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강릉단오제 主神 교체 문제에 관한 고찰 = A study on the replacement of main god in Gangneung-Dano festival(江陵端午祭): the issue on the appearance of Bumil Guksa(梵日國師)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99877335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강릉단오제의 주신은 현재 범일국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허균의 ?大嶺山神讚?(1603)의 기록을 보면 강릉단오제 주신이 김유신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초에서 20세기 사이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주신이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언제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18세기 교체론을 주장한 기존의 학자들의 설은 1차 자료에 등장하는 ‘國師’라는 표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자료의 표현이 정확한 신명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18세기 교체론의 확실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1차 자료를 살펴본다면 19세기까지 주신 교체론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서 의례가 중단되었다는 다수의 기록이 확인된다. 이 시기는 집단의 기억에 의존한 의례 계승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언어적 기억이 익숙한 형태로 해석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국사 성황신’이라는 조어가 가능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로 망각에 의한 기억 변조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키바 타카시秋葉隆가 남긴 강릉단오제에 관한 기록을 보면 주신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고 범일국사와 관련된 설화도 단오제 주신과 관련성이 있던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20세기 초, 망각에 의한 기억 변조 상황과 인류학적 조사의 영향으로 고조된 의례의 주신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강릉단오제 주신이 비로소 범일국사로 규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우리의 전통 창출의 한 사례이기도 하였다.
      번역하기

      강릉단오제의 주신은 현재 범일국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허균의 ?大嶺山神讚?(1603)의 기록을 보면 강릉단오제 주신이 김유신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초에서 20세기 사이...

      강릉단오제의 주신은 현재 범일국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허균의 ?大嶺山神讚?(1603)의 기록을 보면 강릉단오제 주신이 김유신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7세기 초에서 20세기 사이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주신이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언제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18세기 교체론을 주장한 기존의 학자들의 설은 1차 자료에 등장하는 ‘國師’라는 표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자료의 표현이 정확한 신명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18세기 교체론의 확실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1차 자료를 살펴본다면 19세기까지 주신 교체론을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서 의례가 중단되었다는 다수의 기록이 확인된다. 이 시기는 집단의 기억에 의존한 의례 계승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언어적 기억이 익숙한 형태로 해석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국사 성황신’이라는 조어가 가능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로 망각에 의한 기억 변조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키바 타카시秋葉隆가 남긴 강릉단오제에 관한 기록을 보면 주신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고 범일국사와 관련된 설화도 단오제 주신과 관련성이 있던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20세기 초, 망각에 의한 기억 변조 상황과 인류학적 조사의 영향으로 고조된 의례의 주신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강릉단오제 주신이 비로소 범일국사로 규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우리의 전통 창출의 한 사례이기도 하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umil Guksa is known as the main god in Gangneung-Dano festival. But “Daegwansanshinchan(大嶺山神讚)” written by Heo Gyun shows that Kim, Yu Shin (金庾信) was the main god in 1603 in Gangneung-Dano festival. Therefore, it is inevitable that the main god was replaced from some causes between 17th century and20th century. Questions like why and when this change did occur can arise. The theories of scholars who argued the replacement in 18th C. are based on the expression ‘Guksa(國師)’. But the expression is not exactly same name of the present main god, so it is not the indisputable grounds for the theories of the replacement in 18th century. From the 1st materials, the definitive foundations of the theories are not founduntil 19th century. By the way, a number of records of which the ritual was stopped during the late 19th C. and early 20th C. are confirmed. This period can be the timeof ritual inheritance dependent on collective memories. At a time like this, it seems thatverbal memories are interpreted as familiar forms, and that a coined word ‘Guksaseonghwanshin(國師城隍神)’ can be made. There seem to be occured memory modulation by oblivescence. Moreover, according to the record on the festival left by Akiba Takashi(秋葉 隆), he didn’t have attention to the main god of the ritual, the folk tale on Bumil Guksa recorded by Akiba was not either related to the god. For these reasons, I guess that the main god of the festival was fixed by Bumil Guksa while memory modulation by oblivescence and interest in the main god of ritual by effect of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 in the early 20th C. were related each other. This is also an instance of the invention of our tradition.
      번역하기

      Bumil Guksa is known as the main god in Gangneung-Dano festival. But “Daegwansanshinchan(大嶺山神讚)” written by Heo Gyun shows that Kim, Yu Shin (金庾信) was the main god in 1603 in Gangneung-Dano festival. Therefore, it is inevitable tha...

      Bumil Guksa is known as the main god in Gangneung-Dano festival. But “Daegwansanshinchan(大嶺山神讚)” written by Heo Gyun shows that Kim, Yu Shin (金庾信) was the main god in 1603 in Gangneung-Dano festival. Therefore, it is inevitable that the main god was replaced from some causes between 17th century and20th century. Questions like why and when this change did occur can arise. The theories of scholars who argued the replacement in 18th C. are based on the expression ‘Guksa(國師)’. But the expression is not exactly same name of the present main god, so it is not the indisputable grounds for the theories of the replacement in 18th century. From the 1st materials, the definitive foundations of the theories are not founduntil 19th century. By the way, a number of records of which the ritual was stopped during the late 19th C. and early 20th C. are confirmed. This period can be the timeof ritual inheritance dependent on collective memories. At a time like this, it seems thatverbal memories are interpreted as familiar forms, and that a coined word ‘Guksaseonghwanshin(國師城隍神)’ can be made. There seem to be occured memory modulation by oblivescence. Moreover, according to the record on the festival left by Akiba Takashi(秋葉 隆), he didn’t have attention to the main god of the ritual, the folk tale on Bumil Guksa recorded by Akiba was not either related to the god. For these reasons, I guess that the main god of the festival was fixed by Bumil Guksa while memory modulation by oblivescence and interest in the main god of ritual by effect of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 in the early 20th C. were related each other. This is also an instance of the invention of our tradition.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확인 가능한 자료들
      • 3. 20세기 자료로 본 국사성황신과 범일국사
      • 4. 새로운 가설
      • [국문요약]
      • 1. 머리말
      • 2. 확인 가능한 자료들
      • 3. 20세기 자료로 본 국사성황신과 범일국사
      • 4. 새로운 가설
      • 참고문헌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臨瀛誌 前․後․續"

      2 조지훈, "한국학연구" 나남출판 1996

      3 김선풍, "한국구비문학대계 2집 8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4 金孝慶, "한국 마을신앙의 人物神 연구"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8

      5 임병권, "초기 선 어록에 나타난 신라․고려 선사" 한국선학회 (2) : 2001

      6 최종성, "조선조 유교사회와 무속 국행의례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1

      7 이규대, "조선시기 향촌사회 연구" 신구문화사 2009

      8 이기태, "읍치 성황제 주제집단의 변화와 제의 전통의 창출" 민속원 1997

      9 김도현, "울진 12령 샛재[鳥嶺] 城隍祠와 褓負商團" 실천민속학회 16 : 217-259, 2010

      10 한국종교사연구회, "성황당과 성황제" 민속원 1998

      1 "臨瀛誌 前․後․續"

      2 조지훈, "한국학연구" 나남출판 1996

      3 김선풍, "한국구비문학대계 2집 8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4 金孝慶, "한국 마을신앙의 人物神 연구"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8

      5 임병권, "초기 선 어록에 나타난 신라․고려 선사" 한국선학회 (2) : 2001

      6 최종성, "조선조 유교사회와 무속 국행의례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1

      7 이규대, "조선시기 향촌사회 연구" 신구문화사 2009

      8 이기태, "읍치 성황제 주제집단의 변화와 제의 전통의 창출" 민속원 1997

      9 김도현, "울진 12령 샛재[鳥嶺] 城隍祠와 褓負商團" 실천민속학회 16 : 217-259, 2010

      10 한국종교사연구회, "성황당과 성황제" 민속원 1998

      11 김소현, "생태민속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강릉단오제 주신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12

      12 장정룡, "북한의 현실과 우리의 미래" 집문당 2003

      13 남근우, "복원주의 민속학의 아이러니-‘강릉단오제’의 곤경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회 52 : 37-84, 2010

      14 남근우, "민속의 문화재화와 관광화" 한국민속학회 43 : 205-253, 2006

      15 박윤진, "고려시대 왕사·국사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5

      16 김선풍, "강릉단오제와 설화문학, In 한국 민속제의 전승과 현장" 새미 2009

      17 장정룡, "강릉단오제 현장론 탐구" 국학자료원 2007

      18 황루시, "강릉단오제 설화연구" 한국구비문학회 (14) : 452-487, 2002

      19 장정룡, "강릉단오굿" 비교민속학회 13 : 1996

      20 김경남, "강릉 대성황사 복원과 그 의미, In 한국 민속제의 전승과 현장" 새미 2009

      21 이규대, "강릉 국사성황제와 향촌사회의 변화 : 향리층의 미타계를 중심으로" 한국역사민속학회 7 : 1998

      22 김선풍, "韓國詩歌의 民俗學的硏究" 螢雪出版社 1977

      23 김태곤, "韓國 民間信仰 硏究" 集文堂 1994

      24 임동권, "重要無形文化財指定資料 : 江陵端午祭" 문교부 1966

      25 村山智順, "部落祭" 朝鮮總督府 1937

      26 沈一洙, "遯湖遺稿" 橄祼書屋 1961

      27 송인성, "言語 측면에서의 祖堂集 新羅․高麗 禪師 부분의 後代 編入 與否" 한국선학회 (2) : 2001

      28 "虛白堂集"

      29 한기문, "祖堂集과 신라․고려 高僧의 행적" 한국중세사학회 (6) : 1999

      30 朝鮮總督府, "生活狀態照査(江陵郡)" 朝鮮總督府 1931

      31 김선풍, "江陵端午祭 實測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94

      32 秋葉, "江陵端午祭" 民俗學會 2 (2): 1930

      33 장정룡, "江陵 端午祭 白書" 江陵文化院 1999

      34 장정룡, "江原道 民俗硏究" 국학자료원 2002

      35 "朝鮮王朝實錄"

      36 한우근, "朝鮮王朝初期에 있어서의 儒敎理念의 實踐과 信仰․宗敎 : 祀祭問題를 中心으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3 : 1976

      37 손진태, "朝鮮民族文化의 硏究" 乙酉文化社 1948

      38 秋葉, "朝鮮民俗誌" 東文選 1993

      39 이훈상, "朝鮮後期 邑治 社會의 構造와 祭儀 : 鄕吏集團의 正體性 혼란과 邑治 祭儀의 遊 戲化" 歷史學會 (147) : 1995

      40 朝鮮總督府, "朝鮮の年中行事" 朝鮮總督府 1931

      41 김영수, "智異山聖母祠에 就하야" 震檀學會 (11) : 1939

      42 "新增東國輿地勝覽"

      43 瀧澤誠, "增修臨瀛誌" 江凌古蹟保存會 1933

      44 김태곤, "國師堂信仰 硏究 : 中西部地方 形態를 중심으로" 백산학회 8 : 1970

      45 서인석, "1910년대 강릉 여자의 서울 구경 : 서유록의 경우" 우리말글학회 23 : 2001

      46 今村, "(歷史民俗)朝鮮漫談" 南山哈社 1928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