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개명을 하였다. 고려사 열전과 고려묘지명에 나오는 관인들을 분석해 보면 대략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개명을 하였다. 이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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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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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개명을 하였다. 고려사 열전과 고려묘지명에 나오는 관인들을 분석해 보면 대략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개명을 하였다. 이 논문은 왜 이렇게 많은 고려 사람들이 개명하였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이를 분석한 논문이다.
고려시대에 개명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명을 위해서는 일정한 공적 절차를 거쳐야만 하였고, 또한 호구 문서나 재산 소유 문서 등의 변경이 수반되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개명을 실제 할 수 있었던 계층은 지배층에 한정되었다고 생각된다.
개명은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진 현상이었다. 또한 고려시대 사람들은 老年이나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 개명을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君子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는 禮記의 원칙과도 다른 고려적인 것이었다.
개명을 하는 이유로는 크게 賜名, 避諱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른 개명과 자발적 개명으로 나누어진다. 賜名은 국왕의 총애를 받거나 정계에서의 비중, 귀화인 등에게 주어졌는데, 賜名된 이름에는 주로 국왕과 이름을 받은 사람과의 정치적 관계나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의 의미가 담겨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발적인 개명에는 정치적 출세에 대한 지향, 불운으로부터의 회피 등 불안, 의지, 희망 등 개인적인 관심사가 담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중첩된 이유에서 어떤 특정한 이름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려사회에서 개명은 결코 개인적인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은 정치·사회에서 그 사람의 현재 모습,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고려시대 개인은 한 개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문중의 일원으로서, 귀족으로서, 관료로서, 정치인으로서 살았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정치적 관계의 특성이 개명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고려인들이 관료로서, 학자로서 자신을 대표하는 이름을 바꾸려고 할 때 거기에는 그들의 지향이 담겨질 수밖에 없고, 또한 담으려고 하였다.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 목적하는 바,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자신의 이름에 담아 세상에 공표하고 이를 실현해 가려고 하였다. 권력자의 독단에 정권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개명을 통해서 표명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유학적 삶이나 유학적 사유를 이름에 드러내거나, 또는 고려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표명하려 하였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고려시대 후기로 갈수록, 유학사상이 발전하고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더욱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