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담: 1960-70년대 아시아에서 민주화열기와 '민중'개념의 창신 미치바 치가노부: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 ‘아시아’에 대한 시선의 부상 이 글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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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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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담: 1960-70년대 아시아에서 민주화열기와 '민중'개념의 창신 미치바 치가노부: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 ‘아시아’에 대한 시선의 부상 이 글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백원담: 1960-70년대 아시아에서 민주화열기와 '민중'개념의 창신
미치바 치가노부: 1960-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 ‘아시아’에 대한 시선의 부상
이 글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ベトナム反戰運動)을 시작으로 한 일본의 무당파 시민운동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과정과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록할 만한 사상가 또는 연구자였던 쓰루미 요시유키(鶴見良行, 1926-1994)의 궤적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서로 관련시켜가면서 논하기로 한다. 우선 제1절에서는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ベトナムに平和を! 市民連合)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제2절에서는 반전 운동 외의 다른 시민운동 영역, 즉 국제연대운동, 반공해운동, 민주화지원운동, 성(性)침략 반대운동 등에서 공통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게 되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제3절에서는 쓰루미 요시유키와 ‘아시아’의 관련 양상에 대해 개관하기로 한다. 모두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양한 운동 주체가 어떤 형태로 서로 겹치는 영역을 발견하고 공동 행동을 해나갔는가 하는 것과 거기에서 어떻게 더욱 새로운 상상력이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윤곽을 그리는 데 그치기로 한다.
박경태: ‘화교(華僑)’에서 ‘화인(華人)’으로 : 냉전시기 인도네시아 화인들의 정체성 변화
인도네시아로 이주해간 화교들은 현지 사회와 조화롭게 살고 있었으나, 17세기에 네델란드의 식민주의자들이 화교들을 중간착취자로 등용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갈등 관계에 놓이기 시작했다.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여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교들은 적극적으로 배제되었는데, ‘중국의 간첩’으로 오인 받지 않기 위해서 현지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국 사람인 ‘화교’에서 중국계 현지인인 ‘화인’이 되어갔다.
이선이: 전후 한국과 중국의 인구정책과 여성
뤄융성: 유입된 중국의 문화 민족주의: 홍콩 문화 냉전의 충격들
이제 홍콩에서 좌파가 된다는 것은 갈수록 어떠한 진보적 가치와의 동일시의 표지가 아니라 친중화인민공화국적 표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급진적 과거를 오래 지속된 애국주의의 기록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이익을 얻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자 하곤 하였다. 이상주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사회학자들의 시대정신(zeitgeist), 즉 민족-국가주의 더하기 관리주의(managerialism)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라우 시우-카이(Lau Siu-kai) 같은 사람들이 홍콩에서의 식민통치를 사회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그러한 민족주의의 재배치는 반식민적 수사의 유행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급진주의의 급부상이 홍콩에서 진정한 비식민지화 과정을 만들어내지 않았음을 설명해준다. 우리가 1970년대에 목격한 것은 식민 권력의 지역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전경화(前景化)하는 결정적인 전환이었다. 그런 과정의 결과물들은 포스트식민시대의 홍콩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