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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식민과 근대공원의 정체성 회복 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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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식민유산 청산과정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정체성은 이미 ‘제국’이 부여한 성격이 혼재,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회복 과정의 첫 출발이 제국주의가 규정해 놓은 그 정체성을 ‘회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부여한 정체성이 이미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그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창경궁은 1907년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가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놀이기구가 있고 벚꽃놀이를 하는 오락, 유흥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궁으로의 복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불완전하였다. 창경원이 궁으로 이름을 되찾는 것은 1983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이후 창경궁은 역사문화 학습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지만 ‘완전한’ 복원은 진행 중에 있고, 창경궁의 역할로 제시된 것 증 하나인 현장학습장은 일제가 부여한 역할과 ‘유사한’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정체성 회복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근대 문명화의 전략으로 자행한 한국 문화 정체성의 균열이 탈식민 이후에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기간 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일본 자신을 선진, 근대문명국의 모델로 삼도록 하였고, 자신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켜주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하는 등 궁극적으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였다.
      근대화, 문명화의 전략 중 하나로 추진한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공원’의 조성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시기 한국인들은 불완전하지만 근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향유’하기 위해 오락공간이자 놀이공간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대문화를 즐기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제가 조성한 대표적인 근대공원인 창경원은 조선 정치와 조선왕실의 효의 상징공간인 궁을 오락공간으로 전락시킨 것이며, 대한제국의 군인 및 순국열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장충단은 식민지에 영향을 준 일본인, 이토우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조성하거나 야유회,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성한 공간인 사직단은 사람들의 소풍, 놀이터로 변형시켰다.
      일제의 패전과 한국의 식민으로부터의 해방은 일제 식민지배의 종식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과 종식은 물리적인 정치체제나 식민권력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즉 식민의식과 근대경험 등 의식적 식민성의 단절은 쉽지 않았다.
      일제의 근대 문명화의 이름으로 추진된 문화적 침투는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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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식민유산 청산과정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정체성은 이미 ‘제국’이 부여한 성격이 혼재,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회복 과정...

      본 연구는 식민유산 청산과정에서 회복하고자 하는 문화정체성은 이미 ‘제국’이 부여한 성격이 혼재, 착종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정체성 회복 과정의 첫 출발이 제국주의가 규정해 놓은 그 정체성을 ‘회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부여한 정체성이 이미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그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창경궁은 1907년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가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놀이기구가 있고 벚꽃놀이를 하는 오락, 유흥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궁으로의 복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불완전하였다. 창경원이 궁으로 이름을 되찾는 것은 1983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이후 창경궁은 역사문화 학습의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지만 ‘완전한’ 복원은 진행 중에 있고, 창경궁의 역할로 제시된 것 증 하나인 현장학습장은 일제가 부여한 역할과 ‘유사한’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정체성 회복에 대한 연구는 일제가 근대 문명화의 전략으로 자행한 한국 문화 정체성의 균열이 탈식민 이후에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기간 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일본 자신을 선진, 근대문명국의 모델로 삼도록 하였고, 자신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켜주고 있다고 인식하도록 하는 등 궁극적으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였다.
      근대화, 문명화의 전략 중 하나로 추진한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공원’의 조성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시기 한국인들은 불완전하지만 근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향유’하기 위해 오락공간이자 놀이공간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근대문화를 즐기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제가 조성한 대표적인 근대공원인 창경원은 조선 정치와 조선왕실의 효의 상징공간인 궁을 오락공간으로 전락시킨 것이며, 대한제국의 군인 및 순국열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장충단은 식민지에 영향을 준 일본인, 이토우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조성하거나 야유회,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던 신성한 공간인 사직단은 사람들의 소풍, 놀이터로 변형시켰다.
      일제의 패전과 한국의 식민으로부터의 해방은 일제 식민지배의 종식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과 종식은 물리적인 정치체제나 식민권력에 국한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즉 식민의식과 근대경험 등 의식적 식민성의 단절은 쉽지 않았다.
      일제의 근대 문명화의 이름으로 추진된 문화적 침투는 오늘날까지 각 분야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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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how the Japanese empire’s civilization strategy to justify the colonial rule of Korea caused ruptures in the recovery of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through the restoration of Changgyong palace, Jangchungdan and Sajik-dan.
      This study was carried out with the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the identity of the cultural identity to be restored in the process of colonial heritage settlement is already mixed and confused with the characteristics given by the empire.
      This means that the first step of the process of identity restoration is to start from the ‘reconsider' of the identity defined by imperialism, and at the same time, we can access the substance properly about the identity already given by the empire in the process of restructuring its identity.
      Typically, Changgyeong-Palace was rebuilt in 1907 as a 'park' with a botanical garden, a zoo, and a museum. It is open to the public and has amusement facilities and amusement and entertainment venues for cherry blossom viewing. However, restoration to the palace after independence was not easy or incomplete. It was not until 1983 that Changgyeong-park regained his name as Palace. Although Changgyeong-Palace has been restructured as a space for learning of history and culture, the 'complete' resto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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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how the Japanese empire’s civilization strategy to justify the colonial rule of Korea caused ruptures in the recovery of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through the restoration of Changgyong palace, Jangchungdan and Sajik-d...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how the Japanese empire’s civilization strategy to justify the colonial rule of Korea caused ruptures in the recovery of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through the restoration of Changgyong palace, Jangchungdan and Sajik-dan.
      This study was carried out with the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the identity of the cultural identity to be restored in the process of colonial heritage settlement is already mixed and confused with the characteristics given by the empire.
      This means that the first step of the process of identity restoration is to start from the ‘reconsider' of the identity defined by imperialism, and at the same time, we can access the substance properly about the identity already given by the empire in the process of restructuring its identity.
      Typically, Changgyeong-Palace was rebuilt in 1907 as a 'park' with a botanical garden, a zoo, and a museum. It is open to the public and has amusement facilities and amusement and entertainment venues for cherry blossom viewing. However, restoration to the palace after independence was not easy or incomplete. It was not until 1983 that Changgyeong-park regained his name as Palace. Although Changgyeong-Palace has been restructured as a space for learning of history and culture, the 'complete' resto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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