 적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4명, 백제 7명, 신라 3명 모두 14명의 원자가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 제5대 모본왕, 제20대 장수왕은 즉위할 때는 ‘元子’로 적혔다. 그러나 유리왕이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왔을 때, 그리고 모본왕과 장수왕이 태자로 책봉될 때는 ‘왕자’로 적혔다. 고구려의 제5대 모본왕은 ‘대무신왕의 원자’로 적히고, 그의 형임에 틀림없는 대무신왕의 왕자 호동은 항상 왕자로 적혔다. 이는 원비의 첫아들을 ‘元子’로 적고, 원자보다 더 나이가 많은 次妃의 아들은 ‘원자’로 적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 제11대 東川王은 어머니가 酒桶村의 여인이다. 그는 산상왕과 주통촌의 여인 사이에서 비정상적 관계로 태어났다. 그는 태자로 봉해질 때 ‘郊彘’라고만 적혔고 원자나 왕자로 적히지 않았다. 태자로 봉해진 ‘교체’가 태자 시절에 낳은 아들이 ‘然弗’이다. 그러나 제12대 중천왕이 되는 이 연불도 ‘王孫’으로 적혔지 ‘元孫’으로 적히지 않았다. 『삼국사기』는 혼외의 자식은 원자로 적지 않았고, 그런 아들이 낳은 왕의 손자도 원손으로 적지 않은 것이다.
신라 제32대 효소왕은 태자로 책봉될 때는 ‘왕자 이홍’으로 적혔다. 그리고 즉위할 때마저도 ‘신문왕의 태자’로 적혔다. 그가 결코 원자로 적힌 적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정상적 혼인 관계가 아닌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왕자임에 틀림없다.
신라에서 기록에 남은 원자 3명 가운데 原宗은 태자로 봉해질 때의 기록은 없고 즉위할 때는 ‘智證王元子’로 기록되었다. 法敏은 태자로 봉해질 때 ‘元子法敏’, 즉위할 때 ‘太宗王之元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687년 2월에 태어난 ‘신문왕의 원자’는 출생 기록만 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명시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 필자는 ‘신문왕의 원자’는 691년 3월 1일 태자로 책봉된 ‘왕자 이홍’, 즉 효소왕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이를 밝히기 위하여 ‘원자’의 자격 요건으로 ‘정상적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인가, 아닌가.’ 또는 ‘원비의 맏아들인가’ 하는 기준이 고려되었다고 제안하였다. 신문왕의 원자는 728년 당 나라에 사신으로 간 성덕왕의 아우 김사종이다. 그의 아들은 733년 당 나라에 사신으로 간 성덕왕의 조카 김지렴이다.
효소왕은 『삼국유사』 권3, 탑상4 대산 오만 진신조에 의하면 677년에 태어났다. 677년은 문무왕 재위 중일 때이다. 만약 효소왕이 정상 혼인 관계에서 태어났으면 그는 ‘元孫’으로 적혀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왕자’, ‘태자’로만 적혔다. 신문왕과 신목왕후는 683년 5월 7일에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효소왕은 혼전, 혼외자인 것이다. 신문왕의 원자는 687년 2월에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신문왕의 원자는 태자로 책봉되어 효소왕이 된 왕자 이홍이 아니다.
신문왕의 원자와 문무왕을 제외하고는 신라 중대의 왕자들 가운데 원자로 적힌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원자들이 일찍 사망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문무왕의 맏아들, 성덕왕의 맏아들, 경덕왕의 맏아들은 일찍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
왕자 김수충은 효소왕과 그의 왕비 성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714년 당 나라로 숙위 갔다가 717년에 귀국하였다. 4년쯤 신라 왕실의 사정을 관찰 ...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I scrutinize the usage of the term ‘Wonja[the first legal son of a King]’ in Samkuksaki. There are fourteen persons who were called Wonja in Samkuksaki: 3 in Shilla, 4 in Kokuryeo, and 7 in Baikje. King Yoori, Mobon and Jangsoo of K...
In this paper, I scrutinize the usage of the term ‘Wonja[the first legal son of a King]’ in Samkuksaki. There are fourteen persons who were called Wonja in Samkuksaki: 3 in Shilla, 4 in Kokuryeo, and 7 in Baikje.
King Yoori, Mobon and Jangsoo of Kokuryeo were recorded as Wonja when they succeeded the throne. However, Yoori was recorded as Wangja when he came to Kokuryeo, and Mobon and Jangsoo were recorded as Wangja when they were nominated as the Crown Princes. The 5th King Mobon of Kokuryeo was recorded as King Taemoosin's Wonja while the famous Wangja Hodong, who was the Prince of King Taemoosin and an elder brother of King Mobon, was always recorded as ‘Wangja Hodong.’ His mother was the second Queen of King Taemoosin.
The mother of 11th King Dongcheon of Kokuryeo was a lady in Jootongchon. He was born in an abnormal relation between his father King Sansang and the lady of Jootongchon. Therefore, he wasn't recorded as Wonja. King Dongcheon's son Yeonbul was born when his father was the Crown Prince. However, Yeonbul who was to become the 12th King Jungcheon, was not recorded as Wonson which means the first legal Grandson of a King.
The 32nd King Hyoso of Shilla was recorded as Wangja Ihong when nominated as the Crown Prince, and was recorded as Shinmoon's Thaeja even when he succeeded the throne. The fact that he was never recorded as Wonja is very significant. He must be an illegal son born out of normal marriage relation.
Of the three recorded Wonjas in Shilla, Wonjong[King Beopheung] was recorded as Wonja when he succeeded the throne, and no records were remained on his nomination as the Crown Prince. Beopmin[King Moonmoo] was recorded as Wonja when he was nominated as Crown Prince, and succeeded the throne. But the case of King Shinmoon's Wonja who was born on February, 687 A.D., was not so simple and remains much to be discussed.
I assert that King Shinmoon's Wonja is not the identical person with the Prince Ihong[King Hyoso] who was nominated as the Crown Prince on March 1st, 691 A.D. To prove this fact, I suggest a hypothesis that one of the conditions to be a Wonja is that the son should be a legal son who was born in a normal marriage or that the son should be the first son of the first Queen. King Shinmoon's Wonja is King Seongdeok's younger brother Kim Sajong, who went to Tang in 728 A.D., and his son is King Seongdeok's nephew Kim Jiryeom, who went to Tang in 733 A.D.
King Hyoso must be born in 677 A.D. as Samkukyusa says apparently. When he was born, the King of Shilla was his Grandfather King Moonmoo. If he had been born in a legal marriage, he should be recorded as Wonson. However, he was always recorded as Wangja or Thaeja. King Shinmoon legally married Hyoso's mother Queen Shinmok at May 7th, 683 A.D. King Hyoso must be born in an illegal relation. The birth of King Shinmoon's Wonja was recorded on February 687 A.D. Therefore, the King Shinmoon's Wonja is not Wangja Ihong who was nominated as the Crown Prince, and to be King Hyoso.
The fact that nobody except King Moonmoo and King Shinmoon's Wonja, was recorded as Wonja in the middle era of Shilla alludes that most of the first sons of Kings died in their early ages. The first sons of King Moonmoo, King Seongdeok, and King Kyeongdeok must have died early.
Prince Kim Soochoong, the son of King Hyoso and Queen Seongjeong went to Tang in 714 A.D. and returned to Shilla in 717 A.D. After four years, Prince Kim Soochoong must have gone to Tang in 721 A.D. He became a Buddhist priest and eventually was made the first life-size golden Bodhisattva in Mt. Kuhwa, Ahnwhi Province, China. His name as a Buddhist priest is Kim Kyogak[金喬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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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반~6세기 중반 단양지역을 둘러싼 신라와 고구려의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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