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조선 왕실의 기양의례 = The Study on rite of affliction of royal family in Joseon Dynasty :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436875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왕실에서 운이 좋지 않거나 액이 닥치거나 괴이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행한 移御를 통해 왕실의례 생활의 한 측면을 살피고자 한다.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운이 좋지 않거나 액이 닥치거나 괴이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 다양한 행위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고자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구성원의 거처를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이것이 ‘移御’이다.
      왕을 비롯하여 왕실 가족 구성원의 안위는 국가의 안위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시된다. 때문에 이어는 당시 왕실에서 꺼리던 다양한 원인이 이유가 되어 베풀어졌다. 이어의 이유는 사나운 運數, 감기로부터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사소하거나 중증의 疾病, 궁궐 안에서의 왕실 가족원의 죽음, 變故 등이다. 개인의 사나운 운수나 공간이 지닌 불미스러움이 빌미가 되어 탈이 날 수 있다는 관념은 시대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그 탈은 질병이나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반드시 극복해야 했다.
      관상감이 택한 길한 날짜와 방위로 이어하지만 이어를 행할 때는 세 단계로 나누어 의례를 베풀었다. 이들 의례는 낯선 곳의 생활이 지닌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위험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국가 祀典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祈禳과 관련한 의례가 辨祀로 처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유교적인 의례가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실제 이어와 관련한 의례는 유교식 의례가 아닌 古例에 의거한 다양한 의례들이 사용되었다. 中宗 대에 이르면 유교적 이념인 德만이 재변을 이겨낼 수 있다는 名分論이 강화되면서 위기론의 입장에서 베풀어진 이러한 의례들은 모두 淫祀로 거부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숙종 대까지는 수시로 되풀이되어 행해졌다. 결국 위기론의 입장이 강조되면서 관련 의례는 소멸되었지만 이어는 국말까지 존속되었다.
      이어가 조선전기로부터 국말까지 줄곧 유지되었던 것은 그것이 지닌 효험과 관련 깊다. 해당 공간이 지닌 위험이나 불운으로부터 벗어나 길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다양한 원칙과 규제로써는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영역에서 야기되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삶을 질서정연한 삶으로 바꾸는 의례로 이어는 필요한 것이었다.
      번역하기

      이 연구는 왕실에서 운이 좋지 않거나 액이 닥치거나 괴이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행한 移御를 통해 왕실의례 생활의 한 측면을 살피고자 한다.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운...

      이 연구는 왕실에서 운이 좋지 않거나 액이 닥치거나 괴이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행한 移御를 통해 왕실의례 생활의 한 측면을 살피고자 한다. 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운이 좋지 않거나 액이 닥치거나 괴이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 다양한 행위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고자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구성원의 거처를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이것이 ‘移御’이다.
      왕을 비롯하여 왕실 가족 구성원의 안위는 국가의 안위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시된다. 때문에 이어는 당시 왕실에서 꺼리던 다양한 원인이 이유가 되어 베풀어졌다. 이어의 이유는 사나운 運數, 감기로부터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사소하거나 중증의 疾病, 궁궐 안에서의 왕실 가족원의 죽음, 變故 등이다. 개인의 사나운 운수나 공간이 지닌 불미스러움이 빌미가 되어 탈이 날 수 있다는 관념은 시대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그 탈은 질병이나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반드시 극복해야 했다.
      관상감이 택한 길한 날짜와 방위로 이어하지만 이어를 행할 때는 세 단계로 나누어 의례를 베풀었다. 이들 의례는 낯선 곳의 생활이 지닌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위험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국가 祀典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祈禳과 관련한 의례가 辨祀로 처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유교적인 의례가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실제 이어와 관련한 의례는 유교식 의례가 아닌 古例에 의거한 다양한 의례들이 사용되었다. 中宗 대에 이르면 유교적 이념인 德만이 재변을 이겨낼 수 있다는 名分論이 강화되면서 위기론의 입장에서 베풀어진 이러한 의례들은 모두 淫祀로 거부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숙종 대까지는 수시로 되풀이되어 행해졌다. 결국 위기론의 입장이 강조되면서 관련 의례는 소멸되었지만 이어는 국말까지 존속되었다.
      이어가 조선전기로부터 국말까지 줄곧 유지되었던 것은 그것이 지닌 효험과 관련 깊다. 해당 공간이 지닌 위험이나 불운으로부터 벗어나 길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다양한 원칙과 규제로써는 해결될 수 없는 삶의 영역에서 야기되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삶을 질서정연한 삶으로 바꾸는 의례로 이어는 필요한 것이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is about one side of royal rituals,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hich is for overcoming disaster, misfortune or strange affairs. People would get out of crisis through various actions when unlucky or bad things happen regardless of periods. Therefore, royal family tried to solve the problem with changing dwelling place in royal family of Joseon Dynasty. It is called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Security of royal family member including king is important with national security. Therefore,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happened because of various reasons which were avoided the royal family at that time. The reasons of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are epidemic which is from small to serious, death of royal family member in the palace or accident. The conception, personal tough fortune could come out a trouble, is limit in the idealistic times. As the trouble was followed at disease or death, so it had to certainly overcome.
      The government office where took care of astronomy and geography set good time and direction for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and the ritual was given as three steps. Those rituals are to overcome incompleteness that life of strange place and to prevent risk in every moment. Even though this ritual was not in the national dictionary, ritual which is related to Affliction was treated Byeonsa (special ritual), so it could apply as confusional ritual.
      Actually, ritual which is related to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used various rituals on the basis of Gorye (Ritual which came down from the past), not from confusional ritual. Up to era of King Jungjong (中宗), 名分論(moral obligation) that virtue could get over from accident by disaster was strengthened, so it was refused all of those rituals as 淫祀 (Umsa, Ritual for bad spirit). However, it was often held repletely until era of King Sokjong. After all, ritual which is related to 名分論(moral obligation) while crisis was more emphasized, but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continued until the end of country.
      The reason why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could be continued from the early to the end of Joseon Dynasty was that it has deep connection with its efficacy. Moving the place from danger or bad luck to good and clean is chance to feel comfortable psychologically.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necessary as the ritual which incomplete and uncertain life that couldn’t solve in the area of life changes the life of apple-pie order.
      번역하기

      This study is about one side of royal rituals,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hich is for overcoming disaster, misfortune or strange affairs. People would get out of crisis through various actions when unlucky or bad things happen regardless...

      This study is about one side of royal rituals,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hich is for overcoming disaster, misfortune or strange affairs. People would get out of crisis through various actions when unlucky or bad things happen regardless of periods. Therefore, royal family tried to solve the problem with changing dwelling place in royal family of Joseon Dynasty. It is called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Security of royal family member including king is important with national security. Therefore,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happened because of various reasons which were avoided the royal family at that time. The reasons of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are epidemic which is from small to serious, death of royal family member in the palace or accident. The conception, personal tough fortune could come out a trouble, is limit in the idealistic times. As the trouble was followed at disease or death, so it had to certainly overcome.
      The government office where took care of astronomy and geography set good time and direction for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and the ritual was given as three steps. Those rituals are to overcome incompleteness that life of strange place and to prevent risk in every moment. Even though this ritual was not in the national dictionary, ritual which is related to Affliction was treated Byeonsa (special ritual), so it could apply as confusional ritual.
      Actually, ritual which is related to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used various rituals on the basis of Gorye (Ritual which came down from the past), not from confusional ritual. Up to era of King Jungjong (中宗), 名分論(moral obligation) that virtue could get over from accident by disaster was strengthened, so it was refused all of those rituals as 淫祀 (Umsa, Ritual for bad spirit). However, it was often held repletely until era of King Sokjong. After all, ritual which is related to 名分論(moral obligation) while crisis was more emphasized, but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continued until the end of country.
      The reason why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could be continued from the early to the end of Joseon Dynasty was that it has deep connection with its efficacy. Moving the place from danger or bad luck to good and clean is chance to feel comfortable psychologically. 移御 (moving King’s dwelling place) was necessary as the ritual which incomplete and uncertain life that couldn’t solve in the area of life changes the life of apple-pie order.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移御의 원인
      • 3. 移御와 생활상
      • 4. 移御와 기양의례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移御의 원인
      • 3. 移御와 생활상
      • 4. 移御와 기양의례
      • 5. 맺음말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練藜室記述"

      2 제임스 게일, "코리안 스케치" 현암사 1971

      3 아손 그렙스트, "코레아 코레아니" 미완 1986

      4 임승범, "충남 내포지역의 앉은굿 연구" 한남대 2005

      5 김문식,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6 백영자, "조선시대의 어가행렬" 방송통신대학출판부 1994

      7 이능화, "조선도교사" 보성문화사 1992

      8 W. E.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집문당 1999

      9 홍순민, "우리궁궐이야기" 청년사 1999

      10 정두희,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88 : 1999

      1 "練藜室記述"

      2 제임스 게일, "코리안 스케치" 현암사 1971

      3 아손 그렙스트, "코레아 코레아니" 미완 1986

      4 임승범, "충남 내포지역의 앉은굿 연구" 한남대 2005

      5 김문식,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6 백영자, "조선시대의 어가행렬" 방송통신대학출판부 1994

      7 이능화, "조선도교사" 보성문화사 1992

      8 W. E.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집문당 1999

      9 홍순민, "우리궁궐이야기" 청년사 1999

      10 정두희,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88 : 1999

      11 최종성, "국행 무당 기우제의 역사적 고찰" 진단학회 86 : 1998

      12 백성현, "국왕의 거동 in: 파란 눈에 비친 하얀조선" 새날 1999

      13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國朝喪禮補編" 민속원 2008

      14 "高麗史"

      15 "經國大典"

      16 "松窩雜說"

      17 "東醫寶鑑"

      18 "朝鮮王朝實錄"

      19 "書雲觀志"

      20 "承政院日記"

      21 "大典會通"

      22 "嘉禮都監半遮圖"

      23 "備邊司謄錄"

      24 "1984년 7월 21일, 「서울 거리를 지나는 국왕의 행렬」, 그래픽"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