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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中․日 古代時期 度量衡制 比較 硏究 = A Comparative Study on System of Measurement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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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comparatively on system of measurement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First, when it comes to korea, noting is clearly known when measurement was united and organized. On the other hand, it can be demonstrated through historical sources in case of ancient china and Japan. Accepting part of measurement in a law of Tang[Tánglǜ shūyì(唐律疏議)], ancient Japan embodied it in the Taihōryō(大寶令), Yōrō Code(養老令), etc. Ancient korea seems to have such a law, according to the law of Koguryo(高句麗) and Silla(新羅), and record like ‘Do not follow the law’(‘不從律令’) in Baekje(百濟).
    Second, type and length of cheok(尺) in the ancient triple countries included a Hancheok(han chi, 漢尺, about 23.1㎝), a Namjocheok(nan chao chi, 南朝尺) a Dangdaecheok(tang da chi, 唐大尺, 29.7㎝), a Koguryocheok(高句麗尺, 35.6㎝). The length of chinese cheok had an impact on the other two countries.
    Third, units of volume in the ancient triple involved Hop(合)ㆍSeung(升)(doe, 刀)ㆍDo(斗)ㆍSeok(石) (GokㆍSeokㆍSeom, 斛ㆍ碩ㆍ苫). The units in ancient korea were differently worked with the other two countries. The capacity of a Seung(升) in ancient China was 200㎖~600㎖. But it was 600㎖ in ancient Japan, as it was in Tang(唐) dynasty. In case of ancient Korea, specially Silla, it was about 0.2ℓuntil unified Silla.
    Fourth, ‘SuㆍRyangㆍGeun’(‘銖ㆍ兩ㆍ斤’) were usually used as units of weight in the ancient triple. It was difference with ancient Korea that the unit ‘Geon’(‘錢’) was used as lower unit than Ryang(兩) in ancient China and Japan. The weight of a Geun was about 240g in ancient Korea and was about 240g~ 640g in ancient China. It was the same of Tang in ancient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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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comparatively on system of measurement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First, when it comes to korea, noting is clearly known when measurement was united and organized. On the other hand, it can be demonstrated through...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comparatively on system of measurement in ancient Korea, China and Japan.
    First, when it comes to korea, noting is clearly known when measurement was united and organized. On the other hand, it can be demonstrated through historical sources in case of ancient china and Japan. Accepting part of measurement in a law of Tang[Tánglǜ shūyì(唐律疏議)], ancient Japan embodied it in the Taihōryō(大寶令), Yōrō Code(養老令), etc. Ancient korea seems to have such a law, according to the law of Koguryo(高句麗) and Silla(新羅), and record like ‘Do not follow the law’(‘不從律令’) in Baekje(百濟).
    Second, type and length of cheok(尺) in the ancient triple countries included a Hancheok(han chi, 漢尺, about 23.1㎝), a Namjocheok(nan chao chi, 南朝尺) a Dangdaecheok(tang da chi, 唐大尺, 29.7㎝), a Koguryocheok(高句麗尺, 35.6㎝). The length of chinese cheok had an impact on the other two countries.
    Third, units of volume in the ancient triple involved Hop(合)ㆍSeung(升)(doe, 刀)ㆍDo(斗)ㆍSeok(石) (GokㆍSeokㆍSeom, 斛ㆍ碩ㆍ苫). The units in ancient korea were differently worked with the other two countries. The capacity of a Seung(升) in ancient China was 200㎖~600㎖. But it was 600㎖ in ancient Japan, as it was in Tang(唐) dynasty. In case of ancient Korea, specially Silla, it was about 0.2ℓuntil unified Silla.
    Fourth, ‘SuㆍRyangㆍGeun’(‘銖ㆍ兩ㆍ斤’) were usually used as units of weight in the ancient triple. It was difference with ancient Korea that the unit ‘Geon’(‘錢’) was used as lower unit than Ryang(兩) in ancient China and Japan. The weight of a Geun was about 240g in ancient Korea and was about 240g~ 640g in ancient China. It was the same of Tang in ancient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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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한ㆍ중ㆍ일의 고대 도량형의 연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고대는 도량형의 통일과 정비의 시기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중국과 일본 고대는 자료를 통해 그 시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일본 고대는 도량형에 대해 唐의 律令[唐律疏議]을 수용하여 <大寶令>ㆍ『養老令』 등에서 정리하였지만, 한국 고대는 신라ㆍ고구려의 율령과 백제의 ‘不從律令’을 고려하면 관련 법령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 한ㆍ중ㆍ일 고대 척의 종류와 길이는 漢尺(약 23.1㎝), 南朝尺, 唐大尺(29.7㎝), 高句麗尺(35.6㎝) 등이 사용되었다. 중국 고대 척은 한국과 일본 고대에 영향을 주었고, 한국 고대 척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셋째, 한ㆍ중ㆍ일 고대 부피의 단위는 合ㆍ升(刀)ㆍ斗ㆍ石(斛ㆍ碩ㆍ苫) 등이 사용되었고, 한국 고대 단위 체계는 중국과 일본 고대와 달리 운영되었다. 중국 고대 1승의 용적은 약 200㎖~600㎖ 등이었지만, 일본 고대 1승의 용적은 당대와 같은 약 600㎖ 등이 사용되었다. 한국 고대 1승의 용적은 신라의 경우 통일신라 때까지 약 0.2ℓ가 사용되었다.
    넷째, 한ㆍ중ㆍ일 고대 무게의 단위는 ‘銖ㆍ兩ㆍ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지만, 중국과 일본 고대는 兩 아래 ‘錢’이란 단위가 사용된 것이 한국 고대와 차이가 있다. 한국 고대 1근의 중량은 약 240g이었지만, 중국 고대 1근의 중량은 약 240g에서 640g 등이었고, 일본 고대 1근의 중량은 唐代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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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ㆍ중ㆍ일의 고대 도량형의 연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고대는 도량형의 통일과 정비의 시기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중국과 일본 고대는 자료를 통해 그 시기를 ...

    한ㆍ중ㆍ일의 고대 도량형의 연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고대는 도량형의 통일과 정비의 시기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중국과 일본 고대는 자료를 통해 그 시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일본 고대는 도량형에 대해 唐의 律令[唐律疏議]을 수용하여 <大寶令>ㆍ『養老令』 등에서 정리하였지만, 한국 고대는 신라ㆍ고구려의 율령과 백제의 ‘不從律令’을 고려하면 관련 법령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둘째, 한ㆍ중ㆍ일 고대 척의 종류와 길이는 漢尺(약 23.1㎝), 南朝尺, 唐大尺(29.7㎝), 高句麗尺(35.6㎝) 등이 사용되었다. 중국 고대 척은 한국과 일본 고대에 영향을 주었고, 한국 고대 척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셋째, 한ㆍ중ㆍ일 고대 부피의 단위는 合ㆍ升(刀)ㆍ斗ㆍ石(斛ㆍ碩ㆍ苫) 등이 사용되었고, 한국 고대 단위 체계는 중국과 일본 고대와 달리 운영되었다. 중국 고대 1승의 용적은 약 200㎖~600㎖ 등이었지만, 일본 고대 1승의 용적은 당대와 같은 약 600㎖ 등이 사용되었다. 한국 고대 1승의 용적은 신라의 경우 통일신라 때까지 약 0.2ℓ가 사용되었다.
    넷째, 한ㆍ중ㆍ일 고대 무게의 단위는 ‘銖ㆍ兩ㆍ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지만, 중국과 일본 고대는 兩 아래 ‘錢’이란 단위가 사용된 것이 한국 고대와 차이가 있다. 한국 고대 1근의 중량은 약 240g이었지만, 중국 고대 1근의 중량은 약 240g에서 640g 등이었고, 일본 고대 1근의 중량은 唐代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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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令義解"

    2 윤선태, "한국 고대의 척도와 그 변화-고구려척의 탄생과 관련하여" 98 : 2002

    3 李宗峯, "통일신라시대의 척" 8 : 2000

    4 홍희유, "조선상업사"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5 윤선태, "신라 하대 量制에 관한 일시론-雁鴨池 출토 量器를 중심으로" 17 : 2000

    6 김창석,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 일조각 2004

    7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의 도량형" 예맥출판사 2003

    8 노중국, "백제의 度量衡과 그 運用盧重國 -척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40) : 73-136, 2005

    9 박찬흥, "고대 한국과 일본의 양전제 비교 고찰" 고려사학회 (41) : 7-38, 2010

    10 박찬흥, "고구려의 段步制" 고려사학회 12 : 2-64, 2002

    1 "令義解"

    2 윤선태, "한국 고대의 척도와 그 변화-고구려척의 탄생과 관련하여" 98 : 2002

    3 李宗峯, "통일신라시대의 척" 8 : 2000

    4 홍희유, "조선상업사"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5 윤선태, "신라 하대 量制에 관한 일시론-雁鴨池 출토 量器를 중심으로" 17 : 2000

    6 김창석,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 일조각 2004

    7 국립부여박물관, "백제의 도량형" 예맥출판사 2003

    8 노중국, "백제의 度量衡과 그 運用盧重國 -척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40) : 73-136, 2005

    9 박찬흥, "고대 한국과 일본의 양전제 비교 고찰" 고려사학회 (41) : 7-38, 2010

    10 박찬흥, "고구려의 段步制" 고려사학회 12 : 2-64, 2002

    11 국립경주박물관, "ꡔ국립경주박물관연보ꡕ" 한기정판사 1998

    12 呂恩暎, "高麗時代의 量制-結負制 이해의 기초로서-" 3 : 1987

    13 朴贊興, "高句麗尺에 대한 硏究" 44 : 1995

    14 이우태, "高句麗尺 再論-高句麗尺과 高麗術의 관계를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17) : 261-283, 2007

    15 "養老雜令"

    16 朴興秀, "韓國古代의 量田法과 量田尺에 관한 硏究" 1974

    17 李宇泰, "韓國古代의 量制" 10 : 1993

    18 李宗峯, "韓國中世度量衡制硏究" 혜안 2001

    19 米田美代治, "韓國上代建築의 硏究" 東山文化社 1976

    20 이종봉, "韓國 古代 度量衡制의 硏究現況과 課題" 효원사학회 42 : 1-37, 2012

    21 朴興秀, "韓ㆍ中度量衡制度史" 성균관대 출판부 1999

    22 "隋書"

    23 "譯註 韓國古代金石文(3)"

    24 "舊唐書"

    25 宮本佐知子, "考古學による日本歷史-交易と交通 9" 雄山閣 1997

    26 "續日本紀"

    27 崔德卿, "秦漢시대 度量衡의 처벌규정과 삶의 강제" 8 : 2000

    28 崔德卿, "秦漢시대 度量衡의 기준과 보급양상" 58 : 1999

    29 小泉袈裟勝, "秤(はがり)" 法政大學 出版局 1982

    30 "漢書"

    31 李宇泰, "泰東古典硏究" 創刊號 1984

    32 小泉袈裟勝, "枡(ます)" 法政大學 出版局 1980

    33 狩谷棭齋, "本朝度量權衡考" 平凡社 1991

    34 白南雲, "朝鮮封建社會經濟史(上)" 改造社 1937

    35 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36 "日本書紀"

    37 龜田隆之, "日本 古代における田租田積の硏究-度量衡制との關聯を通して-" 4 (4): 1955

    38 朴興秀, "新羅 및 高麗 때의 量制度와 量尺에 관하여" 5 : 1977

    39 "新唐書"

    40 "戰國策"

    41 崔德卿, "戰國ㆍ秦漢시대 度量衡制의 정치사적 의미와 그 변천" 23 : 1999

    42 阿部猛, "度量衡の事典" 同成社 2006

    43 "商君書"

    44 "唐律疏議"

    45 "唐六典"

    46 "史記"

    47 홍승우, "佐左官貸食記에 나타난 百濟의 量制와 貨食制" 4 : 2009

    48 丘光明, "中國歷代度量衡考" 科學出版社 1992

    49 丘光明, "中國科學技術史-度量衡卷" 科學出版社 2001

    50 邱隆, "中國度量衡圖集" 法仁文化社 1993

    51 吳承洛, "中國度量衡史" 商務印書館 1981

    52 松丸道雄, "中國史 2" 山川出版社 1996

    53 丘光明, "中國古代度量衡" 商務印書館 1996

    54 "三國遺事"

    55 이종봉, "三國時代의 量制" 부산경남사학회 (61) : 109-142, 2006

    56 "三國史記"

    57 小泉袈裟勝, "ものさし" 法政大學 出版局 1977

    58 新井宏, "まぼらしの古代尺-高句麗尺なかった-" 吉川弘文館 1992

    59 유태용, "35.6의 고구려자" 서문문화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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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12-02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지역과역사 -> 지역과 역사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신청제한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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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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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 1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1 0.74 1.55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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