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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청의 賜祭․賜諡에 대한 조선의 대응 = The Memorial services and Posthumous titles provided by China, and the Joseon government's response -Examining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Transition period between Chinese Ming/明 and Qing/淸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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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When a Joseon king died, the Joseon government always notified the Chinese government. And the Joseon government also requested for a posthumous title of the deceased king and the installation of the crown king. As a result, The Chinese government provided a formal funeral service and a posthumous title for the Joseon king. The Joseon government received a posthumous title and the funeral service details at the Honjeon/魂殿 shrine where the tablet of the deceased king was enshrined. And Joseon government carried out a step to crown as a king By the way, Joseon responded differently to China's generosity, according to the issue of which was their counterpart at the time, either Ming or Qing. During Ming times, the Joseon government reflected the posthumous title provided by Ming upon the deceased king's tablet, and used them in diplomatic documents as well. But during Qing times, only a temporary Honjeon shrine was erected and the posthumous title from Qing was not reflected upon the tablet, but was only used in diplomatic documents.
    Also Joseon government recoded shortly the procedure of a formal funeral service and a posthumous title. It was a gesture trying to protect the Joseon people's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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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a Joseon king died, the Joseon government always notified the Chinese government. And the Joseon government also requested for a posthumous title of the deceased king and the installation of the crown king. As a result, The Chinese government pro...

    When a Joseon king died, the Joseon government always notified the Chinese government. And the Joseon government also requested for a posthumous title of the deceased king and the installation of the crown king. As a result, The Chinese government provided a formal funeral service and a posthumous title for the Joseon king. The Joseon government received a posthumous title and the funeral service details at the Honjeon/魂殿 shrine where the tablet of the deceased king was enshrined. And Joseon government carried out a step to crown as a king By the way, Joseon responded differently to China's generosity, according to the issue of which was their counterpart at the time, either Ming or Qing. During Ming times, the Joseon government reflected the posthumous title provided by Ming upon the deceased king's tablet, and used them in diplomatic documents as well. But during Qing times, only a temporary Honjeon shrine was erected and the posthumous title from Qing was not reflected upon the tablet, but was only used in diplomatic documents.
    Also Joseon government recoded shortly the procedure of a formal funeral service and a posthumous title. It was a gesture trying to protect the Joseon people's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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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의 국왕이 승하하면 중국의 황제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선 정부에서는 중국의 황제에게 조선의 승하한 국왕을 위해 諡號를 내려주고, 새로 즉위할 국왕에게 冊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돌아가신 국왕에게 시호와 함께 제사를 내려주고 새로 즉위한 국왕을 책봉하는 절차를 수행했다. 이때 내려준 시호와 제사는 승하한 국왕의 신주[虞主]를 봉안한 魂殿에서 받았다.
    중요한 것은 중원의 주인이 明인지 淸인지에 따라 조선의 대응이 달랐다는 사실이다. 명이 존재할 때에는 명 황제가 내린 시호를 신주에 반영한다든가 외교 문서에 사용했다. 또 조선에서는 명에서 내린 제사와 시호를 받는 절차를 여러 문헌에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청이 존재할 때에는 청 황제가 내려준 시호를 신주에 쓰지 않고 외교 문서에만 썼다. 또 조선에서는 청에서 내린 제사와 시호를 받는 절차에 대해 매우 소략하게 기록했다.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고 조선의 중화 의식을 드러내는 태도로 이해된다.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건립되어 제후국에서 천자국으로 국체가 격상되면서 이와 같은 일련의 일을 수행할 필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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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국왕이 승하하면 중국의 황제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선 정부에서는 중국의 황제에게 조선의 승하한 국왕을 위해 諡號를 내려주고, 새로 즉위할 국왕에게 冊封해 줄 것을...

    조선의 국왕이 승하하면 중국의 황제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조선 정부에서는 중국의 황제에게 조선의 승하한 국왕을 위해 諡號를 내려주고, 새로 즉위할 국왕에게 冊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돌아가신 국왕에게 시호와 함께 제사를 내려주고 새로 즉위한 국왕을 책봉하는 절차를 수행했다. 이때 내려준 시호와 제사는 승하한 국왕의 신주[虞主]를 봉안한 魂殿에서 받았다.
    중요한 것은 중원의 주인이 明인지 淸인지에 따라 조선의 대응이 달랐다는 사실이다. 명이 존재할 때에는 명 황제가 내린 시호를 신주에 반영한다든가 외교 문서에 사용했다. 또 조선에서는 명에서 내린 제사와 시호를 받는 절차를 여러 문헌에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청이 존재할 때에는 청 황제가 내려준 시호를 신주에 쓰지 않고 외교 문서에만 썼다. 또 조선에서는 청에서 내린 제사와 시호를 받는 절차에 대해 매우 소략하게 기록했다.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고 조선의 중화 의식을 드러내는 태도로 이해된다.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건립되어 제후국에서 천자국으로 국체가 격상되면서 이와 같은 일련의 일을 수행할 필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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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列聖誌狀通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2 "한국고전종합DB"

    3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4 "조선왕조실록 웹사이트"

    5 李賢珍, "조선시대 종묘의 神主․位版題式의 변화 -明․淸의 교체를 기점으로-" 101 : 2006

    6 신병주, "조선시대 儀軌 편찬의 역사" 조선시대사학회 (54) : 269-300, 2010

    7 韓明基, "조선과 명의 사대관계" 2000

    8 李賢珍, "정조대 국가전례서의 편찬과 그 성격 -『國朝五禮通編』과『春官通考』凶禮를 중심으로-"

    9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소 27 : 161-211, 2011

    10 "승정원일기 웹사이트"

    1 "列聖誌狀通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2 "한국고전종합DB"

    3 이현진,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일지사 2008

    4 "조선왕조실록 웹사이트"

    5 李賢珍, "조선시대 종묘의 神主․位版題式의 변화 -明․淸의 교체를 기점으로-" 101 : 2006

    6 신병주, "조선시대 儀軌 편찬의 역사" 조선시대사학회 (54) : 269-300, 2010

    7 韓明基, "조선과 명의 사대관계" 2000

    8 李賢珍, "정조대 국가전례서의 편찬과 그 성격 -『國朝五禮通編』과『春官通考』凶禮를 중심으로-"

    9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소 27 : 161-211, 2011

    10 "승정원일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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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현진, "대한제국의 선포와 종묘 제도의 변화 -七廟의 구성과 황제 추존, 신주 改題를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40) : 499-53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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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5 韓明基, "권력과 자존심과 탐학의 여행길:중국 칙사들의 조선 사행 세상사람의 조선여행" 글항아리 2012

    16 신병주, "광해군 시기 의궤의 편찬과 그 성격" 경남문화연구원 (22) : 253-287, 2006

    17 李範稷, "韓國中世禮思想硏究-五禮를 中心으로-" 一潮閣 1991

    18 "通文館志"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6

    19 "迎接都監都廳儀軌"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

    20 "迎接都監賜祭廳儀軌"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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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朝鮮王朝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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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日省錄"

    29 "承政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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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增補文獻備考" 명문당 1985

    33 "國朝喪禮補編(奎1339, 奎3940)"

    34 "國朝五禮通編(奎4773)"

    35 "國朝五禮儀, In 國朝續五禮儀" 민창문화사 1994

    36 "同文彙考" 國史編纂委員會 1978

    37 허지은, "丁應泰의朝鮮誣告事件을 통해 본 조명관계" 한국사학회 (76) : 169-205, 2004

    38 韓明基, "『迎接都監儀軌』解題『迎接都監都廳儀軌』․『迎接都監賜祭廳儀軌』"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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