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관 자격으로 무진사행(1748)에 참여했던 조명채는 ‘報告’와 ‘復命’의 의도를 목적으로 한 사행록 『봉사일본시문견록』을 저술하였다. 특히 조명채는 조선 문사와 일본 문사 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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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관 자격으로 무진사행(1748)에 참여했던 조명채는 ‘報告’와 ‘復命’의 의도를 목적으로 한 사행록 『봉사일본시문견록』을 저술하였다. 특히 조명채는 조선 문사와 일본 문사 간의 ...
종사관 자격으로 무진사행(1748)에 참여했던 조명채는 ‘報告’와 ‘復命’의 의도를 목적으로 한 사행록 『봉사일본시문견록』을 저술하였다. 특히 조명채는 조선 문사와 일본 문사 간의 필담 내용을 미야케 타케시(三宅斌), 막부 유관인 린케(林家) 문인, 나카무라 란린(中村蘭林)이라는 세 그룹을 중심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통신사 부사 서기 유후는 오사카(大坂)에서 이즈미(和泉) 지역의 어린 문사 미야케 타케시와의 필담에서, 그에게 의복·석전·학교 등 여러 예악제도에 관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서 그의 독서목록의 파악을 통해 그의 학문적 지향에 대해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본 학술 문단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통해 주자학 존숭 의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통신사 문인들은 에도(江戶)에서 막부 유관인 린케(林家) 태학두 부자와 함께 나카무라 란린이라는 일본 문사를 함께 만나게 된다. 조선 문사들은 막부 유관인 린케(林家)와의 필담을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무사정권의 문형을 세습하며 무사안일하게 그들의 명예만 지키려 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 문인들은 주자학을 통해 동류의식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시문 실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고 여겼으며, 오히려 고학파 계열 문인들보다도 못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명채는 린케의 시문 실력과 일본 문단, 막부에서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상황을 사행록에 기록하였다.
오히려 조명채는 후에 고학파를 따르는 이단으로 치부된 나카무라 란린과의 필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명채는 란린과의 필담에서 그가 통신사에게 일본 고서의 목록들을 제시하여 일본에 중국·조선에도 전하지 않는 고서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하며, 삼국의 역사서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 문사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조명채는 그의 과시를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중화문명을 흠모하며 삼국의 역사서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명채는 필담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고증을 중시하는 고학파의 성향을 드러낸 란린에 대해 최종적으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조명채는 『봉사일본시문견록』을 통해 ‘미야케 타케시’라는 幼學을 통해 일본의 국속을 탈피하고 예악문명을 실천하는 일본인의 존재를 포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통신사 문인들은 주자학적 이념과 질서를 통해 일본을 예악문명으로 교화시키겠다는 입장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이를 사행록에 남겼다. 그리고 막부 태학두인 ‘린케(林家)’와의 필담을 통해 오랫동안 무사정권의 문형을 세습하며 무사안일하게 그들의 명예만 지키려 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나카무라 란린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주자학을 존숭하는 자로 인식하지만, 나중에는 이토 진사이를 따르는 고학파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 문단에서 경서 및 조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 점점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고학파에 대해 의심과 비난 위주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통신사 문인들이 겉으로는 란린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실력에 대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명채의 『봉사일본 ...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ho Myoung-chae(曺命采), who participated in the Mujin-Sahang(戊辰使行), wrote a meandering book, Bongsailbonsimungyeollok(奉使日本時聞見錄), with the intention of 'reporting' In particular, The contents of the writing between J...
Cho Myoung-chae(曺命采), who participated in the Mujin-Sahang(戊辰使行), wrote a meandering book, Bongsailbonsimungyeollok(奉使日本時聞見錄), with the intention of 'reporting' In particular, The contents of the writing between Joseon and Japanese writers are recorded centering on three groups: Takeshi Miyake(三宅斌), Rinke(林家), and Ranrin Nakamura(中村蘭林).
In a written conversasion with Takeshi Miyake, a young literary man in the Izumi area of Osaka, Yufu(柳逅) of Joseon asks questions about various institutions. In the following question, he shows an attempt to grasp his academic orientation through his reading list. It also shows an attempt to confirm the will to honor Zhu Xi(朱子) through questions about the situation of the Japanese academic literature.
In Edo(江戶), Joseon writers met a Japanese literary man named Ranrin Nakamura with the shogunate-related father and son Rinke(林家). In their written conversations with the shogunate-related Rinke, Joseon writers describe them as those who have long succeeded in the form of the samurai regime and try to keep their honor carelessly. Joseon writers did not necessarily have a positive view of them just because they formed a sense of similarity through Neo-Confucianism(性理學). They thought that their poetry skills were falling day by day, and rather they were evaluated as inferior to those of the high school. Cho Myung-chae recorded this situation after learning that Rinke's poetry skills and influence in the Japanese literary world and the Japanese regime were becoming weaker.
Rather, Cho Myoung-chae records in more detail his writing stories with Ranrin Nakamura(中村蘭林), who later followed the ancient studies. Cho Myoung-chae also shows off that there are old books in Japan that were not delivered to China and Joseon by presenting a list of old Japanese books to the news agency, and shows that they are trying to gain recognition from Joseon literature. Although Cho Myung-chae played down his display, he admired Chinese civilization and recorded an important interest in the history books of the three countries. However, as the writing progressed to some extent, Cho Myoung-chae became aware of Lan Lin, who expressed a tendency to value archaeology.
Cho Myoung-chae's Bongsailbonsimungyeollok has the following meanings. Joseon writers, who had not recognized Japanese writers as counterparts of literary exchanges, recognized them as counterparts of literary exchanges to some extent through their writings and tried to find the possibility that Japan could be edified from them.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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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황현우, "『隨槎日錄』을 통해본 홍경해와 에츠 슈(越緝)와의 필담과 그 의미" 동아대 석당학술원 85 : 2023
10 曺命采, "『海行摠載』 Ⅹ" 민족문화추진위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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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구지현, "18세기초 조일문사의 신분적 특성에 따른 필담교류의 분화양상에 대해여"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44 : 2010
12 한태문, "18世紀 通信使의 일본견문록 『奉使日本時聞見錄』 연구" 동아인문학회 3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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