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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안학궁 유적의 축조 시기와 성격 문제 재론 = Review of the Issues of the Construction Period and Character of Anhak Palace Ruins in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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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5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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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nhak Palace ruins are located in Anhak-dong, Daesong District, Pyongyang City. The ruins have long been considered a palace of the Goguryeo period; however, a theory of the construction during the Goryeo came to the fore by Japanese academia, and a dispute over that is developed. The author understands Anhak Palace ruins as a royal palace that was built and then discarded in the process in which King Jeongjong of the Goryeo Dynasty (Reign:945-949) would move the capital to Seogyeong.
      Tombs of Goguryeo have been found on the cultural layer in the lower part of the building of Anhak Palace ruins. Three tombs were explained through reports from North Korean academia, but a dozen burial mounds were found, referring to the reviews of the excavation, and the location is the center of the palace's architectural site. Thus, it is clear that some ancient tombs of Goguryeo spread at the foot of Daeseongsan Mountain were destroyed, and the royal palace was built on them.
      Most of the male roof-end tiles and female roof-end tiles excavated from Anhak Palace ruins cannot be considered those of the Goguryeo period, but it is reasonable to consider them the tile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to the Goryeo period. Some tiles can be considered those of the Goguryeo period; however, they are only a small quantity, and it is reasonable to interpret them as mixed objects because the Anhak Palace area is the center of the site of Goguryeo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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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hak Palace ruins are located in Anhak-dong, Daesong District, Pyongyang City. The ruins have long been considered a palace of the Goguryeo period; however, a theory of the construction during the Goryeo came to the fore by Japanese academia, and a d...

      Anhak Palace ruins are located in Anhak-dong, Daesong District, Pyongyang City. The ruins have long been considered a palace of the Goguryeo period; however, a theory of the construction during the Goryeo came to the fore by Japanese academia, and a dispute over that is developed. The author understands Anhak Palace ruins as a royal palace that was built and then discarded in the process in which King Jeongjong of the Goryeo Dynasty (Reign:945-949) would move the capital to Seogyeong.
      Tombs of Goguryeo have been found on the cultural layer in the lower part of the building of Anhak Palace ruins. Three tombs were explained through reports from North Korean academia, but a dozen burial mounds were found, referring to the reviews of the excavation, and the location is the center of the palace's architectural site. Thus, it is clear that some ancient tombs of Goguryeo spread at the foot of Daeseongsan Mountain were destroyed, and the royal palace was built on them.
      Most of the male roof-end tiles and female roof-end tiles excavated from Anhak Palace ruins cannot be considered those of the Goguryeo period, but it is reasonable to consider them the tile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to the Goryeo period. Some tiles can be considered those of the Goguryeo period; however, they are only a small quantity, and it is reasonable to interpret them as mixed objects because the Anhak Palace area is the center of the site of Goguryeo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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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안학궁 유적은 지금의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위치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오랜 기간 고구려 시기의 궁성으로 보아 왔으나, 일본 학계를 중심으로 고려 시기 축조설이 대두되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안학궁 유적은 고려 定宗代(재위 945~949) 서경으로의 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영되다가 폐기된 왕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안학궁 유적의 건축물 하부의 문화층에서는 고구려 고분이 확인된 바 있다. 북한 학계의 보고서를 통해 소개된 것은 3기이지만, 발굴 후기 등을 참조하면 실제로는 십여 개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그 위치도 궁전 건축지의 중심부이다. 따라서 대성산 기슭에 분포되어 있는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를 파괴하고 그 위에 왕궁이 들어선 정황은 분명하다.
      안학궁 유적에서 출토된 수막새 기와와 암막새 기와 대부분은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통일신라~고려 시기의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당하다. 일부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언급되는 기와도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안학궁 일대가 고구려 유적지의 한복판임을 감안하면 혼입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안학궁 유적에서 출토된 귀면와의 경우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귀면와 제작의 전통이 쇠퇴한 9세기 말 이후 나말여초 시기에 제작되었던 귀면와의 풍격과 상통한다. 이는 해당 유적의 축조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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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학궁 유적은 지금의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위치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오랜 기간 고구려 시기의 궁성으로 보아 왔으나, 일본 학계를 중심으로 고려 시기 축조설이 대두되어 논쟁이 ...

      안학궁 유적은 지금의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위치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오랜 기간 고구려 시기의 궁성으로 보아 왔으나, 일본 학계를 중심으로 고려 시기 축조설이 대두되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안학궁 유적은 고려 定宗代(재위 945~949) 서경으로의 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영되다가 폐기된 왕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안학궁 유적의 건축물 하부의 문화층에서는 고구려 고분이 확인된 바 있다. 북한 학계의 보고서를 통해 소개된 것은 3기이지만, 발굴 후기 등을 참조하면 실제로는 십여 개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며 그 위치도 궁전 건축지의 중심부이다. 따라서 대성산 기슭에 분포되어 있는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를 파괴하고 그 위에 왕궁이 들어선 정황은 분명하다.
      안학궁 유적에서 출토된 수막새 기와와 암막새 기와 대부분은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통일신라~고려 시기의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당하다. 일부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언급되는 기와도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안학궁 일대가 고구려 유적지의 한복판임을 감안하면 혼입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안학궁 유적에서 출토된 귀면와의 경우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귀면와 제작의 전통이 쇠퇴한 9세기 말 이후 나말여초 시기에 제작되었던 귀면와의 풍격과 상통한다. 이는 해당 유적의 축조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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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임기환, "한국의 도성-都城 造營의 傳統-"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2003

      2 강현숙, "평양 안학궁, 대성산성 시기 왕궁 주변 고구려 고분의 고고학적 함의" 한국상고사학회 105 (105): 123-147, 2019

      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물유적도감3-고구려편(1)" 1993

      4 辛奇羅, "안학궁 유적의 연대 문제 재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2021

      5 정영성, "새로 건설되는 평양민속공원에서 발굴된 고구려건축지에 대하여" 2011 (2011): 2011

      6 김일성종합대학 고고학 민속학강좌, "대성산의 고구려 유적" 김일성종합대학출판부 1973

      7 리광희, "대성산성, 안학궁성의 건설과 그 력사적의의" 64 (64): 2018

      8 채희국, "대성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9 東潮,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동북아역사재단 2008

      10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구려의 성곽" 진인진 2009

      1 임기환, "한국의 도성-都城 造營의 傳統-"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2003

      2 강현숙, "평양 안학궁, 대성산성 시기 왕궁 주변 고구려 고분의 고고학적 함의" 한국상고사학회 105 (105): 123-147, 2019

      3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조선유물유적도감3-고구려편(1)" 1993

      4 辛奇羅, "안학궁 유적의 연대 문제 재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2021

      5 정영성, "새로 건설되는 평양민속공원에서 발굴된 고구려건축지에 대하여" 2011 (2011): 2011

      6 김일성종합대학 고고학 민속학강좌, "대성산의 고구려 유적" 김일성종합대학출판부 1973

      7 리광희, "대성산성, 안학궁성의 건설과 그 력사적의의" 64 (64): 2018

      8 채희국, "대성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9 東潮,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동북아역사재단 2008

      10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구려의 성곽" 진인진 2009

      11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구려의 건축" 진인진 2009

      12 남일룡, "고구려안학궁성건축의 특징에 대한 몇가지 고찰" 2006 (2006): 2006

      13 전제헌, "고구려력사연구-안학궁유적과 일본에 있는 고구려관계 유적, 유물"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85

      14 임기환, "고구려 평양도성 논의에 대한 재검토" 고구려발해학회 70 : 33-63, 2021

      15 임기환, "고구려 평양 도성의 정치적 성격" 한국사연구회 (137) : 1-32, 2007

      16 김경삼, "고구려 안학궁 조사보고서 2006" 동북아역사재단 2006

      17 전제헌, "고구려 안학궁 조사보고서 2006" 동북아역사재단 2006

      18 리영식, "고구려 안학궁 조사보고서 2006" 동북아역사재단 2006

      19 리광휘, "고구려 안학궁 조사보고서 2006" 동북아역사재단 2006

      20 남일룡, "고구려 안학궁 조사보고서 2006" 동북아역사재단 2006

      21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 안학궁 조사 보고서 2006" 고구려연구재단 2006

      22 양시은, "고구려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고구려발해학회 50 : 37-66, 2014

      23 주홍규, "고구려 기와의 분류와 특징에 관한 일고찰" 한국고대학회 (41) : 73-108, 2014

      24 "高麗史"

      25 朴恩卿, "高麗 瓦當文樣의 編年 硏究" 동아대학교 박물관 4 : 1988

      26 박순발, "高句麗의 都城과 墓域" 한국고대사탐구학회 (12) : 43-94, 2012

      27 千田剛道, "高句麗都城研究と平壌安鶴宮遺跡" 22 : 2011

      28 千田剛道, "高句麗都城の考古學的硏究" 北九州中國書店 2015

      29 朝鮮總督府, "高句麗時代之遺蹟 圖版 上冊" 1929

      30 關野貞, "高句麗の平壤城と長安城に就いて" 39 (39): 1928

      31 田中俊明, "高句麗の平壌遷都" 190 : 2004

      32 田村晃一, "高句麗の山城-大聖山城の場合" 121 : 1976

      33 田村晃一, "高句麗の城郭について" 19 : 1988

      34 千田剛道, "高句麗の前期平壌城と清岩里土城" 23 : 2012

      35 민덕식, "高句麗 平壤城의 都市形態와 設計" 고구려발해학회 15 : 5-, 2003

      36 永島暉臣愼, "難波宮址の硏究7-論考篇" 大阪市文化財協會 1981

      37 關口廣次, "瓦當文樣雜考-高句麗の瓦當文樣を中心として" 285 : 1987

      38 井內古文化硏究室, "朝鮮瓦塼圖譜Ⅵ-高麗李朝" 井內古文化硏究室 1978

      39 千田剛道, "朝鮮の古瓦を考える" 帝塚山考古学研究所 1996

      40 濱田耕作, "新羅古瓦の硏究" 京都帝國大學 1934

      41 "新增東國輿地勝覽"

      42 千田剛道, "文化財論叢 :奈良国立文化財研究所創立30周年記念論文集" 同朋社 1983

      43 谷豊信, "平壤遷都前後の高句麗瓦に關する覺書-東京國立博物館收藏資料の紹介" 596 : 2005

      44 關野貞, "國內城及丸都城の位置" 25 (25): 1914

      45 田村晃一, "中国史・陶磁史論集-佐久間重男教授退休記念" 燎原 1983

      46 이도학, "『三國史記』의 高句麗 王城 記事 檢證" 한국고대사학회 (79) : 135-17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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