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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남잡지(松南雜識)』에 기록된 ‘영산(靈山)’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the ‘Youngsan(靈山)’ recorded in 『Songnamjabji(松南雜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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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61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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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일반적으로 영산은 판소리 단가(허두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알려져 있으나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은 다르다. 조재삼은 『송남잡지』에 ‘영산’에 관련된 내용 따로 두어 설명하고 있다. <신광수의 시>, <백호 임제의 시>, <김명원의 시> 세 종류 시(詩)를 예시가 그것이다.
      첫째, <신광수의 시>에 등장하는 ‘우조 영산’은 춘면곡에 앞서 부른 노래이다. 신광수가 <제원창선>(1750)을 쓴 시기는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1754)이 발표된 시기로 판소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조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볼 수는 없다.
      둘째, <백호 임제의 시>와 연결된 ‘영산 도두음’은 피리와 도드리장단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흔적으로 보아 기악곡인 영산회상과 연결된다. 영산은 불교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불교용어를 가진 영산회상은 민간 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
      셋째, <김명원의 시> ‘월하정인’을 영산 항목에 등장 시키며 ‘타령’이라 칭하였다. 당시 타령의 용어 쓰임새가 판소리와 정가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신재효의 <광대가>등 19세기 자료 대부분 ‘영산’의 용어는 판소리 단가와 같이 본격적인 판소리를 하기 앞서 목을 풀기 위한 용도로 기록되었다.
      『송남잡지』에서 기록된 초창기의 영산은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용어로 영산회상, 가사와 같은 도드리장단이 중심이 되는 독립된 음악 양식이었으며, 『송남잡지』가 쓰여진 1855년 당시 영산은 타령이라는 용어로 변모하면서 창부음악과 가객음악 모두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로 영산과 타령 두 용어가 혼재하였다. 그리고 판소리가 성행하면서 ‘타령’이라는 용어는 판소리를, ‘영산’은 판소리 단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의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종교 및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숭유억불정책은 불교적인 영산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중기에는 영산과 타령이 혼재하거나 영산 대신 타령이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불교가 재성장되면서 판소리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의미인 단가의 뜻으로 영산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재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세기 이르러 판소리가 등장하며 영산이 단가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인 변화양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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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영산은 판소리 단가(허두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알려져 있으나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은 다르다. 조재삼은 『송남잡지』에 ‘영산’에 관련된 내용 따로 두어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영산은 판소리 단가(허두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알려져 있으나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은 다르다. 조재삼은 『송남잡지』에 ‘영산’에 관련된 내용 따로 두어 설명하고 있다. <신광수의 시>, <백호 임제의 시>, <김명원의 시> 세 종류 시(詩)를 예시가 그것이다.
      첫째, <신광수의 시>에 등장하는 ‘우조 영산’은 춘면곡에 앞서 부른 노래이다. 신광수가 <제원창선>(1750)을 쓴 시기는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1754)이 발표된 시기로 판소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조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볼 수는 없다.
      둘째, <백호 임제의 시>와 연결된 ‘영산 도두음’은 피리와 도드리장단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흔적으로 보아 기악곡인 영산회상과 연결된다. 영산은 불교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불교용어를 가진 영산회상은 민간 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
      셋째, <김명원의 시> ‘월하정인’을 영산 항목에 등장 시키며 ‘타령’이라 칭하였다. 당시 타령의 용어 쓰임새가 판소리와 정가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신재효의 <광대가>등 19세기 자료 대부분 ‘영산’의 용어는 판소리 단가와 같이 본격적인 판소리를 하기 앞서 목을 풀기 위한 용도로 기록되었다.
      『송남잡지』에서 기록된 초창기의 영산은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용어로 영산회상, 가사와 같은 도드리장단이 중심이 되는 독립된 음악 양식이었으며, 『송남잡지』가 쓰여진 1855년 당시 영산은 타령이라는 용어로 변모하면서 창부음악과 가객음악 모두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로 영산과 타령 두 용어가 혼재하였다. 그리고 판소리가 성행하면서 ‘타령’이라는 용어는 판소리를, ‘영산’은 판소리 단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의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종교 및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숭유억불정책은 불교적인 영산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중기에는 영산과 타령이 혼재하거나 영산 대신 타령이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불교가 재성장되면서 판소리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의미인 단가의 뜻으로 영산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재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세기 이르러 판소리가 등장하며 영산이 단가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인 변화양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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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Youngsan is generally known as Pansori Danga(短歌). However, the contents of ‘Yeongsan’ in 『Songnamjabji』 are different. In 『Songnamjabji』, Cho Jaesam explained the contents related to 'Youngsan' using three kinds of poems: Shin Kwangsoo's poem, Baegho Imje’s poem, Kim Myeongwon’s poem.
      First, 'Ujo Youngsan' appears in Shin Kwangsoo's poem. Shin Kwangsoo wrote the <Jewonchangseon(題遠昌扇)〉(1750) when Yoo Jinhan’s 『Manhwajib(晩華集)』(1754) was published. It is difficult to see the ‘Ujo Youngsan’, which appears in Shin Kwangsoo's poem written in a time when Pansori was not widely known, as the Pansori Danga.
      Second, Jo Jaesam called the music in Baegho Imje’s poem ‘Youngsan Dodeueum’. In 'Youngsan Dodeueum', flute and ‘Dodeuli rhythm’ were used. This fact is connected with < Youngsanhoesang (靈山會相) >, an instrumental music. < Youngsanhoesang >, also a Buddhist term, continued to be used in the palace as well as among the people.
      Third, Cho Jaesam introduced Kim Myeongwon’s poem < Wolhajeongin(月下情人) > in ‘Yeongsan’ part and called it ‘Taryeong.’ At that time, the term ‘Taryeong’ referred to both Pansori and Jeongga(正歌).
      Later, in the 19th century, ‘Youngsan’ was recorded as a term for the Danga to loosen the neck before Pansori began in earnest. In other words, the early ‘Yeongsan’ recorded in 『Songnamjabji』 was a Buddhist term, referring to the music of the upper class Seonbi, such as < Youngsanhoesang >, Gasa(歌詞) and Sijo(時調). In 1855, when 『Songnamjabji』 was written, ‘Youngsan’ was used as a term used to refer to both Changbu-Music and Gagaek(歌客)-Music, mixed with the term ‘Taryeong’. And as Pansori became popular, the term ‘Taryeong’ came to be called ‘Pansori’ and ‘Youngsan’ was used to refer to Pansori Danga. Therefore, all the records of ‘Youngsan’ should not be interpreted as Pansori Danga.
      This situation is closely related to religious and social change. The policy of worshipping Confucianism and suppressing Buddhism rejected the term ‘Youngsan’ which had a Buddhist meaning. In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when Buddhism was suppressed, ‘Youngsan’ and ‘Taryeong’ were mixed. As Buddhism regrown in the late Joseon Dynasty, with the advent of Pansori, the term ‘Youngsan’ seems to be newly resettled in the sense of Danga. Pansori appeared in the 19th century and ‘Yeongsan’ was used as a Danga. And the reason should be regarded as this social and religious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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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san is generally known as Pansori Danga(短歌). However, the contents of ‘Yeongsan’ in 『Songnamjabji』 are different. In 『Songnamjabji』, Cho Jaesam explained the contents related to 'Youngsan' using three kinds of poems: Shin Kwangsoo...

      Youngsan is generally known as Pansori Danga(短歌). However, the contents of ‘Yeongsan’ in 『Songnamjabji』 are different. In 『Songnamjabji』, Cho Jaesam explained the contents related to 'Youngsan' using three kinds of poems: Shin Kwangsoo's poem, Baegho Imje’s poem, Kim Myeongwon’s poem.
      First, 'Ujo Youngsan' appears in Shin Kwangsoo's poem. Shin Kwangsoo wrote the <Jewonchangseon(題遠昌扇)〉(1750) when Yoo Jinhan’s 『Manhwajib(晩華集)』(1754) was published. It is difficult to see the ‘Ujo Youngsan’, which appears in Shin Kwangsoo's poem written in a time when Pansori was not widely known, as the Pansori Danga.
      Second, Jo Jaesam called the music in Baegho Imje’s poem ‘Youngsan Dodeueum’. In 'Youngsan Dodeueum', flute and ‘Dodeuli rhythm’ were used. This fact is connected with < Youngsanhoesang (靈山會相) >, an instrumental music. < Youngsanhoesang >, also a Buddhist term, continued to be used in the palace as well as among the people.
      Third, Cho Jaesam introduced Kim Myeongwon’s poem < Wolhajeongin(月下情人) > in ‘Yeongsan’ part and called it ‘Taryeong.’ At that time, the term ‘Taryeong’ referred to both Pansori and Jeongga(正歌).
      Later, in the 19th century, ‘Youngsan’ was recorded as a term for the Danga to loosen the neck before Pansori began in earnest. In other words, the early ‘Yeongsan’ recorded in 『Songnamjabji』 was a Buddhist term, referring to the music of the upper class Seonbi, such as < Youngsanhoesang >, Gasa(歌詞) and Sijo(時調). In 1855, when 『Songnamjabji』 was written, ‘Youngsan’ was used as a term used to refer to both Changbu-Music and Gagaek(歌客)-Music, mixed with the term ‘Taryeong’. And as Pansori became popular, the term ‘Taryeong’ came to be called ‘Pansori’ and ‘Youngsan’ was used to refer to Pansori Danga. Therefore, all the records of ‘Youngsan’ should not be interpreted as Pansori Danga.
      This situation is closely related to religious and social change. The policy of worshipping Confucianism and suppressing Buddhism rejected the term ‘Youngsan’ which had a Buddhist meaning. In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when Buddhism was suppressed, ‘Youngsan’ and ‘Taryeong’ were mixed. As Buddhism regrown in the late Joseon Dynasty, with the advent of Pansori, the term ‘Youngsan’ seems to be newly resettled in the sense of Danga. Pansori appeared in the 19th century and ‘Yeongsan’ was used as a Danga. And the reason should be regarded as this social and religious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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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권오경, "靈山(短歌)再考" 한중인문학회 (11) : 282-306, 2003

      2 이보형, "한국 민요 음악 장단의 대강박(대박). 박. 분박(소박)에 대한 전통기보론적 고찰" 국립국악원 4 : 1992

      3 손태도, "판소리의 기원으로의 ‘타령打令’" 판소리학회 8 : 1997

      4 배연형, "판소리사에서 타령 문제 재론" 판소리학회 (41) : 61-105, 2016

      5 백대웅, "판소리 무가 기원설의 재검토 I" 한국음악사학회 11 : 1993

      6 洪淳一, "판소리 短歌의 연구"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2

      7 하응백,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8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9 이혜구, "중앙대학교 30주년 기념 논문집" 1957

      10 양영옥, "조재삼의 『송남잡지』연구" 성균관대학교 2017

      1 권오경, "靈山(短歌)再考" 한중인문학회 (11) : 282-306, 2003

      2 이보형, "한국 민요 음악 장단의 대강박(대박). 박. 분박(소박)에 대한 전통기보론적 고찰" 국립국악원 4 : 1992

      3 손태도, "판소리의 기원으로의 ‘타령打令’" 판소리학회 8 : 1997

      4 배연형, "판소리사에서 타령 문제 재론" 판소리학회 (41) : 61-105, 2016

      5 백대웅, "판소리 무가 기원설의 재검토 I" 한국음악사학회 11 : 1993

      6 洪淳一, "판소리 短歌의 연구"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2

      7 하응백, "창악집성" 휴먼앤북스 2011

      8 송방송, "증보한국음악통사" 민속원 2007

      9 이혜구, "중앙대학교 30주년 기념 논문집" 1957

      10 양영옥, "조재삼의 『송남잡지』연구" 성균관대학교 2017

      11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조선시대 개인 일기 국역총서 강영일기岡營日記" 문화재청 2019

      12 이혜구, "영산과 단가" 국어국문학회 22 : 1960

      13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13

      14 구사회,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 연구" 보고사 2013

      15 이원수, "새터 강한영교수 고희기념논문집" 1983

      16 조동일, "백강서수생박사환갑기념논총 한국시가연구" 형설출판사 1981

      17 장석규, "목풀이노래의 이름에 대하여" 한국문화융합학회 13 : 1992

      18 徐仁華, "단가의 음악적 특징: 신재효의 광대가에 기하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附屬大學院 1987

      19 권순희, "단가의 사적 전개와 문화적 특성 연구" 고려대학교 1992

      20 이기형, "단가의 범주와 신재효 가사의 성격" 판소리학회 10 : 1999

      21 유진한, "국역 만화집" 학자원

      22 이유원, "가오고략" 민족문화추진회 2003

      23 "錦溪日記 六月.二十六, 二十七日"

      24 "英祖實錄 권42, 35b10~13"

      25 "肅宗實錄 卷64"

      26 "石北先生文集 卷之四, <時. 題遠昌扇>"

      27 김진영, "短歌集成" 월인출판사 2002

      28 "甲子進宴儀軌" 국립국악원 1992

      29 "琴譜" 국립국악원 1997

      30 "琴學入門" 국립국악원 1985

      31 "燕山君日記 1505년 <태백산사고본> 16책 60권 21B13~15"

      32 "樂學軌範笏記 處容呈才"

      33 "樂學軌範 卷5, 13a6~10, 학연화대처용무합설"

      34 趙在三, "松南雜識" 亞細亞文化社 1986

      35 "晩華集"

      36 "慵齋叢話 卷1"

      37 "呈才舞圖笏記"

      38 "中宗實錄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43B3~10"

      39 金恩希, "「春眠曲」연구:演行環境의 변화에 주목하여"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9 (29): 91-110, 2001

      40 "<承政院日記> 1258책 탈초본 70책 영조 42년 8월 18일"

      41 김흥규, "19세기 전기 판소리의 연행환경과 사회적 기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연구회 30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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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4-1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KCI등재후보
      2006-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3-2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Research of Performance Art and Culture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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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9 0.39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3 0.41 0.715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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