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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엘 부에노 ( Manuel Bueno ) 와 단편소설 = Manuel Bueno y la novela co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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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3060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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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1907년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스페인 문학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단편 소설과, 신문 기자로서 이 장르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작품활동에 열심이었던 마누엘 부에노의 생애와 그의 단편 소설을 테마에 따라 분류하고자 한다. 작품 분석에 앞서 마누엘 부에노는 어떠한 인물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마누엘 부에노는 프랑스의 `포`(Pau)라는 도시에서 l874년 6월 14일에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경제적인 빈곤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가 서로 헤어지는 동기가 되었다. 혼자서 자식들의 부양을 떠맡게된 어머니는 궁핍으로부터 벗어 날수 없어 그녀의 장남인 마누엘 부에노를 수도원에 맡긴다. 이곳에서 부에노는 수도승들과 생활하며, 라틴어를 익히게 된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후에 그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보고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두번이나 남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나보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빌바오에 돌아온다. 그러나 이민 생활동안 처음으로 경험했던 신문 집필 경험은 그의 문학적인 재능과 함께 일생동안 신문기자로서 대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1896년 빌바오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1897년 초에 그는 마드리드로 이주한다. 여기에서 그는 1898년 스페인 해군이 미국 함대에게 참패를 당하고, 스페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하고, 쿠바에게 독립을 보장해야 했던 조국의 뼈아픈 현실을 접한다.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가치관과 정신 재무장을 주도하는 문인들과 그는 합류하여 돈독한 교분을 유지하는 한편, 방대한 독서를 통한 독학으로 습득한 지식은 문인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국경을 초월한 문화를 접하며 식견을 쌓아간다. 당시 문인들은 습관적인 모임을 여러 곳에서 가졌는데, 그중 하나였던 까페 델 라 몬따냐라는 곳에서 1899년경 그는 사소한 시비로 바예 잉끌란과 싸움을 벌였다. 바예 잉끌란은 이 싸움 때문에 왼쪽 손목에 얻었던 부상이 악화되어 왼쪽팔을 잃게되는 비운을 맞이하지만 둘사이의 우정은 지속된다. 1904년 까르멘 에르난데스와 결혼하여 그는 홀어머니와 같이 행복한 생활을 누렸으나, 결혼한 지 4년만에 그의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로 하여금 다시 비운을 맛보게 한다. 둘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1910년부터 1916년 사이에 우엘바, 하엔, 그리고 알만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23년까지 지속되었던 마드리드 거주 기간 동안 그는 이미 기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스페인 땅에 1923년 9월 13일 미겔 쁘리모 데 리베라의 군부 쿠데타가 있고 난 후 마누엘 부에노는 마드리드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듬해 부터 그의 신문기사는 파리로부터 발송되어 스페인의 전통 보수당지 ABC에 실리기 시작하여 그의 생 애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된다. 청년기에 무정부 주의자였던 그의 변신이 가시화된 셈이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그는 스페인 시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 7월 중 순 경 암살 당한다. 마누엘 부에노는 번역가이자 극작가였으며,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다. 번역가로서 그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영어로된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연극 작품들을 번역하였고, 또한 사랑을 다루는 러시아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불어로 된 강의 내용을 번역하였다. 그는 1909년 스페인 현대 연극 이란 제목으로 동시대 극작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에 관한 평론을 한데 모아 책으로 출간하였다.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과 군주국(1925) 그리고 정치체제에 직면하여(1933)라는 정치 연구서를 출판하였다 마누엘 부에노는 수많은 단편을 썼으나 책으로 출판한 것은 네권이며, 여기에는 6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17편의 단편 소설을 썼고 6권의 장편 소설을 남겼다. 새로운 문학장르로서 스페인에 1907년 1월 7일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단편소설에 대해 마누엘 부에노는 기다렸다는 듯이 1월 6일자 에랄도 데 마드리드(Heraldo de Madrid)지에 환영기사를 썼다. 그의 이 장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같은 해 4월에 첫 작품을 발표함을 시발점으로 지속적인 작품활동으로 대변된다. 스페인내에서 단편소설에 대한 열기는 1932년을 기점으로 쇠퇴의 기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누엘 부에노는 1936년까지 17편의 단편소설을 10여 곳의 출판사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각각의 소설을 테마별로 분석하여 크게 나눈다면, 사랑을 주제로 하거나 사랑이 원인이 되어 파생되는 문제들을 도덕성에 비추어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여, 순수한 이성간의 사랑을 비롯하여, 이루어질수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무반응의 상태, 사랑없는 부부간의 갈등, 기혼남녀의 부정한 사랑, 이외에도 고전적인 테마에서 부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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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1907년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스페인 문학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단편 소설과, 신문 기자로서 이 장르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작품활동에 열심이었던 마누엘 부에노의 생애와 ...

      본고는 1907년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 스페인 문학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단편 소설과, 신문 기자로서 이 장르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작품활동에 열심이었던 마누엘 부에노의 생애와 그의 단편 소설을 테마에 따라 분류하고자 한다. 작품 분석에 앞서 마누엘 부에노는 어떠한 인물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마누엘 부에노는 프랑스의 `포`(Pau)라는 도시에서 l874년 6월 14일에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경제적인 빈곤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가 서로 헤어지는 동기가 되었다. 혼자서 자식들의 부양을 떠맡게된 어머니는 궁핍으로부터 벗어 날수 없어 그녀의 장남인 마누엘 부에노를 수도원에 맡긴다. 이곳에서 부에노는 수도승들과 생활하며, 라틴어를 익히게 된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후에 그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보고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두번이나 남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나보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빌바오에 돌아온다. 그러나 이민 생활동안 처음으로 경험했던 신문 집필 경험은 그의 문학적인 재능과 함께 일생동안 신문기자로서 대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1896년 빌바오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1897년 초에 그는 마드리드로 이주한다. 여기에서 그는 1898년 스페인 해군이 미국 함대에게 참패를 당하고, 스페인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하고, 쿠바에게 독립을 보장해야 했던 조국의 뼈아픈 현실을 접한다.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가치관과 정신 재무장을 주도하는 문인들과 그는 합류하여 돈독한 교분을 유지하는 한편, 방대한 독서를 통한 독학으로 습득한 지식은 문인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국경을 초월한 문화를 접하며 식견을 쌓아간다. 당시 문인들은 습관적인 모임을 여러 곳에서 가졌는데, 그중 하나였던 까페 델 라 몬따냐라는 곳에서 1899년경 그는 사소한 시비로 바예 잉끌란과 싸움을 벌였다. 바예 잉끌란은 이 싸움 때문에 왼쪽 손목에 얻었던 부상이 악화되어 왼쪽팔을 잃게되는 비운을 맞이하지만 둘사이의 우정은 지속된다. 1904년 까르멘 에르난데스와 결혼하여 그는 홀어머니와 같이 행복한 생활을 누렸으나, 결혼한 지 4년만에 그의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로 하여금 다시 비운을 맛보게 한다. 둘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1910년부터 1916년 사이에 우엘바, 하엔, 그리고 알만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23년까지 지속되었던 마드리드 거주 기간 동안 그는 이미 기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스페인 땅에 1923년 9월 13일 미겔 쁘리모 데 리베라의 군부 쿠데타가 있고 난 후 마누엘 부에노는 마드리드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듬해 부터 그의 신문기사는 파리로부터 발송되어 스페인의 전통 보수당지 ABC에 실리기 시작하여 그의 생 애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된다. 청년기에 무정부 주의자였던 그의 변신이 가시화된 셈이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그는 스페인 시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 7월 중 순 경 암살 당한다. 마누엘 부에노는 번역가이자 극작가였으며,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다. 번역가로서 그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영어로된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연극 작품들을 번역하였고, 또한 사랑을 다루는 러시아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불어로 된 강의 내용을 번역하였다. 그는 1909년 스페인 현대 연극 이란 제목으로 동시대 극작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에 관한 평론을 한데 모아 책으로 출간하였다.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과 군주국(1925) 그리고 정치체제에 직면하여(1933)라는 정치 연구서를 출판하였다 마누엘 부에노는 수많은 단편을 썼으나 책으로 출판한 것은 네권이며, 여기에는 68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17편의 단편 소설을 썼고 6권의 장편 소설을 남겼다. 새로운 문학장르로서 스페인에 1907년 1월 7일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단편소설에 대해 마누엘 부에노는 기다렸다는 듯이 1월 6일자 에랄도 데 마드리드(Heraldo de Madrid)지에 환영기사를 썼다. 그의 이 장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같은 해 4월에 첫 작품을 발표함을 시발점으로 지속적인 작품활동으로 대변된다. 스페인내에서 단편소설에 대한 열기는 1932년을 기점으로 쇠퇴의 기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누엘 부에노는 1936년까지 17편의 단편소설을 10여 곳의 출판사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각각의 소설을 테마별로 분석하여 크게 나눈다면, 사랑을 주제로 하거나 사랑이 원인이 되어 파생되는 문제들을 도덕성에 비추어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여, 순수한 이성간의 사랑을 비롯하여, 이루어질수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무반응의 상태, 사랑없는 부부간의 갈등, 기혼남녀의 부정한 사랑, 이외에도 고전적인 테마에서 부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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