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지장신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비교적 늦은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지장신앙이 다른 보살신앙과 다른 점은 바로 실존인물에 의하여 출현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욱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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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학교)
2011
Korean
김지장 ; 김교각 ; 구화산 ; 비관경 ; 구화산 화성사기 ; 지장보살도량 ; Gim Jijang ; Gim Gyogak ; Mt. Jiuhua ; Fei Guanqing ; Jiuhua shan huasheng si ji ; practice site of Ksitigarbha Bodhisattva ; 金地藏 ; 金喬覺 ; 九華山 ; 费冠卿 ; 九華山化城寺記
220.1
KCI등재
학술저널
77-10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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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중국에서 지장신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비교적 늦은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지장신앙이 다른 보살신앙과 다른 점은 바로 실존인물에 의하여 출현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욱 의...
중국에서 지장신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비교적 늦은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지장신앙이 다른 보살신앙과 다른 점은 바로 실존인물에 의하여 출현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지장신앙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구화산에서 신라 왕자 출신인 김지장(金地藏, 696-794)의 행화(行化)라고 하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김지장을 중심으로 지장신앙이 어떻게 발현되었는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김지장과 관련된 자료는 구화산화성사기(九華山化城寺記), 송고승전(宋高僧传), 신승전(神僧傳) 및 여러 종의 구화산지(九華山志)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 가운데 당대(唐代) 비관경(费冠卿)이 찬술한 구화산화성사기는 년대가 가장 빠른 까닭으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를 전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유추하였다. 첫째, 김지장이 왕족출신이고 신라로부터 도래했으며, 구화산에서 홀로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러한 김지장의 수행으로부터 구화산 주변에 많은 단월(檀越)들이 형성되었고, 또한 승중(僧衆)들이 모여들었고, 그에 따라 사찰을 건축하여 ‘화성사(化城寺)’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점차 교화가 널리 퍼지게 되자 드디어 ‘본국(신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수많은 승려들이 도래하여 무리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김지장은 철저하게 ‘좌선’ 수행을 중시했고 노동을 했다는 기사(記事)로부터 지장경전과 삼계교(三階敎)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김지장의 입적 후에 다양한 신이(神異)가 나타나 성인(聖人)의 화신으로 모셔졌으며, 점차 구화산(九華山)이 지장보살도량(地藏菩薩道場)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김지장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지게 된 것에는 김지장의 법명으로부터 행화(行化) 및 입적 후 여러 가지 신이(神異)가 경전에서 표현되는 바와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김지장의 입적 이후 당말(唐末)․오대(五代)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로 전설이 추가되어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감화를 주었다가 명대(明代)에 이르러 황명(皇命)에 의해 김지장은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인정되었으며, 구화산(九華山) 역시 공식적인 지장보살성지(地藏菩薩聖地)가 되었던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t was relatively late and not until the Tang period that the Chinese belief in Ksitigarbha started. The difference of Chinese Ksitigarbha worship from that of other bodhisattvas was it was caused by a real person; more significantly to us, the arisin...
It was relatively late and not until the Tang period that the Chinese belief in Ksitigarbha started. The difference of Chinese Ksitigarbha worship from that of other bodhisattvas was it was caused by a real person; more significantly to us, the arising of such a belief was occasioned by the educating activities of Gim Jijang (金地藏, 696-794), a prince of the Silla dynasty, at Mt. Jiuhua. Thus, this article briefly examined how the belief in Ksitigarbha manifested itself in China while focusing on Gim. Reference materials on Gim are chiefly Jiuhua shan huasheng si ji 九華山化城寺記, Song gaoseng zhuan 宋高僧传, Shenseng zhuan 神僧傳, and various kinds of Jiuhua shan zhi 九華山志. Among them, Jiuhua shan huasheng si ji by Fei Guanqing 费冠卿 is the most trustworthy as it was the first to appear. Accordingly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it thoroughly and then inferred the following four clear facts. First, Gim was born of a royal family coming from Silla and disciplined himself alone on Mt. Jiuhua. Second, on account of his practice lots of donators and Buddhist monks assembled and as a result Huacheng Temple 化城寺 came to be built. With the gradual increase in his transformational activities he became known to his home (Silla), which led numerous Silla Buddhist monks to come across the border to the temple making a large congregation. Third, according to the record of his emphasis on rigorous sitting in meditation and physical labor Gim was presumably influenced by the Ksitigarbha Sutra and the 'Three Stages Teaching' 三階敎. Fourth, there appeared various miracles after his death and then he was enshrined as the incarnation of a saint. These gradually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Mt. Jiuhua as the practice site of Ksitigarbha. The reason for the personification of Gim as Ksitigarbha was that a variety of thaumaturgy after his death significantly coincided with the description in the sutra. After passing through the chaotic periods of the later Tang and the Five Dynasties, gradual additions of legends had made an everlasting impression on many people and by the Ming era Gim Jijang was finally recognized as the incarnation of Ksitigarbha by the imperial order while Mt. Jiuhua became the official sanctuary of Bodhisattva Ksitigarbha.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張總, "지장Ⅱ 조각과 회화" 동국대출판부 2009
2 張總著, "지장Ⅰ 경전과 문헌자료 연구" 동국대출판부 2009
3 嚴耀中, "江南佛敎史" 上海人民出版社 2000
4 拙稿, "東山法門과 그 禪思想硏究" 동국대학교 1996
5 박경준, "印度佛敎戒律에 있어서의 노동 문제-小乘律藏을 중심으로" 대각사상연구원 (2) : 1999
6 釋印光, "九華山志" 中華民國27 1938
7 "[隋]菩提登譯, [明]智旭述, 『占察善惡業報經疏』(卍續藏21)"
8 "[西晉]竺法護譯, 『等集眾德三昧經』(大正藏12)"
9 "[西晉]竺法護譯, 『文殊師利佛土嚴淨經』(大正藏11)"
10 "[西晉]竺法護譯, 『大寶積經』(大正藏11)"
1 張總, "지장Ⅱ 조각과 회화" 동국대출판부 2009
2 張總著, "지장Ⅰ 경전과 문헌자료 연구" 동국대출판부 2009
3 嚴耀中, "江南佛敎史" 上海人民出版社 2000
4 拙稿, "東山法門과 그 禪思想硏究" 동국대학교 1996
5 박경준, "印度佛敎戒律에 있어서의 노동 문제-小乘律藏을 중심으로" 대각사상연구원 (2) : 1999
6 釋印光, "九華山志" 中華民國27 1938
7 "[隋]菩提登譯, [明]智旭述, 『占察善惡業報經疏』(卍續藏21)"
8 "[西晉]竺法護譯, 『等集眾德三昧經』(大正藏12)"
9 "[西晉]竺法護譯, 『文殊師利佛土嚴淨經』(大正藏11)"
10 "[西晉]竺法護譯, 『大寶積經』(大正藏11)"
11 "[梁]僧祐撰, 『釋迦譜』(大正藏50)"
12 "[明]智旭著, 『靈峰蕅益大師宗論』(嘉興藏36)"
13 "[宋]道宣, 『宋高僧傳』(大正藏50)"
14 "[姚秦]竺佛念譯, 『菩薩處胎經』(大正藏12)"
15 "[唐]靜泰撰, 『眾經目錄』(大正藏55)"
16 "[唐]道宣撰, 『續高僧傳』(大正藏50)"
17 "[唐]遁倫集撰, 『瑜伽論記』 (大正藏42)"
18 "[唐]费冠卿撰,『九華山化城寺記』(『全唐文』 卷694)"
19 "[唐]费冠卿撰, 『九華山化城寺記』(『全唐文』 卷694)"
20 "[唐]般若譯, 『大乘本生心地觀經』(大正藏3)"
21 "[唐]百丈懷海集編, [清]儀潤證義, 『百丈叢林清規證義記』(卍續藏63)"
22 "[唐]玄奘譯, 『大乘大集地藏十輪經』(大正藏13)"
23 "[唐]玄奘譯, 『大乘大集地藏十輪經』(大正藏13)"
24 "[唐]慧琳補續, 『一切經音義』(大正藏54)"
『중국 지장신앙의 연원(淵源)과 김지장(金地藏)』에 대한 토론논평
「四十九齋의 의례기반과 地藏信仰의 특성」에 대한 토론논평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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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8-12-01 | 등재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
| 201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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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56 | 0.56 | 0.44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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