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성덕도(聖德道)의 본원이 있다. 영천에서 의성으로 가는 길목에 신령이 있는데 예부터 큰 인물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을 북서쪽에 팔공산 줄기가 뻗어 나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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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성덕도(聖德道)의 본원이 있다. 영천에서 의성으로 가는 길목에 신령이 있는데 예부터 큰 인물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을 북서쪽에 팔공산 줄기가 뻗어 나오고 ...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성덕도(聖德道)의 본원이 있다. 영천에서 의성으로 가는 길목에 신령이 있는데 예부터 큰 인물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을 북서쪽에 팔공산 줄기가 뻗어 나오고 그 기슭의 7만여평 도량에 본원을 중심으로 성덕수련원과 성덕대학이 아담한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으면서 반세기동안 묵묵히 수행에만 전념해 온 성덕도는 짜임새 있는 교단본부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조용한 자세로 후천 도덕세계를 조판중에 있는 모습이다.
성덕도를 창도한 이는 월근(月根) 김옥재 도주로 1909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주중리에서 출생했다. 종교적인 가정에서 성장해 한학을 수학했던 그는 일찍부터 인생과 우주에 대한 의문을 품었지만 종교활동에는 직접 나서지 않았는데 젊은 시절 심신의 병고를 겪으면서 구도생활에 뜻을 두게 된다. 그는 구도과정에서 제주 출신 봉남 감재성을 만나 수행의 큰 인연을 가졌고, 그 후 제방을 주유하면서 고행수도하는 일변 많은 난치자들을 구활하기도 했다. 1952년 임진에 대구로 온 월근은 달성에서 한 인재를 만나는데, 천지의 음양이치에 따라 구제창생의 대업을 함께 할 법해 도학수로 본 도에서는 법주이면서 법모님으로 추앙한다. 월근의 수행은 천도에 달해 이윽고 “천기운기 돌아오니 도운도가 밝아온다. 마음 찾자 창생들아, 청심에 선화법을 어서 바삐 찾아 보자” 하면서 대도의 진리를 자각하였고, 동년 5월 27일 법해와 함께 도덕법을 세우고 공부에 들어가니 이 날을 ‘도덕입법일’이라고 부른다.
두 분의 공부는 치열하여 삼복 더위에 두문불출 불면불휴하면서 찬물 한그릇으로 지탱함에 주위의 사람들이 황망해 할 정도였고, 그 가운데 우주자연의 기운을 도의 기운으로 받아 돌리니 이 날이 7월7일 ‘도기일’이다. 그렇게 공부는 계속되었고 10월 3일 월근은 법설 중에 대성 대덕 대도를 내놓았는데 이 때 법해 또한 동시에 같은 법구를 발함에 두 분이 함께 성도한다. 성덕도가 창도되는 순간이며 ‘성도일’로 기념하는데 이 날은 월근 도주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살았다 도덕으로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도덕으로 살아 보자. 도덕 아니면 못사나니 도덕으로 생긴 몸이 도덕을 모른다면 인류사회 못사나니 순천지자는 흥하고 역천지자는 망하나니 지상에 행복 길은 도덕 밖에 없나니라”
도문을 열자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 중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가 많았는데 월근은 몸과 마음의 병이 자신의 근본을 잊어버린 데에서 나옴을 일깨우며 자성반성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성도한 해인 12월 10일 ‘무량청정정방심 무량청정정방수 무량청정정방법’을 설하니 본 도의 수행법이요 기운법인 ‘심수법’이 나오게 된다. 또한 제자들 가운데 가장 공부가 뛰어 났던 네 사람을 택해 1954년 11월 26일 호법의 4주를 임명하니 ‘사주입법일’이다. 도덕입법일 도기일 성도일과 함께 본 도에선 4대 경축일로 기념한다. 이 밖에 도주 법주와 사주 및 교화에 힘쓰다 간 성직자의 영령을 추모하는 춘향대제일과 추향대제일이 있다.
월근도주는 임진 계사 갑오에 이르는 3년간 천법의 이치와 유불선 삼합의 법리와 자성신앙의 묘법을 설하면서 도의 체계를 세웠고 이 후 계속된 그의 법설을 정립해 뒷 날 소의경전이 완성되니 ‘자성반성 성덕명심 도덕경’이다. 오직 우주대자연법이 내 속에 있으므로 인간의 본성인 청정심을 찾아 자신과 사해동포와 삼라만상이 도덕으로 일가화 되기를 염원하면서 8년간의 덕화를 나투었던 월근은 1960년 3월 4일 생애를 마치니 53세의 짧은 일기였고 그의 묘소는 고향인 김해에 안치된다.
월근의 귀천 후 도주와 함께 법주로서 성덕도를 이끌어 온 법해는 효율적인 교화포덕을 위해 성덕도교화원으로 사단법인 인가를 필했고 다시 성덕도로 개칭하는 등 교단체제를 정비했으며, 또한 월간 신문 성덕도보를 간행해 도덕정신을 발양하면서 많은 문하생들을 양성하다가 1984년 1월 22일 세연을 다하니 세수 80세였다.
도주와 법주가 타계한 성덕도는 이미 생전에 정해 놓은 사주시대에 들어섰고 그 중 인성지 김윤재와 원달군 윤명수의 2인이 교단의 대표가 된다. 그리고 두 분 스승의 유지를 받아 제도의 정착을 꾀하니, 일생을 교화에 바치고 퇴임한 성직자의 노후를 위해 보양원을 개설했고, 재단법인 성덕도유지재단을 설립했으며, 성덕도보의 후신으로 월간지 성덕의 빛을 발행했고, 청소년 수련의 집인 성덕수련원을 개원했으며, 인재교육을 위해 성덕대학을 개교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현재 성덕도는 신성지 윤한수가 성도사로서 대표인 도종을 맡고 있으며, 2002년에는 교단의 숙원사업이었던 도헌이 제정되고, 2004년에는 교직자 양성기관인 교육원이 개설되었다. 이제 성기 53주년을 맞고 있는 성덕도는 창도기를 지나 제도정착기를 확고히 하면서 더불어 성덕문화를 창명하는 중요한 과정에 접어든 셈이다.
성덕도는 짧지 않은 도사를 가지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 본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전국에 12개 교구와 118개의 교화원을 구축해 놓았고 2백여명의 교화사들이 조용히 내실을 다지기에 바쁘다. 교인을 도생이라고 하며, 그 가운데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를 교화생이라 부르고 성직자를 교화사라고 하는데, 수행생활의 법도가 엄격해 일단 교화사가 되면 인격체의 모범으로서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다. 남녀비율은 3대 7로 여성이 많고 음양상생지도에 의해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내수도로 일관하면서도 성덕도는 도덕구현에는 앞장 서 1958년부터 교도소 소년원 군부대 행정기관 학교 사회단체 일반인을 대상으로 2천5백여회의 강연과 방송을 실시해 오는 중이다. 근래에는 성덕수련원을 통해 직접 입소교육을 하고 있는데 인의관 예지관 야외수련장으로 꾸며진 수련원의 시설과 교육내용은 이미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성덕도 교화원에는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있는 법단이나 신앙대상이 없고 또한 의식과 예법도 매우 간소한 편이다. 오직 자신의 성품을 반성하고 닦으면서 천지의 자연법도를 심수법으로 운기해 스스로를 완성할 뿐이다. 매일 저녁이면 도생들이 교화원에 모여 청심주인 ‘무량청정정방심’을 주송하고 경전인 도덕경을 공부하며, 일요일은 제성일이라고 하여 오전에 수행정진한다.
가족이 모두 공부함이 특징이고 따라서 가정을 기초해 사회 국가 세계의 오탁함을 닦아내고 모두가 청정한 도덕군자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
성은 유요, 덕은 불이고, 도는 선 인바 3령이 자기 몸에 있으니 닦아 보면 유불선이며, 나 이외의 것을 위하거나 구원 요청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반성하고 찾으면 천지 대자연의 기운이 차차 운기되어 자성이 완성되며, 그 가운데 저절로 원자(圓慈)정신이 무위이화로 일어나 일체를 사랑하게 되며 더불어 심수묘법으로 활인포덕하니, 후천의 개벽과 성지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음을 성덕도는 실천으로 말하고 있다. (이 경 우 한국새종교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