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환재 박규수의 사상을 특히 華夷觀의 變容이라는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살펴 본 것이다. 화이관이란 종래 조선조에 있어서 타국과의 관계를 규정지었던 中華-夷狄觀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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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Korean
KCI우수등재
학술저널
7-2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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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환재 박규수의 사상을 특히 華夷觀의 變容이라는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살펴 본 것이다.
화이관이란 종래 조선조에 있어서 타국과의 관계를 규정지었던 中華-夷狄觀을 의미한다. 이 관념은 전통적인 天圓地方說에 근거를 둔 차별적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박규수에 있어서 화이관의 변용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는, 실학사상으로부터의 변용이다. 그가 祖父 박지원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개화사상의 원류로서 평가되는 부분이다. 둘째는 황현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斥洋”으로부터 “通倭”라고 하는 변절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고찰결과, 박규수는 실학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다만 소극적으로 이용후생을 위한 문물도입의 차원을 떠나 수교를 맺음으로써 고립을 피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방편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학의 시대와 박규수의 시대 사이에 놓인 세월의 간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변절이라는 측면에 관해서 본다면, 박규수는 본래적으로 문호개방에 대하여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그의 중국방문을 통하여 더욱 굳어지게 된다. “통왜”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만 내재되어 있던 생각이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쇄국으로는 당시 국제정세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다는 상황변화에 대한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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