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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전반기 ‘東亞’ 담론의 지형: 『改造』(1919-1944)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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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에서는 1919년에서 1944년까지 {카이조오}에서 전개된 동아 담론을 분석할 것이다. 연구 내용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단계는, 1920년대 초반에 전개된 동서문명 논쟁이다.
      1921년 {카이조오}에는 버틀란트 러셀과 존 듀이가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신생국 중국의 국가형태에 대한 전망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같은 해에는 '현대 팔대 철학자와 그 사상'이라는 특집란을 개설하여, 리케르트, 듀이, 아인슈타인, 산타야나, 크로체, 베르그송, 러셀, 오이켄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외에도 러셀과 듀이는 많은 글을 통해 중국의 사회 및 문명적 전망에 대한 주장을 정력적으로 펼쳤고 그에 대해 니시다 기타로오 등 일본 학자들의 논평과 반론이 이어졌다.
      주목할 것은 1920년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동서문화논전'이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근대 초기 서양의 근대문명 수입에 박차를 가했던 중국 지식인들은 1차대전 직후 서구문명의 몰락을 목도한 후, 문명과 문화에 대한 대대적 반성에 돌입했는데, 이런 분위기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 러셀과 듀이였다. 여기에 인도 시인 타고르의 '동서문화융합론'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론을 위시하여, 21세기 중국문명의 세계사적 전망에 대한 각 진영의 입장이 활발한 각축을 이루었다.
      이로 보건대, 1920년대 중국의 문화보수주의 진영과 서화주의, 맑스주의 진영 사이에서 벌어졌던 동서문명논쟁은 동시기 {카이조오}의 현대문명론 기획과 긴밀한 연관선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카이조오}에 실린 동아시아 문명론 기획을 중국에서 진행된 '동서문화논전'과의 관련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1년차 연구의 과제로 삼는다. '동양문명의 재건'이라는 기획이 {카이조오} 측과 중국 지식인 간에 상호 교차되고 엇갈리는 상황을 잘 살펴본다면, 20세기 초반 동아시아 문명담론의 흥미로운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1920년대 중반, 중국 담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아 담론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1920년대 중반에는 {카이조오}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된다. 이제 막 근대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국이 향후 적화(赤化)될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기저에 깔면서, 러시아의 對중국정책, 세계공황의 회복기를 앞둔 중미일의 관계, 중국 내의 노동운동 및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보고와 함게, 궁극적으로는 일본이 중국에 대하여 어떤 관점과 정책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한 글들이 다수 보인다.
      주목할 것은 쑨원의 유명한 연설 '대아시아주의'가 이러한 담론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지점이다. 1920년대 초중반 일본 사회 전반에서 '대아시아주의'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맥락과 분위기가 이 시기 {카이조오} 지면에 역력히 드러난다. 본 연구에서는 쑨원과 그의 측근이 따이지타오(戴季陶)의 글뿐 아니라 기타 레이키치의 [王道と覇道], 그리고 따이지타오와 고토오 신페이 등의 좌담 들을 연두에 둘 것이다. {카이조오}를 통해 1920년대 대아시아주의 담론의 전후 맥락을 복원함으로써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를 새롭게 이해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두고, 제2년차 연구에서는 1920년대 {카이조오}가 중국 담론을 중심으로 아시아담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고찰할 것이며, 아울러 그것이 쑨원을 비롯한 중국 혁명파 지식인의 아시아 지역구상과 어떤 협력 및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진행할 연구대상은 1930년대 전개된 만몽담론과 동아신질서론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만주사변이 발발하는 1931년 이후, 만몽지역에 대한 논의는 {카이조오}의 주요 토론 주제로 급부상한다.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지키고 일본이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동양의 해방'과 더불어 동양의 제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흐름의 전환이자 연장으로, 1930년대 후반이 되면 '동아협동체론'에 대한 구상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1938년 코노에 후미마로에 의해 '동아신질서론'이 제창된 이후, 우파 아시아주의자는 물론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동아의 개조'가 중대한 이슈로 떠오른다. {카이조오}는 이 시기 동아담론의 주요한 전장이었다.
      이에 본 연구의 제3년차에서는 1930년대 본격화된 만몽담론과 1930년대 후반에 출현한 동아협동체론을, 앞서의 1920년대 중국담론의 동아시아로의 팽창이라는 구도 아래 분석하고자 한다. 종적으로는 일본 지식담론 안에서 중국담론-아시아주의-동아신질서론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횡적으로는 동아신질서론에 대한 중국지식인의 반응을 연구 범위 안에 포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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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에서는 1919년에서 1944년까지 {카이조오}에서 전개된 동아 담론을 분석할 것이다. 연구 내용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단계는, 1920년대 초반에 전개된 동서문...

      본 연구에서는 1919년에서 1944년까지 {카이조오}에서 전개된 동아 담론을 분석할 것이다. 연구 내용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단계는, 1920년대 초반에 전개된 동서문명 논쟁이다.
      1921년 {카이조오}에는 버틀란트 러셀과 존 듀이가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에 대한 토론과 더불어 신생국 중국의 국가형태에 대한 전망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같은 해에는 '현대 팔대 철학자와 그 사상'이라는 특집란을 개설하여, 리케르트, 듀이, 아인슈타인, 산타야나, 크로체, 베르그송, 러셀, 오이켄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 외에도 러셀과 듀이는 많은 글을 통해 중국의 사회 및 문명적 전망에 대한 주장을 정력적으로 펼쳤고 그에 대해 니시다 기타로오 등 일본 학자들의 논평과 반론이 이어졌다.
      주목할 것은 1920년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동서문화논전'이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근대 초기 서양의 근대문명 수입에 박차를 가했던 중국 지식인들은 1차대전 직후 서구문명의 몰락을 목도한 후, 문명과 문화에 대한 대대적 반성에 돌입했는데, 이런 분위기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 러셀과 듀이였다. 여기에 인도 시인 타고르의 '동서문화융합론'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론을 위시하여, 21세기 중국문명의 세계사적 전망에 대한 각 진영의 입장이 활발한 각축을 이루었다.
      이로 보건대, 1920년대 중국의 문화보수주의 진영과 서화주의, 맑스주의 진영 사이에서 벌어졌던 동서문명논쟁은 동시기 {카이조오}의 현대문명론 기획과 긴밀한 연관선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카이조오}에 실린 동아시아 문명론 기획을 중국에서 진행된 '동서문화논전'과의 관련 속에서 분석하는 것을 1년차 연구의 과제로 삼는다. '동양문명의 재건'이라는 기획이 {카이조오} 측과 중국 지식인 간에 상호 교차되고 엇갈리는 상황을 잘 살펴본다면, 20세기 초반 동아시아 문명담론의 흥미로운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1920년대 중반, 중국 담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아 담론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1920년대 중반에는 {카이조오}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이슈화된다. 이제 막 근대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국이 향후 적화(赤化)될 가능성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기저에 깔면서, 러시아의 對중국정책, 세계공황의 회복기를 앞둔 중미일의 관계, 중국 내의 노동운동 및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보고와 함게, 궁극적으로는 일본이 중국에 대하여 어떤 관점과 정책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한 글들이 다수 보인다.
      주목할 것은 쑨원의 유명한 연설 '대아시아주의'가 이러한 담론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지점이다. 1920년대 초중반 일본 사회 전반에서 '대아시아주의'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맥락과 분위기가 이 시기 {카이조오} 지면에 역력히 드러난다. 본 연구에서는 쑨원과 그의 측근이 따이지타오(戴季陶)의 글뿐 아니라 기타 레이키치의 [王道と覇道], 그리고 따이지타오와 고토오 신페이 등의 좌담 들을 연두에 둘 것이다. {카이조오}를 통해 1920년대 대아시아주의 담론의 전후 맥락을 복원함으로써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를 새롭게 이해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두고, 제2년차 연구에서는 1920년대 {카이조오}가 중국 담론을 중심으로 아시아담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고찰할 것이며, 아울러 그것이 쑨원을 비롯한 중국 혁명파 지식인의 아시아 지역구상과 어떤 협력 및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세번째 단계에서 진행할 연구대상은 1930년대 전개된 만몽담론과 동아신질서론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만주사변이 발발하는 1931년 이후, 만몽지역에 대한 논의는 {카이조오}의 주요 토론 주제로 급부상한다.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지키고 일본이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동양의 해방'과 더불어 동양의 제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흐름의 전환이자 연장으로, 1930년대 후반이 되면 '동아협동체론'에 대한 구상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1938년 코노에 후미마로에 의해 '동아신질서론'이 제창된 이후, 우파 아시아주의자는 물론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동아의 개조'가 중대한 이슈로 떠오른다. {카이조오}는 이 시기 동아담론의 주요한 전장이었다.
      이에 본 연구의 제3년차에서는 1930년대 본격화된 만몽담론과 1930년대 후반에 출현한 동아협동체론을, 앞서의 1920년대 중국담론의 동아시아로의 팽창이라는 구도 아래 분석하고자 한다. 종적으로는 일본 지식담론 안에서 중국담론-아시아주의-동아신질서론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횡적으로는 동아신질서론에 대한 중국지식인의 반응을 연구 범위 안에 포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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