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고 가르치셨다. 성경에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야웨”라고 기록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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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 2006
학위논문(석사) --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 ,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전공 , 2006. 2
2006
한국어
235.88 판사항(4)
인천
59p. ; 26cm
참고문헌: p. 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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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고 가르치셨다. 성경에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야웨”라고 기록되어 ...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고 가르치셨다. 성경에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야웨”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아버지’라는 용어로 바꾸셨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사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야웨신앙과 아버지신앙은 종교의 전모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야웨신앙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토기장이와 진흙, 절대주관자와 절대복종자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자관계로, 그것도 너무나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관계로 보여주는 독창적인 신앙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유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음 앞에서도 순종하는 아들의 지극한 효도를 보게 된다. 이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순간을 크로즈업시키면서 아버지의 내리사랑과 아들의 올리효도가 넘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 부자관계, 예수님의 아버지 사상은 신앙의 핵심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그 이상의 행동은 하시지 않았다. 자신의 말씀 내용이 곧 자신의 생활이었다. 역사상 유일하게 예수님 혼자만이 이 절대적인 효도와 순종 생활을 이루셨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기독교사회복지 활동은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이 펼치는 사랑실천 활동이다. 기독교가 본래 초기기독교처럼 역동적인 신앙적 힘을 회복하여 사랑실천 활동에 획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여기서 필자는 초기기독교의 유무상통이 성령세례를 받은 기독교인들의 자발적인 신앙실천의 결과로 볼 때 그 신앙실천을 촉발하는 윤리적인 가치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효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은 초기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부어주신 능력으로 유무상통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는 데 사람의 역할과 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람의 일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찾고자 하는 기독교사회복지의 이론적 해답이 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성경적 효란 기독교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효신학개론”을 발간한 최성규 목사는 신앙의 생활화를 실천할 수 있는 성경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접촉을 지닌 성경 속에서 효를 찾아 이를 신학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성경적 효를 신학적 작업을 통해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살자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효는 이념과 시대와 종교와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성경적 효의 신학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아버지 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필생의 과업을 아버지의 영화로움에 근간으로 두셨다. 요한복음 17장 4절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가치관 즉, 효행윤리에 핵심이 모아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성경말씀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준행한다는 면에서 성경은 효경이요, 기독교인의 효는 성경적 효라는 용어가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성경적 효는 예수님은 ‘구원자’, ‘효자’인 것을 역설하며 효의 관점으로 성경 전체를 일관성 있게 신론을 아버지론으로 구성하고 기독론을 효자론으로 좌표를 설정한 것이다. 최성규 목사의 성경적 효를 통하여 교회가 교회안의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시대의 요청인 것이다.
신앙실천이 미미한 선교적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된 성경적 효 신학의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어필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나님께 효도하는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신앙실천운동은 효운동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최근 사회복지사에게는 엄격한 윤리강령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윤리강령으로 사회복지사의 손발을 묶는다고 해서 윤리강령이 실현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기독교사회복지에 요구되는 것이 엄격한 윤리강령이라면 기독교사회복지사야말로 기독교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뛰어넘는 예수사랑실천운동으로서의 성경적 효 운동으로 전개하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기독교사회복지와 성경적 효와의 관계성을 예수님의 아버지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기독교사회복지운동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성경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성경적 효 운동으로 승화될 때 향후의 이상적 사회복지의 모델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이 본연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요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약속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소한 용어나 문헌자료의 한계성을 감안할 때 부족하기 짝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성경적 효의 지속적인 연구와 실천과제가 우리 앞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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