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의 연향악장 개편 양상과 그 의의 = A Study on Hong Gyeongmo’s Revision of Yeonhyangakjang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2000237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순조, 헌종 연간의 소론계 중신이었던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가 궁중 연향악장을 개편했던 방식과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의의를 논의하는 데 목적을 둔다.
      『국조악가(國朝樂歌)』 권4에서 연향악장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홍경모는 우선 주요한 작품의 내역을 개관하였다. 태조에서 세종대에 제작된 작품들을 나열하면서 4세기 전에 이루어진 악장의 제반 현상을 간결하고도 요령 있게 기술하였으며, 이를 위해 다수의 문헌을 참고한 자취가 역력하다. 다만, 일부 기술에서는 오류가 발견되는데, 특히 〈용비어천가〉의 악곡과 정재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류가 빈번하다. 그러나 그 같은 착종은 해당 악곡과 정재의 면모를 고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연행이 빈한해졌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홍경모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폭넓게 활용하여 선초 연향악장의 내역을 정리하였으며,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것 자체가 조선후기 악장의 여러 정황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국조악가』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사항은 홍경모가 종래 작품의 내용과 표현을 주관에 따라 뒤바꿈으로써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악장을 새롭게 구성해 보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국조연향악가」편에서는 모두 일곱 작품을 다루었는데, 의작의 수위와 방식은 작품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전체적인 경향성은 뚜렷이 간취된다. 홍경모는 조종의 면면 가운데 확증할 수 있는 사항들, 즉 실덕에 해당하는 내용을 명징하게 부각하려 의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정치적 업적이든 개인적 덕망이든 실체가 분명한 사적을 칭송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반대로 꿈이나 도참, 상서 등과 같은 이적(異蹟)이 개입된 경우에는 경험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작품의 내용이나 표현을 조정하였다. 신이함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되 그 전말을 굳이 자세히 기술하거나 흥미롭게 전달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해당 사적의 의미를 천명 또는 민심과 연계 지어 해석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요컨대 홍경모는 왕조의 창업이 조종의 자질과 명망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필연적 귀결이라는 주제를 한층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였다. 개국의 위업을 홍포하고 국가의 위상을 드높여야 할 악장의 근본적 요건에 보다 충실한 작품을 지어내려는 의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파악된다.
      실상 연향악장의 대부분은 태조에서 세종대에 걸쳐 제정되었거니와, 이들 작품에 포함된 감격적 수사를 홍경모는 다소 과장되거나 작위적이라고 느꼈을 여지가 다분하다. 개국 초에는 역성혁명의 동인과 조종의 위상을 가급적 신성하게 그려내어 독자나 청자를 감복시키는 방식이 필요하지만, 창업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후대에는 국조들의 업적을 실상에 가깝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흠모의 정을 표출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때문에 홍경모는 재래의 연향악장을 자신의 시대에 맞게 좀 더 완정하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개편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확대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악장의 속성과 관련된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궁중 악장은 한 번 찬정되면 좀처럼 변개되지 않는 완고한 특징을 지닌다. 선대의 제작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현실적 난점 때문이다. 홍경모 역시도 이러한 제약에서 완연히 벗어날 수는 없는 위치였다. 그의 의작들이 종래의 작품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 같은 실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악장의 당초 효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른 변모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홍경모는 뚜렷이 지니고 있었으며, 그 같은 생각을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실천하기 위해 깊이 고심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국조악가는 악장의 보수성에 대한 직설적인 문제제기이자 이상적인 악장의 요건이란 무엇인지를 재고케 하는 단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번역하기

      본고에서는 순조, 헌종 연간의 소론계 중신이었던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가 궁중 연향악장을 개편했던 방식과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의의를 논의하는 데 목적을 둔다. 『국조악가(...

      본고에서는 순조, 헌종 연간의 소론계 중신이었던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가 궁중 연향악장을 개편했던 방식과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의의를 논의하는 데 목적을 둔다.
      『국조악가(國朝樂歌)』 권4에서 연향악장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홍경모는 우선 주요한 작품의 내역을 개관하였다. 태조에서 세종대에 제작된 작품들을 나열하면서 4세기 전에 이루어진 악장의 제반 현상을 간결하고도 요령 있게 기술하였으며, 이를 위해 다수의 문헌을 참고한 자취가 역력하다. 다만, 일부 기술에서는 오류가 발견되는데, 특히 〈용비어천가〉의 악곡과 정재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류가 빈번하다. 그러나 그 같은 착종은 해당 악곡과 정재의 면모를 고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연행이 빈한해졌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홍경모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폭넓게 활용하여 선초 연향악장의 내역을 정리하였으며,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것 자체가 조선후기 악장의 여러 정황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국조악가』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사항은 홍경모가 종래 작품의 내용과 표현을 주관에 따라 뒤바꿈으로써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악장을 새롭게 구성해 보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국조연향악가」편에서는 모두 일곱 작품을 다루었는데, 의작의 수위와 방식은 작품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전체적인 경향성은 뚜렷이 간취된다. 홍경모는 조종의 면면 가운데 확증할 수 있는 사항들, 즉 실덕에 해당하는 내용을 명징하게 부각하려 의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정치적 업적이든 개인적 덕망이든 실체가 분명한 사적을 칭송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반대로 꿈이나 도참, 상서 등과 같은 이적(異蹟)이 개입된 경우에는 경험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작품의 내용이나 표현을 조정하였다. 신이함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되 그 전말을 굳이 자세히 기술하거나 흥미롭게 전달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해당 사적의 의미를 천명 또는 민심과 연계 지어 해석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요컨대 홍경모는 왕조의 창업이 조종의 자질과 명망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필연적 귀결이라는 주제를 한층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였다. 개국의 위업을 홍포하고 국가의 위상을 드높여야 할 악장의 근본적 요건에 보다 충실한 작품을 지어내려는 의지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파악된다.
      실상 연향악장의 대부분은 태조에서 세종대에 걸쳐 제정되었거니와, 이들 작품에 포함된 감격적 수사를 홍경모는 다소 과장되거나 작위적이라고 느꼈을 여지가 다분하다. 개국 초에는 역성혁명의 동인과 조종의 위상을 가급적 신성하게 그려내어 독자나 청자를 감복시키는 방식이 필요하지만, 창업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후대에는 국조들의 업적을 실상에 가깝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흠모의 정을 표출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때문에 홍경모는 재래의 연향악장을 자신의 시대에 맞게 좀 더 완정하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개편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확대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악장의 속성과 관련된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궁중 악장은 한 번 찬정되면 좀처럼 변개되지 않는 완고한 특징을 지닌다. 선대의 제작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현실적 난점 때문이다. 홍경모 역시도 이러한 제약에서 완연히 벗어날 수는 없는 위치였다. 그의 의작들이 종래의 작품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그 같은 실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악장의 당초 효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른 변모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홍경모는 뚜렷이 지니고 있었으며, 그 같은 생각을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실천하기 위해 깊이 고심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국조악가는 악장의 보수성에 대한 직설적인 문제제기이자 이상적인 악장의 요건이란 무엇인지를 재고케 하는 단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way in which Hong Gyeongmo (洪敬謨), a renowned scholar and statesman who lived during the reign of Kings Sunjo and Heonjong in the nineteenth century, revised the lyrics of the royal banquet music (燕享樂章).
      In the beginning of the fourth volume of Gukjoakga (國朝樂歌), Hong took a general and careful view of the royal banquet music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with reference to several official records;however, his survey has several errors. In particular, he gave incorrect explanations of the music and dance of Yongbieocheonga (龍飛御天歌). Such mistakes were not the result of his inattention but could be attributed to the relatively infrequent performances of Yongbieocheonga in his days.
      Subsequently, Hong revised the contents and expressions of the seven lyrics praising the founding fathers of the dynasty in the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in order to compose ideal court poems and songs. He highlighted the kings’ real and credible accomplishments, while deleting all mysterious and legendary stories based on dreams, fortune, and divination. In this manner, in his revisions, Hong tried to emphasize the kings’ moral influence and public confidence as the principal factors behind their successful founding of the dynasty.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necessary for the composers of the lyrics of the royal banquet music to incorporate marvelous narratives into their works in order to make the listeners admire the kings’ greatness. However, in the nineteenth century, it was sufficient and more effective to present the kings’ actual achievements to people, who did not doubt the authority of the founding fathers anymore.
      It is noted that court lyrics, Akjang (樂章), could not be easily changed because it was fundamentally prohibited to modify the regulations that had been set by the preceding kings. Obviously, Hong understood this rule;nonetheless, he was confident that even court lyrics needed to be revised with the passage of time. Hence, we should pay special attention to Hong Gyeongmo and his Gukjoakga.
      번역하기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way in which Hong Gyeongmo (洪敬謨), a renowned scholar and statesman who lived during the reign of Kings Sunjo and Heonjong in the nineteenth century, revised the lyrics of the royal banquet music (燕享樂章). ...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way in which Hong Gyeongmo (洪敬謨), a renowned scholar and statesman who lived during the reign of Kings Sunjo and Heonjong in the nineteenth century, revised the lyrics of the royal banquet music (燕享樂章).
      In the beginning of the fourth volume of Gukjoakga (國朝樂歌), Hong took a general and careful view of the royal banquet music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with reference to several official records;however, his survey has several errors. In particular, he gave incorrect explanations of the music and dance of Yongbieocheonga (龍飛御天歌). Such mistakes were not the result of his inattention but could be attributed to the relatively infrequent performances of Yongbieocheonga in his days.
      Subsequently, Hong revised the contents and expressions of the seven lyrics praising the founding fathers of the dynasty in the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in order to compose ideal court poems and songs. He highlighted the kings’ real and credible accomplishments, while deleting all mysterious and legendary stories based on dreams, fortune, and divination. In this manner, in his revisions, Hong tried to emphasize the kings’ moral influence and public confidence as the principal factors behind their successful founding of the dynasty.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it was necessary for the composers of the lyrics of the royal banquet music to incorporate marvelous narratives into their works in order to make the listeners admire the kings’ greatness. However, in the nineteenth century, it was sufficient and more effective to present the kings’ actual achievements to people, who did not doubt the authority of the founding fathers anymore.
      It is noted that court lyrics, Akjang (樂章), could not be easily changed because it was fundamentally prohibited to modify the regulations that had been set by the preceding kings. Obviously, Hong understood this rule;nonetheless, he was confident that even court lyrics needed to be revised with the passage of time. Hence, we should pay special attention to Hong Gyeongmo and his Gukjoakga.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연향악장의 내역
      • Ⅲ. 연향악장의 개편 양상
      • Ⅳ. 결론
      • 〈국문초록〉
      • Ⅰ. 서론
      • Ⅱ. 연향악장의 내역
      • Ⅲ. 연향악장의 개편 양상
      • Ⅳ. 결론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송지원, "홍경모의 『국조악가』 연구"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39 : 2005

      2 김명준, "한국고전시가의 모색" 보고사 2008

      3 "태종실록"

      4 "태조실록"

      5 김문식, "조선후기의 용비어천가 ꡔ흥왕조승ꡕ" 문헌과 해석사 (19) : 2002

      6 조규익,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 민속원 2005

      7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보고사 2012

      8 "용비어천가"

      9 "악학궤범"

      10 "세종실록"

      1 송지원, "홍경모의 『국조악가』 연구"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39 : 2005

      2 김명준, "한국고전시가의 모색" 보고사 2008

      3 "태종실록"

      4 "태조실록"

      5 김문식, "조선후기의 용비어천가 ꡔ흥왕조승ꡕ" 문헌과 해석사 (19) : 2002

      6 조규익,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 민속원 2005

      7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보고사 2012

      8 "용비어천가"

      9 "악학궤범"

      10 "세종실록"

      11 김흥규, "선초 악장의 천명론적 상상력과 정치의식" 한국시가학회 7 : 2000

      12 "삼봉집"

      13 "국조악가"

      14 이종묵, "관암 홍경모와 19세기 학술사" 경인문화사 2011

      15 김경희, "<봉래의>의 역사적 변천과 의미" 한국국악학회 29 : 2001

      16 한영우, "19세기 전반 홍경모의 역사 서술"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1 : 1990

      17 강석화, "19세기 경화사족 홍경모의 생애와 사상" 한국사연구회 (112) : 2001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7-03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3-21 학술지등록 한글명 : 우리문학연구
      외국어명 : 미등록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2 0.62 0.6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7 0.61 1.35 0.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