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은 도리이 류조의 1910년대 식민지 조선 조사의 기획과 과정을 재정리하는 것을 통해, 당시 식민지 조사가 가졌던 성격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도리이 류조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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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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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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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도리이 류조의 1910년대 식민지 조선 조사의 기획과 과정을 재정리하는 것을 통해, 당시 식민지 조사가 가졌던 성격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도리이 류조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논문은 도리이 류조의 1910년대 식민지 조선 조사의 기획과 과정을 재정리하는 것을 통해, 당시 식민지 조사가 가졌던 성격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도리이 류조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직후 식민지 조선 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가나자와 쇼자부로와 함께 학무국 촉탁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식민통치상, 그중에서도 특히 동화정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학술조사로, ‘일선동조론’을 밝혀 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리이 류조의 조사는 세 시기를 거쳐 변화한다. 첫 번째 시기에는 자신의 관심사였던 고구려 관련 유적에 대해서도 해석을 덧붙이려고 했고, 아직까지는 ‘일선동조론’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었다. 두 번째 시기에는 총독부 측에서 요구한 인종학적 조사에만 집중함으로써 ‘X민족’이라는 존재를 통해 ‘일선동조론’의 단초를 마련했다. 세 번째 시기에는 고적조사사업으로 조사가 합쳐지면서 그의 조사활동은 점차 주변화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도리이는 ‘X민족’론을 파기하고 ‘고유일본인론’을 중심으로 ‘일선동조론’을 주장하였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선동조론’을 바탕으로 식민통치의 정당성 주장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 주장에서는 일제와 식민지 조선의 과거 관계를 현재와는 역전된 상태로 설정하고 있었기에 총독부 입장에서는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고 후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1910년대 도리이 류조의 식민지 조선 조사는 그 논리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character of the colonial investigations in the 1910s by reorganizing the planning, investigation process, and results of the “Research on Colonial Chōsen” by Torii Ryūzō. Torii’s investigations beg...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character of the colonial investigations in the 1910s by reorganizing the planning, investigation process, and results of the “Research on Colonial Chōsen” by Torii Ryūzō.
Torii’s investigations began together with the Korea-Japan Annexation Treaty in 1910. Torii was appointed as a part-time government officer in the Bureau of Academic Affairs together with the linguist Kanazawa Shōzaburō at the request of the Governor-General of Korea Terauchi Masatake. The purpose of the academic investigation was to provide a foundation for the assimilation policy by making the “theory of Japan-Korea Ancestral Homogeneity” a contemporary scientific study.
His investigations changed over three periods. In the first period, Torii tried to add an interpretation to the Goguryeo-related remains, which was his interest. However, he was having difficulty in establishing a basis required for claiming the “theory of Japan-Korea Ancestral Homogeneity.” In the second period, Torii was provided with a clue for the “theory of Japan-Korea Ancestral Homogeneity” by way of the existence of an “X nation” through concentrating on the ethnological investigations requested by the Government-General of Chōsen. In the third period, his investigation activity gradually became marginalized as it became a part of the investigation on the Historical Remains of Colonial Chōsen. Torii rescinded the “X nation” theory and claimed the “theory of Japan-Korea Ancestral Homogeneity” with “native Japanese” in the center. He led the claim of colonial rule based upon the “theory of Japan-Korea Ancestral Homogeneity” from the time of the March First Movement.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Chōsen in his theory was reversed by his stating that ancient Japan had been a colony of Chōsen. Therefore, it was not possible for the Government-General of Chōsen to welcome Torii’s argument.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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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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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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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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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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