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박조열의 극작술 변화 연구 = Research on the change of writing style of Park Joyeol in later times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498330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Park Joyeol primarily wrote dramas that was based on allegory. However he announced two dramas that used documentary format in the mid-1970s. This change was sudden and a gap was significant between an abstract world used allegory and a specific world based on the fact.
    Because changes of playwriting style was affected by several factors, censorship can not be the only reason for the changes. However, it is clear that since the ban of performing about <A toenail of general O> in the 1975 playwriting style of Park Joyeol changed. In addition, it need to be taken into account that censorship was strongly working in a period of his activity. In short, the cause that he chaged his style and he stop writing after documentary dramas could not independent of the external environment.
    Since he had started writing he was always careful of censorship. He spoke only through abstract language in order to avoid censorship. However, performances ban on <A toenail of general O> gave the imprint that His style was no longer permitted. Eventually Park, Jo-yeol selected the documentary theater viewed as adaptive systems and delivered messages in the most passive manners. Thus, understanding about the activities of Park, Jo-yeol in 1970s will help us to guess the subtle relationship between the national censorship and creative activities of writers and allows us to understand the inner logic of the writer designed to continue the artistic activities.
    번역하기

    Park Joyeol primarily wrote dramas that was based on allegory. However he announced two dramas that used documentary format in the mid-1970s. This change was sudden and a gap was significant between an abstract world used allegory and a specific world...

    Park Joyeol primarily wrote dramas that was based on allegory. However he announced two dramas that used documentary format in the mid-1970s. This change was sudden and a gap was significant between an abstract world used allegory and a specific world based on the fact.
    Because changes of playwriting style was affected by several factors, censorship can not be the only reason for the changes. However, it is clear that since the ban of performing about <A toenail of general O> in the 1975 playwriting style of Park Joyeol changed. In addition, it need to be taken into account that censorship was strongly working in a period of his activity. In short, the cause that he chaged his style and he stop writing after documentary dramas could not independent of the external environment.
    Since he had started writing he was always careful of censorship. He spoke only through abstract language in order to avoid censorship. However, performances ban on <A toenail of general O> gave the imprint that His style was no longer permitted. Eventually Park, Jo-yeol selected the documentary theater viewed as adaptive systems and delivered messages in the most passive manners. Thus, understanding about the activities of Park, Jo-yeol in 1970s will help us to guess the subtle relationship between the national censorship and creative activities of writers and allows us to understand the inner logic of the writer designed to continue the artistic activities.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주로 알레고리적 형식을 바탕으로 작품 창작을 이어가던 박조열이 1970년대 중반 두 편의 기록극을 발표한다. 그 선택도 급작스러운 것이었거니와 알레고리가 빚어내는 추상적인 세계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극의 세계가 보여주는 간극도 상당한 것이었다.
    작가의 극작술 변화는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검열이 극작술 변화의 유일한 이유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75년 <오장군의 발톱>에 대한 공연 금지 처분 이후 박조열의 극작술이 변화했고 끝내 절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박조열이 활동했던 시기가 박정희 정권의 검열이 강력하게 작동했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음을 감안해야한다. 요컨대 작가가 고수하던 극작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두 편의 기록극을 남기고 절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외부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박조열이 등단한 이래 검열은 늘 그를 따라다녔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는 추상화된 언어로밖에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박조열은 검열의 수준을 가늠하고 극작술을 조정하거나 작품의 발표를 지연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검열 제도의 강화와 <오장군의 발톱>에 대한 공연 금지 처분은, 그의 감각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박조열은 체제 순응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던 기록극 형식을 선택해서, 가장 소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박조열의 후기 활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1970년대 국가의 검열과 작가의 창작 활동 사이의 미묘한 대립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며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고안된 작가들의 생존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번역하기

    주로 알레고리적 형식을 바탕으로 작품 창작을 이어가던 박조열이 1970년대 중반 두 편의 기록극을 발표한다. 그 선택도 급작스러운 것이었거니와 알레고리가 빚어내는 추상적인 세계와 사...

    주로 알레고리적 형식을 바탕으로 작품 창작을 이어가던 박조열이 1970년대 중반 두 편의 기록극을 발표한다. 그 선택도 급작스러운 것이었거니와 알레고리가 빚어내는 추상적인 세계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극의 세계가 보여주는 간극도 상당한 것이었다.
    작가의 극작술 변화는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검열이 극작술 변화의 유일한 이유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75년 <오장군의 발톱>에 대한 공연 금지 처분 이후 박조열의 극작술이 변화했고 끝내 절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박조열이 활동했던 시기가 박정희 정권의 검열이 강력하게 작동했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음을 감안해야한다. 요컨대 작가가 고수하던 극작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두 편의 기록극을 남기고 절필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외부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박조열이 등단한 이래 검열은 늘 그를 따라다녔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는 추상화된 언어로밖에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박조열은 검열의 수준을 가늠하고 극작술을 조정하거나 작품의 발표를 지연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검열 제도의 강화와 <오장군의 발톱>에 대한 공연 금지 처분은, 그의 감각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박조열은 체제 순응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던 기록극 형식을 선택해서, 가장 소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박조열의 후기 활동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1970년대 국가의 검열과 작가의 창작 활동 사이의 미묘한 대립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며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고안된 작가들의 생존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박조열, "흰둥이의 방문(박조열 단막극집)" 연극과 인간 2009

    2 김정옥, "한국연극의 뒤안길(12) "흥행 성패는 제목달기 나름""

    3 김성희, "한국 현대극의 형성과 쟁점" 연극과인간 2007

    4 이승현, "작가 박조열의 경계인으로서의 글쓰기" 한국극예술학회 (46) : 123-155, 2014

    5 박조열, "오장군의 발톱" 학고방 1991

    6 박조열, "연극평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1973

    7 박태균, "베트남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한겨레출판 [서울] 2015

    8 김재석, "박조열의 기록극 연구" 한국문학언어학회 (45) : 489-522, 2006

    9 김미도, "박조열 희곡의 알레고리적 특성 연구" 한국연극학회 13 : 1999

    10 김일영, "박조열 희곡연구" 국학자료원 2001

    1 박조열, "흰둥이의 방문(박조열 단막극집)" 연극과 인간 2009

    2 김정옥, "한국연극의 뒤안길(12) "흥행 성패는 제목달기 나름""

    3 김성희, "한국 현대극의 형성과 쟁점" 연극과인간 2007

    4 이승현, "작가 박조열의 경계인으로서의 글쓰기" 한국극예술학회 (46) : 123-155, 2014

    5 박조열, "오장군의 발톱" 학고방 1991

    6 박조열, "연극평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1973

    7 박태균, "베트남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한겨레출판 [서울] 2015

    8 김재석, "박조열의 기록극 연구" 한국문학언어학회 (45) : 489-522, 2006

    9 김미도, "박조열 희곡의 알레고리적 특성 연구" 한국연극학회 13 : 1999

    10 김일영, "박조열 희곡연구" 국학자료원 2001

    11 이미원, "박조열 작품론, 양식적 실험과 통일에의 집념" 한국연극학회 5 : 1993

    12 "매일경제"

    13 "동아일보"

    14 손진책, "나의 젊음, 나의 사랑 마당놀이 연출대가 손진책 <10> 대표작 '오장군의 발톱'"

    15 황성근, "기록극이란 무엇인가" 외국문학연구소 (05) : 305-338, 1999

    16 "국민일보"

    17 "경향신문"

    18 임준서, "1970~80년대 한국희곡에 나타난 다큐멘터리 양식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7

    19 박명진, "1960년대 희곡의 정치적 무의식과 알레고리" 한국극예술학회 11 : 2000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2-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8 0.68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61 1.138 0.1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