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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에서 이혼법의 변화 - 한중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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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81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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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이혼법의 변화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검토하였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이혼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행위를 의미했고, 남편은 아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혼을 강행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여성은 이혼 제기 자체가 어려웠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이혼관행이 변화를 맞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적 이혼법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문명사회로 거듭나고자 했던 한·중·일의 개명 엘리트들은 유교 규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가족개혁을 통해 문명국가로 나아갈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들은 강제결혼을 비판하고 연애와 결혼,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동아시아 삼국 중 근대적 이혼법이 가장 먼저 도입된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일련의 입법 활동 끝에 1898년 〈일본 민법〉이 제정되었고 여성의 이혼청구권이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이혼법은 아내의 간통만을 이혼원인으로 삼는 등 성차별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보수적인 색채를 띠었다. 그에 비해 중국에서는 반식민지 상태에서 가속화된 국민당과 공산당의 체제 경쟁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강화된 이혼법이 제정되었다. 특히 1931년 〈중화소비에트공화국혼인조례〉는 이혼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혼한 여성에 대한 보호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혼법은 일본 민법이 의용되었지만, 일본에서 보다 더 보수적으로 해석 적용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낮은 ‘민도’와 ‘관습’을 고려한다는 미명하에 이러한 보수적이고 성차별적인 법 해석을 정당화했다. 요컨대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삼국의 이혼법 변경 과정을 비교해 봄으로써, 서구 근대를 모방하고자 하였으나 가족의 영역에서는 일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했던 일본적 근대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완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완고한 일본법에 더하여 식민지적 차별이 덧씌워진 조선에서 근대적 변화가 얼마나 제한된 가능성 위에서 펼쳐져 갔던 것인지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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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는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이혼법의 변화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검토하였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이혼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

      본 논문에서는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이혼법의 변화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검토하였다. 근세 동아시아에서 이혼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행위를 의미했고, 남편은 아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혼을 강행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여성은 이혼 제기 자체가 어려웠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이혼관행이 변화를 맞게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적 이혼법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문명사회로 거듭나고자 했던 한·중·일의 개명 엘리트들은 유교 규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가족개혁을 통해 문명국가로 나아갈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들은 강제결혼을 비판하고 연애와 결혼,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동아시아 삼국 중 근대적 이혼법이 가장 먼저 도입된 국가는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일련의 입법 활동 끝에 1898년 〈일본 민법〉이 제정되었고 여성의 이혼청구권이 법적으로 승인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이혼법은 아내의 간통만을 이혼원인으로 삼는 등 성차별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보수적인 색채를 띠었다. 그에 비해 중국에서는 반식민지 상태에서 가속화된 국민당과 공산당의 체제 경쟁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강화된 이혼법이 제정되었다. 특히 1931년 〈중화소비에트공화국혼인조례〉는 이혼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혼한 여성에 대한 보호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혼법은 일본 민법이 의용되었지만, 일본에서 보다 더 보수적으로 해석 적용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낮은 ‘민도’와 ‘관습’을 고려한다는 미명하에 이러한 보수적이고 성차별적인 법 해석을 정당화했다. 요컨대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삼국의 이혼법 변경 과정을 비교해 봄으로써, 서구 근대를 모방하고자 하였으나 가족의 영역에서는 일본적인 것을 지키고자 했던 일본적 근대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완고한 것인지, 그리고 그 완고한 일본법에 더하여 식민지적 차별이 덧씌워진 조선에서 근대적 변화가 얼마나 제한된 가능성 위에서 펼쳐져 갔던 것인지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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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compares the cases of Japanese, Chinese, and colonial Korean divorce law during the East Asian modern transition period. In the East Asia of the early modern period, divorce meant that a husband abandoned his wife and could force a divorce even if she did not agree. On the other hand, it was difficult for women to file a divorce. This divorce practice changed with the introduction of modern divorce law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elites of these three countries, who sought to modernize their nations to stave off the threat of imperialist invasion, conducted family reform and criticized Confucian norms. As a result, forced marriage was criticized, and the freedom to love, marry, and divorce were advocated. Japan was the first country to adopt modern divorce law of the three. After a series of legislative activities, the government of Japan enacted a civil law in 1898 that legally granted women the right to divorce. Japanese divorce law, however, was conservative and sexist, recognizing adultery committed by the only wife as the reason for divorce. In China, divorce legislation was enacted that defended women"s rights during strife between the Nationalist and Communist parties. In particular, the 1931 Ordinance of the Marriage of the Soviet Republic of China not only contained the most radical content emphasizing the will of the parties in divorce, but it also actively defended women"s rights by inserting protection provisions for divorced women. In colonial Korea, divorce law was applied via Japanese civil law, but the same legal provision was interpreted more conservatively in the colony than in Japan. The civilization gap between Japan and colonial Korea that was created by the terms “the standards of the people”(mindo) and “custom” justified this conservative and sexist interpretation of the law. In short, by comparing the divorce laws of these three countries, we can understand the level of conservatism of Japanese modernity, which tried to imitate Western modernity. Japan attempted to maintain the norms of the Japanese family and limited modern changes in colonial Korea, which experienced discri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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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compares the cases of Japanese, Chinese, and colonial Korean divorce law during the East Asian modern transition period. In the East Asia of the early modern period, divorce meant that a husband abandoned his wife and could force a divorce ...

      This paper compares the cases of Japanese, Chinese, and colonial Korean divorce law during the East Asian modern transition period. In the East Asia of the early modern period, divorce meant that a husband abandoned his wife and could force a divorce even if she did not agree. On the other hand, it was difficult for women to file a divorce. This divorce practice changed with the introduction of modern divorce law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elites of these three countries, who sought to modernize their nations to stave off the threat of imperialist invasion, conducted family reform and criticized Confucian norms. As a result, forced marriage was criticized, and the freedom to love, marry, and divorce were advocated. Japan was the first country to adopt modern divorce law of the three. After a series of legislative activities, the government of Japan enacted a civil law in 1898 that legally granted women the right to divorce. Japanese divorce law, however, was conservative and sexist, recognizing adultery committed by the only wife as the reason for divorce. In China, divorce legislation was enacted that defended women"s rights during strife between the Nationalist and Communist parties. In particular, the 1931 Ordinance of the Marriage of the Soviet Republic of China not only contained the most radical content emphasizing the will of the parties in divorce, but it also actively defended women"s rights by inserting protection provisions for divorced women. In colonial Korea, divorce law was applied via Japanese civil law, but the same legal provision was interpreted more conservatively in the colony than in Japan. The civilization gap between Japan and colonial Korea that was created by the terms “the standards of the people”(mindo) and “custom” justified this conservative and sexist interpretation of the law. In short, by comparing the divorce laws of these three countries, we can understand the level of conservatism of Japanese modernity, which tried to imitate Western modernity. Japan attempted to maintain the norms of the Japanese family and limited modern changes in colonial Korea, which experienced discri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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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 초록」
      • Ⅰ. 머리말
      • Ⅱ. 근세 동아시아에서의 이혼
      • Ⅲ. 가족개혁론과 ‘자유이혼’의 대두
      • Ⅳ. 동아시아에서 이혼법의 근대적 전환
      • 「국문 초록」
      • Ⅰ. 머리말
      • Ⅱ. 근세 동아시아에서의 이혼
      • Ⅲ. 가족개혁론과 ‘자유이혼’의 대두
      • Ⅳ. 동아시아에서 이혼법의 근대적 전환
      • Ⅴ. 이혼법과 여성의 권리
      • Ⅵ.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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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미란, "현대 중국여성의 삶을 찾아서-국가·젠더·문화" 소명출판 2009

      2 카노 마사나오, "현대 일본여성사" 책사랑 2006

      3 김숙자, "한중 이혼법의 비교연구-최근 개정된 중국혼인법상의 이혼을 중심으로" 17 : 2001

      4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1

      5 엘리자베스 크롤, "중국여성해방운동" 사계절 1985

      6 임대희, "중국법제사연구(가족법)" 서경문화사 2013

      7 장진번, "중국법제사" 소나무 2006

      8 서양걸, "중국가족제도사" 아카넷 2000

      9 김지수, "중국 혼인법의 근대화 역사" 21 (21): 2001

      10 金芝鮮, "중국 근대에서 가족이라는 문제 ― 30년대 신문잡지소설에 반영된 가족관을 중심으로" 한국중국학회 49 : 279-302, 2004

      1 김미란, "현대 중국여성의 삶을 찾아서-국가·젠더·문화" 소명출판 2009

      2 카노 마사나오, "현대 일본여성사" 책사랑 2006

      3 김숙자, "한중 이혼법의 비교연구-최근 개정된 중국혼인법상의 이혼을 중심으로" 17 : 2001

      4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1

      5 엘리자베스 크롤, "중국여성해방운동" 사계절 1985

      6 임대희, "중국법제사연구(가족법)" 서경문화사 2013

      7 장진번, "중국법제사" 소나무 2006

      8 서양걸, "중국가족제도사" 아카넷 2000

      9 김지수, "중국 혼인법의 근대화 역사" 21 (21): 2001

      10 金芝鮮, "중국 근대에서 가족이라는 문제 ― 30년대 신문잡지소설에 반영된 가족관을 중심으로" 한국중국학회 49 : 279-302, 2004

      11 정해은, "조선후기 이혼의 실상과 <대명률>의 적용" 한국역사연구회 (75) : 93-125, 2010

      12 이승일, "조선총독부 법제정책-일제의 식민통치와 조선민사령" 역사비평사 2008

      13 박경, "조선 전기 棄妻 규제 정책의 영향과 한계" 한국사학회 (98) : 197-229, 2010

      14 이노우에키요시(井上淸), "일본여성사" 어문학사 2004

      15 로더릭 필립스, "이혼의 역사" 동문선 2001

      16 소현숙, "이혼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 역사비평사 2017

      17 일본 중국여성사연구회, "사료로 보는 중국여성사 100년" 한울 아카데미 2010

      18 정해은, "고려․조선시대 법운용의 실제와 <대명률>" 한국역사연구회 (75) : 15-25, 2010

      19 리하르트 반 뒬멘, "개인의 발견" 현실문화연구 2005

      20 小野和子, "現代 中國女性史" 正宇社 1985

      21 조세현, "淸末民國初 無政府主義와 家族革命論" 8 : 1999

      22 汉语大词典编辑委員会, "汉语大词典" 汉语大词典出版社 1990

      23 김용원, "朝鮮後期 離婚에 관한 硏究" 한국민사법학회 (47) : 409-444, 2009

      24 山中至, "明治前期における裁判離婚法の一硏究: 妻の保護とくに妻の離婚意思の保護の立場から" 48 (48): 1981

      25 정종휴, "日本民法典의 編纂" 한국법사학회 (36) : 101-152, 2007

      26 関口裕子, "家族と結婚の歷史" 森話社 1998

      27 高木侃, "婚姻と女性" 吉川弘文館 1998

      28 瀧川幸辰, "刑法雜筆" 文友堂書店 1937

      29 高橋保, "五四新文化運動期の中國における婚姻制度と女性の地位" 2 : 1996

      30 ニム ウェ-ルズ, "中國革命の內部 : 續·西行漫記" 三一書房 1976

      31 지현숙, "『新靑年』에 나타난 여성 담론 연구" 중국사학회 (67) : 167-199, 2010

      32 Phillip C. C. Huang, "Women’s Choices under the Law : Marriage, Divorce, and Illicit Sex in the Qing and the Republic" 27 (27): 2001

      33 Becky L. Glass, "Family Law in Soviet Russia, 1917-1945" 49 (49): 1987

      34 Lisa Tran, "Concubines in Court : Marriage and Monogamy in Twentieth-Century China" Rowman & Littlefield 2015

      35 박경석, "20세기 전반 중국의 혼인문제를 둘러싼 법과 현실 ― 1950년 「中華人民共和國婚姻法」의 제정과 시행을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학회 (52) : 147-171, 2011

      36 조경애, "1996년 민법개정안과 일본 이혼법의 변화" 34 (34): 2017

      37 정광현, "(한국)친족상속법강의(상)" 葦聲文化社 1955

      38 왕광모, "(동양고전역주총서)공자가어(1, 2)" 전통문화연구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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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12-06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호서사학 -> 역사와 담론
      외국어명 : HO-SUH SAHAK -> HISTORY AND DISCOURSE(Journal of Historycal Review)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9-29 학술지등록 한글명 : 호서사학
      외국어명 : HO-SUH SAHAK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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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6 0.56 0.4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6 0.46 0.953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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