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목록학사』의 장절 구성의 우수성, 이론적인 독창성, 저술사적인 의미 등의 관점에서 번역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목록학에 대한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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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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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목록학사』의 장절 구성의 우수성, 이론적인 독창성, 저술사적인 의미 등의 관점에서 번역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목록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이론적 독창성: 본서에서 요명달은 목록학의 이론적인 측면에서 독창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예를 들면, 중국고대 목록학의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분류(分類)를 중시하고 편목(篇目)을 경시하고, 해제(解題)를 두었지만 색인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분류라는 것이 학술분류의 기초가 되지 못했고, 또한 도서내용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리고 목록학의 실용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주제목록(主題目錄)의 중요성과 상세한 해제(解題)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서가목록과 색인목록의 분리 등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목록학의 실용성과 실천성에 착안하여 전국 각지의 통일적인 도서 분류와 도서 색인법 보급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둘째, 종교목록학 분야의 독창성: 불교목록은 중국고대 목록학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며, 고대 불교문화의 연구와 이해를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중국에서 가장 처음 불교목록을 연구한 학자는 양계초(梁啓超)로서 그 시작은 1926년 『佛家經錄在中國目錄學之位置』란 문장을 『圖書館學季刊』(創刊號)에서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요명달은 당시 스승 양계초의 연구경향과 성과에 영향을 받으면서 불교목록 연구에 매진했고, 그 성과는 본서 「종교목록학」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종교목록은 『중국목록학사』의 중요한 특징중에 하나이다.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목록의 통사적인 논술을 들 수 있는데, 각 시대별로 불교목록의 상황을 논평했고, 왕조별 주요한 목록의 내용과 그 특징을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둘째, 문헌의 고증과 판별로서 요명달은 고증을 통해 시시비비의 경계를 논하면서 문헌의 진위를 밝혔다. 예를 들면 『구록(舊錄)』은 서한(西漢)시기의 불록(佛錄)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고증을 통해 서진(西晉)시기 성제(成帝)와 폐제(廢帝) 사이(A.D 341-370년)의 것임이 증명되었다. 셋째, 불교목록 발전의 시대적 구분, 요명달은 시대구분을 통해 불교목록의 발생, 발전, 번영, 쇠락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논술했다. 그는 위진(魏晋)은 불교의 발생기, 남북조(南北朝)는 성립기, 수당(隋唐)은 번성기, 송(宋) 이후는 쇠락기로 보았다. 이는 모두 목록학의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구분했고, 그의 이러한 시대구분은 한국의 불교목록학 연구에도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공한다.
셋째, 목록학의 학문적 실천성과 실용성의 강조: 요명달은 목록학의 출현 원인이 “분별유차(分別類次)”와 “조별이동(條別異同)”에 있다고 보았다. 즉 도서 편차(篇次)의 분류와 분류 항목의 동이(同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 두 가지 기능이 확대되면서 비로소 목록이 학문적인 목록학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복잡한 도서를 간단한 목록으로 작성해 독자에게 도서색인과 학문연구에 편이를 제공하는 것이 목록학의 주 기능 이므로, 학술연구자는 가장 먼저 목록학의 기본 지식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요명달은 목록학을 순수한 학문이론으로 보지 않고 도서이해라 보면서 강한 실천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목록학과 관련 있는 학문분야 가운데 교수학(校讐學)이 갖는 역할을 강조했다.
넷째, 중국전통 목록학의 가치모색: 중국의 목록학은 청대(淸代)에 이르러 하나의 학문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저명한 학자인 왕명성(王鳴盛)은 『십칠사상각(十七史商榷)』에서 “목록학은 학문 중에 가장 긴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1915년의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시기에 근대 중국 목록학은 새롭게 발전했고, 학자들은 중국전통 목록학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하에 요명달은 서구의 선진사상과 과학기술을 기초로 전통 목록학의 원리, 방법 등의 이론 체계를 수립했고, 이를 통해 목록학의 과학화 및 실용적 가치의 모색이란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