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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宋史筌>의 표점 교감 작업과 解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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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御定宋史筌>을 정리, 가공하여 후속연구자들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御定宋史筌>은 正祖의 주도하에 중국사서인 <宋史>를 개찬한 史書로서, 창졸간에 편찬되어 체례와 내용이 번다할 뿐 아니라 사료상의 오류도 적지 않았던 <宋史>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고 간명한 필체로 재정리한 史書이다. 정조시대의 <宋史> 개수 작업은 동궁시절 정조 자신이 10여 차례에 걸쳐 筆削과 改稿를 거듭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때 정조는 이미 80권 정도로 이루어진 <宋史筌>초고를 편찬하였다. 왕위에 등극한 후에는 徐命膺 黃景源등 당대 최고의 학인들을 동원해 개찬 작업을 진행했으며, 정조4년(庚子年, 1780년)에는 총100권으로 구성된 <宋史筌>이 봉정되었다. 그러나 정조는 庚子本 <宋史筌> 대해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李德懋에게 재차 개수할 것을 명령하여 정조 15년(辛亥年, 1791)에 이르러서야 최종적인 완성을 보게 되었다. 동궁시절 정조가 작성했던 <宋史撮要>에 의하면 1770년 전후로 이미 <宋史> 개수 작업이 시작된 것 같은데, 이렇게 볼 때 <宋史筌>은 무려 20년의 성상을 거쳐서야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조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宋史筌>편찬을 주도하고 독려한 것은, 단순히 史書로서 <宋史>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宋朝가 문치를 통해 조선이 지향해야할 도덕적 통치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 明朝멸망이후 조선이 이민족 출신의 淸朝를 대신해 宋-明으로 이어지는 중화문명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했다는 점, 그리고 정조자신이 조선 최고의 학자군주였을 뿐 아니라 불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정당화정책을 통해 통치권을 강화하려 한 점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사서를 편찬하겠다는 일념으로 엄정한 기준을 수립하고 새로운 체례에 맞추어 사료를 수정 보완하며 20여년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御定宋史筌>은 결국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의 상태로 220년 가까이 국가서고 속에서 묻혀있어야 했다. 간행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御定宋史筌>이 조선왕조가 편찬한 최고의 外國史書이자, 조선후기에 지속적으로 단행된 문화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업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장시간에 걸쳐 엄청난 공력을 쏟아 부은 만큼 <御定宋史筌>은 宋代史 연구를 위한 사료적 가치 뿐 아니라 史學史, 思想史 그리고 조선후기 政治文化史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연구의 진행을 위해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명대이래로 중국에서도 사서로서 <宋史>의 결함을 보완하고, 완정한 사서편찬을 통해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송사개찬사업이 단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후속연구자들이 앞서 언급했던 <御定宋史筌>의 다양한 역사적 가치를 발굴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표점작업 후 교감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수정과 보완의 근본적 대상인 <송사>와의 對校 뿐 아니라, 전후시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다양한 판본들과의 교감작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기된다.
      <御定宋史筌>이 150권에 이르고 일일이 對校해야할 <宋史>가 496권의 巨帙인데다가, 위에 언급된 사서들 가운데 비교적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宋史質>, <宋史新論>, <宋史記>만 하더라도 분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충실한 토대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효과적인 연구방법과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연구팀의 구성원들은 관련전공자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宋史筌>을 가공할 수 있는 기회가 결코 많지 않다고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후속연구자들의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견실한 토대자료를 완성하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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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御定宋史筌>을 정리, 가공하여 후속연구자들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御定宋史筌>은 正祖의 주도하에 ...

      본 연구는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御定宋史筌>을 정리, 가공하여 후속연구자들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御定宋史筌>은 正祖의 주도하에 중국사서인 <宋史>를 개찬한 史書로서, 창졸간에 편찬되어 체례와 내용이 번다할 뿐 아니라 사료상의 오류도 적지 않았던 <宋史>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고 간명한 필체로 재정리한 史書이다. 정조시대의 <宋史> 개수 작업은 동궁시절 정조 자신이 10여 차례에 걸쳐 筆削과 改稿를 거듭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때 정조는 이미 80권 정도로 이루어진 <宋史筌>초고를 편찬하였다. 왕위에 등극한 후에는 徐命膺 黃景源등 당대 최고의 학인들을 동원해 개찬 작업을 진행했으며, 정조4년(庚子年, 1780년)에는 총100권으로 구성된 <宋史筌>이 봉정되었다. 그러나 정조는 庚子本 <宋史筌> 대해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李德懋에게 재차 개수할 것을 명령하여 정조 15년(辛亥年, 1791)에 이르러서야 최종적인 완성을 보게 되었다. 동궁시절 정조가 작성했던 <宋史撮要>에 의하면 1770년 전후로 이미 <宋史> 개수 작업이 시작된 것 같은데, 이렇게 볼 때 <宋史筌>은 무려 20년의 성상을 거쳐서야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조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宋史筌>편찬을 주도하고 독려한 것은, 단순히 史書로서 <宋史>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宋朝가 문치를 통해 조선이 지향해야할 도덕적 통치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 明朝멸망이후 조선이 이민족 출신의 淸朝를 대신해 宋-明으로 이어지는 중화문명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했다는 점, 그리고 정조자신이 조선 최고의 학자군주였을 뿐 아니라 불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정당화정책을 통해 통치권을 강화하려 한 점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사서를 편찬하겠다는 일념으로 엄정한 기준을 수립하고 새로운 체례에 맞추어 사료를 수정 보완하며 20여년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御定宋史筌>은 결국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의 상태로 220년 가까이 국가서고 속에서 묻혀있어야 했다. 간행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御定宋史筌>이 조선왕조가 편찬한 최고의 外國史書이자, 조선후기에 지속적으로 단행된 문화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업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장시간에 걸쳐 엄청난 공력을 쏟아 부은 만큼 <御定宋史筌>은 宋代史 연구를 위한 사료적 가치 뿐 아니라 史學史, 思想史 그리고 조선후기 政治文化史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연구의 진행을 위해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명대이래로 중국에서도 사서로서 <宋史>의 결함을 보완하고, 완정한 사서편찬을 통해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송사개찬사업이 단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후속연구자들이 앞서 언급했던 <御定宋史筌>의 다양한 역사적 가치를 발굴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표점작업 후 교감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수정과 보완의 근본적 대상인 <송사>와의 對校 뿐 아니라, 전후시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다양한 판본들과의 교감작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기된다.
      <御定宋史筌>이 150권에 이르고 일일이 對校해야할 <宋史>가 496권의 巨帙인데다가, 위에 언급된 사서들 가운데 비교적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宋史質>, <宋史新論>, <宋史記>만 하더라도 분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충실한 토대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효과적인 연구방법과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연구팀의 구성원들은 관련전공자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宋史筌>을 가공할 수 있는 기회가 결코 많지 않다고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후속연구자들의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견실한 토대자료를 완성하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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