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한국 기신학(起信學) 연구의 지형과 내용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한국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대승기신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핀 글이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대승기신론』 연구는 원효의 주석서들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원효(元曉, 617-686)의 8종 주석 중에서 현존하는 『대승기신론별기』와 『대승기신론이장의』 및 『대승기신론소』 등은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에 큰 영향을 미쳤고, 법장(法藏, 643-712)의 주석을 요약 해설한 종밀(宗密, 780-841)의 『대승기신론소』 편찬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또 원효의 주석은 신라의 태현(太賢)과 견등(見登) 및 지경(智憬)과 월충(月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는 『대승기신론』 주석서에서 일심(一心)을 적멸(寂滅)과 여래장(如來藏)의 두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뒤에 그는 궁극적으로 진여(眞如)와 생멸(生滅) 이외에 ‘본법(本法)으로서 일심’을 상위개념으로 시설하여 ‘일심-진여-생멸’의 삼제설(三諦說)을 견지하고 있다. 원효가 일심을 적멸으로서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으로 구분한 것은 『기신론』의 본의를 충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능가경󰡕의 교설을 원용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일심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보는 지점에는 그의 인간이해와 세계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선종의 유포와 교학의 쇠퇴로 『대승기신론』 주석서가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석서 간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원효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와 이를 요약 해석한 종밀의 『기신론소』가 간행 유통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원효의 기신론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백암 성총(栢庵 性聰, 1631-1700)이 법장의 주석서(述䟽)와 종밀의 주석서(錄䟽注論) 및 장수 자선(長水 子璿, 965-1038)의 주석서(錄記)를 아우르면서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을 펴내어 유통시켰다. 성총의 회편 간행은 이후 이루어진 강학의 재정비 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18세기 이후의 강원 이력과정의 사교과에서는 『법화경』 대신 『대승기신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처럼 『대승기신론』에 대한 관심은 신라시대에 견줄 수는 없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주석과 판각 및 간행과 유통으로 이어졌으며 가냘프기는 하지만 대한시대(1987-남북통일)에 들어서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대승기신론』의 지위와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철학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부합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하기

      이 논문은 한국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대승기신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핀 글이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대승기신론』 연구는 원효의 주석서들에 큰 ...

      이 논문은 한국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대승기신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핀 글이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대승기신론』 연구는 원효의 주석서들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원효(元曉, 617-686)의 8종 주석 중에서 현존하는 『대승기신론별기』와 『대승기신론이장의』 및 『대승기신론소』 등은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에 큰 영향을 미쳤고, 법장(法藏, 643-712)의 주석을 요약 해설한 종밀(宗密, 780-841)의 『대승기신론소』 편찬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또 원효의 주석은 신라의 태현(太賢)과 견등(見登) 및 지경(智憬)과 월충(月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는 『대승기신론』 주석서에서 일심(一心)을 적멸(寂滅)과 여래장(如來藏)의 두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뒤에 그는 궁극적으로 진여(眞如)와 생멸(生滅) 이외에 ‘본법(本法)으로서 일심’을 상위개념으로 시설하여 ‘일심-진여-생멸’의 삼제설(三諦說)을 견지하고 있다. 원효가 일심을 적멸으로서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으로 구분한 것은 『기신론』의 본의를 충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능가경󰡕의 교설을 원용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일심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보는 지점에는 그의 인간이해와 세계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선종의 유포와 교학의 쇠퇴로 『대승기신론』 주석서가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석서 간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원효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와 이를 요약 해석한 종밀의 『기신론소』가 간행 유통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원효의 기신론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백암 성총(栢庵 性聰, 1631-1700)이 법장의 주석서(述䟽)와 종밀의 주석서(錄䟽注論) 및 장수 자선(長水 子璿, 965-1038)의 주석서(錄記)를 아우르면서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을 펴내어 유통시켰다. 성총의 회편 간행은 이후 이루어진 강학의 재정비 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18세기 이후의 강원 이력과정의 사교과에서는 『법화경』 대신 『대승기신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처럼 『대승기신론』에 대한 관심은 신라시대에 견줄 수는 없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주석과 판각 및 간행과 유통으로 이어졌으며 가냘프기는 하지만 대한시대(1987-남북통일)에 들어서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대승기신론』의 지위와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철학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부합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examines how the Awakening of Faith has been studied in Korea from its ancient inception to the present. These studies have been greatly influenced by Wonhyos (元曉, 617-686)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Among Wonhyos eight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existing texts such as Abbreviated References to the Awakening of Faith, System of the Two Hindrances on the Awakening of the Faith, and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influenced Fazang (法藏, 643-712) in China and hi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Fazangs commentary was again summarized and explained by the Chinese academic Zongmi (宗密, 780-841) in hi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and this text also saw influence from Wonhyo. Wonhyos commentaries also considerably influenced scholars in Silla, such as Taehyeon, Gyeondung, Jigyeong, and Wolchoong.
      In his commentaries, Wonhyo first explains that One Mind has two aspects: of nirvana and tathāgatha-garbha. He then adds another: original source. This concept of One Mind as an original source preceding nirvana and tathāgatha-garbha eventually comprises his theory of the three aspects of One Mind. However, the reason he first understood One Mind as two aspects was that he referred to the theory of Laṅkavatāra-sūtra in an effort to more fully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eras of the Goryeo and Chosun dynasties, due to the widespread nature of the Seon school and the deterioration of the doctrinal school,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are no longer widely studied; neither have new versions of it been published. However, Fazang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and Zongmis commentary, which summarized and explained Fazangs commentary, were both influenced by Wonhyos thoughts and then published and studied. In the late Chosun era, Baekam-Sungchong (栢庵 性聰, 1631-1700) published a new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by referring to three scholars commentaries: Fazang, Zongmi, and Zangsu-Zasun (長水 子璿, 965-1038). Sungchongs commentary influenced the reorganization of monastic education curriculum and eventually resulted in the replacement of Lotus sutra with the Awakening of Faith.
      Peoples interest in the Awakening of Faith continued over the course of many dynasties, from the era of Silla till Goryo and Chosun, even though their interest became a little weaker than that of the Silla dynasty; it even continues in the era of modern Korea (1987-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 albeit weaker than ever before. This verifies the strength of the Awakening of Faith in East Asian history. At the same time, it also shows that it contains appropriate ideology for Koreans, considering that Koreans love philosophy.
      번역하기

      This paper examines how the Awakening of Faith has been studied in Korea from its ancient inception to the present. These studies have been greatly influenced by Wonhyos (元曉, 617-686)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Among Wonhyos eight com...

      This paper examines how the Awakening of Faith has been studied in Korea from its ancient inception to the present. These studies have been greatly influenced by Wonhyos (元曉, 617-686)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Among Wonhyos eight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existing texts such as Abbreviated References to the Awakening of Faith, System of the Two Hindrances on the Awakening of the Faith, and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influenced Fazang (法藏, 643-712) in China and hi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Fazangs commentary was again summarized and explained by the Chinese academic Zongmi (宗密, 780-841) in hi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and this text also saw influence from Wonhyo. Wonhyos commentaries also considerably influenced scholars in Silla, such as Taehyeon, Gyeondung, Jigyeong, and Wolchoong.
      In his commentaries, Wonhyo first explains that One Mind has two aspects: of nirvana and tathāgatha-garbha. He then adds another: original source. This concept of One Mind as an original source preceding nirvana and tathāgatha-garbha eventually comprises his theory of the three aspects of One Mind. However, the reason he first understood One Mind as two aspects was that he referred to the theory of Laṅkavatāra-sūtra in an effort to more fully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eras of the Goryeo and Chosun dynasties, due to the widespread nature of the Seon school and the deterioration of the doctrinal school, commentaries on the Awakening of Faith are no longer widely studied; neither have new versions of it been published. However, Fazang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and Zongmis commentary, which summarized and explained Fazangs commentary, were both influenced by Wonhyos thoughts and then published and studied. In the late Chosun era, Baekam-Sungchong (栢庵 性聰, 1631-1700) published a new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Faith by referring to three scholars commentaries: Fazang, Zongmi, and Zangsu-Zasun (長水 子璿, 965-1038). Sungchongs commentary influenced the reorganization of monastic education curriculum and eventually resulted in the replacement of Lotus sutra with the Awakening of Faith.
      Peoples interest in the Awakening of Faith continued over the course of many dynasties, from the era of Silla till Goryo and Chosun, even though their interest became a little weaker than that of the Silla dynasty; it even continues in the era of modern Korea (1987-unification of Korean peninsula), albeit weaker than ever before. This verifies the strength of the Awakening of Faith in East Asian history. At the same time, it also shows that it contains appropriate ideology for Koreans, considering that Koreans love philosophy.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한글요약
      • Ⅰ. 서언
      • Ⅱ. 신라시대 기신학 연구의 지형과 내용
      • Ⅲ. 원효의 기신학 주석서와 이후의 영향
      • Ⅳ. 고려시대 기신학 연구 지형과 내용
      • 한글요약
      • Ⅰ. 서언
      • Ⅱ. 신라시대 기신학 연구의 지형과 내용
      • Ⅲ. 원효의 기신학 주석서와 이후의 영향
      • Ⅳ. 고려시대 기신학 연구 지형과 내용
      • Ⅴ. 조선시대 기신학 주석서의 판각과 유통
      • Ⅵ. 결어
      • 참고문헌
      • Abstracts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박종홍, "한국사상사" 서문문화사 25-45, 1976

      2 고영섭, "한국불학사 : 고려시대편" 연기사 2005

      3 이수미, "테마 한국불교4" 동국대학교출판부 35-73, 2016

      4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문헌의 가치와 선과 교의 이중주 -『선가귀감』과 『기신론소필삭기회편』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58) : 162-163, 2018

      5 이종수, "조선후기 불교 講學私記의 종류와 定本化의 필요성" 남도문화연구소 (33) : 9-35, 2017

      6 석길암, "일심의 해석에 나타난 원효의 화엄적 관점 -『기신론소』 · 『별기』를 중심으로-" 불교문화연구원 (49) : 169-191, 2008

      7 최유진, "원효화쟁사상연구" 경남대출판부 1999

      8 석길암, "원효의 보법화엄사상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3

      9 고익진, "원효의 기신론소별기를 통해 본 眞俗圓融無碍觀과 그 성립이론"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1 : 287-319, 1972

      10 이평래, "원효연구논총" 국토통일원 477-503, 1987

      1 박종홍, "한국사상사" 서문문화사 25-45, 1976

      2 고영섭, "한국불학사 : 고려시대편" 연기사 2005

      3 이수미, "테마 한국불교4" 동국대학교출판부 35-73, 2016

      4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문헌의 가치와 선과 교의 이중주 -『선가귀감』과 『기신론소필삭기회편』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58) : 162-163, 2018

      5 이종수, "조선후기 불교 講學私記의 종류와 定本化의 필요성" 남도문화연구소 (33) : 9-35, 2017

      6 석길암, "일심의 해석에 나타난 원효의 화엄적 관점 -『기신론소』 · 『별기』를 중심으로-" 불교문화연구원 (49) : 169-191, 2008

      7 최유진, "원효화쟁사상연구" 경남대출판부 1999

      8 석길암, "원효의 보법화엄사상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3

      9 고익진, "원효의 기신론소별기를 통해 본 眞俗圓融無碍觀과 그 성립이론"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1 : 287-319, 1972

      10 이평래, "원효연구논총" 국토통일원 477-503, 1987

      11 최유진, "원효사상연구: 화쟁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대학원 1989

      12 조명기,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경서원 90-134, 1982

      13 이평래, "신라불교여래장사상사연구" 민족사 1995

      14 이종수, "숙종 7년 중국선박의 표착과 백암성총의 불서간행" 불교학연구회 (21) : 259-295, 2008

      15 고영섭, "불자들의 정토인식과 불교의례의 재편" 대발해동양학한국학연구원 한국불교사연구소 (55) : 43-86, 2018

      16 고영섭, "불교로 읽는 고전: 모든 생명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밝혀낸 인문학의 수트라" 2014

      17 고영섭, "분황(芬皇) 원효(元曉)의 화쟁(和諍) 회통(會通) 인식-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중심으로" 불교문화연구원 (81) : 59-92, 2017

      18 고영섭, "분황(芬皇) 원효(元曉)의 일심사상(一心思想) - 기신학의 일심(一心)과 삼매론의 일미(一味)와 관련하여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23) : 107-152, 2017

      19 고영섭, "분황 원효의 생애와 사상" 운주사 2016

      20 고영섭, "분황 원효와 현수 법장의 기신학 이해"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1 : 141-187, 2017

      21 고영섭, "분황 원효 : 고영섭 교수의 원효에세이" 박문사 2015

      22 황금연, "백암성총의 정토수행에 대한 연구" 한국정토학회 29 : 279-313, 2018

      23 이수미, "동아시아에서의 『대승기신론』 해석의 전개" 철학사상연구소 (60) : 39-74, 2016

      24 고영섭, "동아시아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대발해동양학한국학연구원 한국불교사연구소 (52-53) : 84-118, 2018

      25 최연식, "대승사론현의기" 불광출판부 2010

      26 박태원, "대승기신론사상연구(I)" 민족사 1994

      27 석길암, "근현대 한국의 대승기신론소 별기의 연구사"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2 : 9-39, 2007

      28 殷貞姬, "起信論疏·別記에 나타난 元曉의 一心思想" 고려대학교 대학원 1983

      29 안성두, "眞諦의 삼성설 해석과 阿摩羅識" 한국불교연구원 (42) : 101-150, 2015

      30 고영섭, "無號 白峻(性郁)의 학문과 사상"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14) : 36-78, 2018

      31 楊文會, "楊仁山居士遺著 제9책"

      32 吉津宜英, "東アジア仏敎の諸問題: 聖嚴博士古稀記念論叢" 山 喜房佛書林 133-149, 2001

      33 박태원, "新羅佛敎의 大乘起信論 硏究"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4 : 56-57, 1993

      34 石田武作, "寫經よリ見奈良朝佛敎の硏究 第11" 附錄 東洋文庫論叢 1930

      35 平川彰 編, "如來藏思想と大乘起信論" 春秋社 5-96, 1990

      36 竹村牧南, "如來藏思想と大乘起信論" 春秋社 363-, 1990

      37 法藏, "大乘起信論義記別記"

      38 法藏, "大乘起信論義記"

      39 子璿, "大乘起信論筆削記"

      40 性聰, "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

      41 宗密, "大乘起信論疏"

      42 元曉, "大乘起信論疏"

      43 元曉, "大乘起信論別記"

      44 傳奧, "大乘起信論隨疏記"

      45 藕益 智旭, "大乘起信論裂網疏"

      46 元曉, "大乘起信論二障義"

      47 高崎直道, "大乘起信論の語法: ‘依’ ‘以’ ‘故’等の用法をめぐて" 哲學史學編 7 : 1992

      48 柏木弘雄, "大乘起信論の硏究-大乘起信論の成立に關する資料論的 硏究" 春秋社 1981

      49 石井公成, "大乘起信論の用語と語法の傾向: NGSMによる比較分析" 印度學仏敎学會 52 : 2003

      50 大竹晉, "大乘起信論の引用文獻" 22 : 51-65, 2004

      51 石井公成, "大乘起信論の引用文獻" 22 : 2004

      52 馬鳴, "大乘起信論"

      53 馬鳴, "大乘起信論"

      54 荒牧俊典, "北朝隋唐 中國仏敎思想史" 法藏館 2000

      55 오타케 스스무, "<大乗起信論> 成立問題に関する近年の動向をめぐって" 불교문화연구소 (12) : 9-43, 2012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9-16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KCI등재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23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Buddhist Research Institute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3 0.73 0.6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5 1.313 0.17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