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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론연쇄(理論連鎖)와 전향(轉向) = Imperial/Colonial Theoretical Chains and Conversion: Focused on In Jungsik`s Economic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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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그동안 인정식(印貞植)의 전향(1938)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친일론``)이 되거나 반대로 상황논리를 통해 옹호(``전시변혁론``)되었다. 본 연구는 지식인에게 필수불가 결한 지식생산수단-이론과 방법론-의 차원에서 그의 전향을 검토하고, 책임윤리 (M. Weber)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전향 이전 인정식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경작규모가 영세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조선의 반봉건성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일본 강좌파 야마다 모리타로(山田盛太郞)의 이론을 전유한 것으로, 인정식은 이를 통해 조선의 반봉건성을 재생산하는 외세의 문제를 부각했다. 또, 역사유물론의 관점에 서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부정하였다. 전향 이후 인정식은 토지생산성의 기준을 채택함으로써 이전의 ``경작규모의 영세성`` 기준을 상대화했다. 이것은 만주와 일본을 비교함으로써 소농부재론에서 ``적정규모의 농가``론으로 전회한 야마다의 전향에 공명한 것이었다. 또, 인정식은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한다. 이것은 비트포겔(K. A. Wittfogel)-히라노 요시타로(平野義太郞)-모리타니 가쓰미(森谷克己)-인정식으로 이어지는 ``이론연쇄``의 산물이었다. 인정식은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의 관점에서 중국을 분석하였고(``정체사회론``),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중일전쟁)을 중국을 정체성에서 구제할 역사적 행위로 평가했다. 그는, 이와 동시에 조선을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외부에 위치시켰는데, 그근거는 옹색하고 모호했다. 이것은 이론적 차원에서의 비일관성, 즉 이론의 실패를 의미한다. 인정식은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면하였고, 그 결과 제국주의의 부당한 폭력을 묵인, 방조하고 심지어 이에 동참하는 길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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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인정식(印貞植)의 전향(1938)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친일론``)이 되거나 반대로 상황논리를 통해 옹호(``전시변혁론``)되었다. 본 연구는 지식인에게 필수불가 결한 지식생산수단-이론...

    그동안 인정식(印貞植)의 전향(1938)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친일론``)이 되거나 반대로 상황논리를 통해 옹호(``전시변혁론``)되었다. 본 연구는 지식인에게 필수불가 결한 지식생산수단-이론과 방법론-의 차원에서 그의 전향을 검토하고, 책임윤리 (M. Weber)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전향 이전 인정식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경작규모가 영세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조선의 반봉건성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일본 강좌파 야마다 모리타로(山田盛太郞)의 이론을 전유한 것으로, 인정식은 이를 통해 조선의 반봉건성을 재생산하는 외세의 문제를 부각했다. 또, 역사유물론의 관점에 서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부정하였다. 전향 이후 인정식은 토지생산성의 기준을 채택함으로써 이전의 ``경작규모의 영세성`` 기준을 상대화했다. 이것은 만주와 일본을 비교함으로써 소농부재론에서 ``적정규모의 농가``론으로 전회한 야마다의 전향에 공명한 것이었다. 또, 인정식은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한다. 이것은 비트포겔(K. A. Wittfogel)-히라노 요시타로(平野義太郞)-모리타니 가쓰미(森谷克己)-인정식으로 이어지는 ``이론연쇄``의 산물이었다. 인정식은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의 관점에서 중국을 분석하였고(``정체사회론``),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중일전쟁)을 중국을 정체성에서 구제할 역사적 행위로 평가했다. 그는, 이와 동시에 조선을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외부에 위치시켰는데, 그근거는 옹색하고 모호했다. 이것은 이론적 차원에서의 비일관성, 즉 이론의 실패를 의미한다. 인정식은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면하였고, 그 결과 제국주의의 부당한 폭력을 묵인, 방조하고 심지어 이에 동참하는 길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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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Jungsik(印貞植)``s conversion (1938) has been the target of moral blame, or considered as the action for wartime social transformation. This study examines his conversion at the level of ``means of knowledge production`` - theory and methodology - which were indispensable to intelligentsia and would like to raise the issue of Verantwortungsethik (M. Weber). In Jungsik, before his conversion claimed on the basis of his ``small scale farming`` that the colonial Korea was historically at the stage of semi-feudalism, in comparison with western countries. Through the appropriation of Yamada Moritaro(山田盛太郞)``s theory, In Jungsik established the fact that Japanese Imperialism reproduced feudalism in colonial Korea. In addition, standing on the perspective of historical materialism, he denied the theory of ``Asiatic Mode of Production``(AMP). But since the conversion, In Jungsik substituted the criteria of ``land productivity`` to ``small scale farming``. This was paralleled with Yamada``s conversion, which meaned a change from the theory of ``absence of peasant`` to ``appropriate scale farmers`` in Japanese agriculture. On the other hand, In Jungsik actively adopted the theory of AMP. This was the product of theoretical chains from K. A. Wittfogel to Hirano Yoshitaro(平野義太郞) to Moritani Katsumi(森谷克己) and finally to In Jungsik. In Jungsik analyzed China``s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AMP, and considered Japan``s imperial aggression(the Sino-Japanese War) as the historical act to save China from an unhistorical stagnation. He, at the same time, placed colonial Korea outside of AMP, but the reason for it was vague and ambiguous. Theoretically, this means a failure in the point of inconsistency. In Jungsik didn``t solve the problem he merely disregarded it. Consequently, he acquiesced in the unjust violence of imperialism, collaborating wi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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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Jungsik(印貞植)``s conversion (1938) has been the target of moral blame, or considered as the action for wartime social transformation. This study examines his conversion at the level of ``means of knowledge production`` - theory and methodology...

    In Jungsik(印貞植)``s conversion (1938) has been the target of moral blame, or considered as the action for wartime social transformation. This study examines his conversion at the level of ``means of knowledge production`` - theory and methodology - which were indispensable to intelligentsia and would like to raise the issue of Verantwortungsethik (M. Weber). In Jungsik, before his conversion claimed on the basis of his ``small scale farming`` that the colonial Korea was historically at the stage of semi-feudalism, in comparison with western countries. Through the appropriation of Yamada Moritaro(山田盛太郞)``s theory, In Jungsik established the fact that Japanese Imperialism reproduced feudalism in colonial Korea. In addition, standing on the perspective of historical materialism, he denied the theory of ``Asiatic Mode of Production``(AMP). But since the conversion, In Jungsik substituted the criteria of ``land productivity`` to ``small scale farming``. This was paralleled with Yamada``s conversion, which meaned a change from the theory of ``absence of peasant`` to ``appropriate scale farmers`` in Japanese agriculture. On the other hand, In Jungsik actively adopted the theory of AMP. This was the product of theoretical chains from K. A. Wittfogel to Hirano Yoshitaro(平野義太郞) to Moritani Katsumi(森谷克己) and finally to In Jungsik. In Jungsik analyzed China``s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AMP, and considered Japan``s imperial aggression(the Sino-Japanese War) as the historical act to save China from an unhistorical stagnation. He, at the same time, placed colonial Korea outside of AMP, but the reason for it was vague and ambiguous. Theoretically, this means a failure in the point of inconsistency. In Jungsik didn``t solve the problem he merely disregarded it. Consequently, he acquiesced in the unjust violence of imperialism, collaborating wit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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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오미일, "해제: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성격논쟁, In 식민지시대사회성격과 농업문제" 풀빛 1991

    2 송태욱, "포스트콜로니얼 - 식민지적 무의식과 식민주의적 의식" 삼인 출판사 2002

    3 동녘편집부, "코민테른 자료선집: 통일전선/민족식민지문제" 동녘 1989

    4 황동하, "코민테른" 서해문집 2009

    5 Weber, Max,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출판 2007

    6 김대환, "중국사회성격논쟁" 창작과비평사 1988

    7 朴文秉, "조선농업의 구조적 특질: 조선 농촌의 성격규정에 대한 기본적 고찰"

    8 장용경, "일제 식민지기 인정식의 전향론: 내선일체론을 통한 식민적 관계의 형성과 농업재편성론" 49 : 231-291, 2003

    9 丸山眞男,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통나무 1995

    10 서정익, "일본자본주의사연구와 ‘강좌파’ 이론" 7 (7):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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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대환, "중국사회성격논쟁" 창작과비평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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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최규진, "<12월테제>: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나침반, 시대의 강령, In 명문으로 보는 우리역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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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0-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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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9 1.09 1.1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6 1.11 1.7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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