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에서 4․3항쟁으로 대표되는 ‘제주’와 5․18항쟁으로 대표되는 ‘광주’가 허심탄회하게 만난 것은 불과 수년 전의 일이다. 두 지역 모두 비극의 분단체제가 필연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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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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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에서 4․3항쟁으로 대표되는 ‘제주’와 5․18항쟁으로 대표되는 ‘광주’가 허심탄회하게 만난 것은 불과 수년 전의 일이다. 두 지역 모두 비극의 분단체제가 필연적으로 내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대사건을 겪었지만, 그 역사적 거리는 육지와 섬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바다만큼이나 멀었다. 사실 두 지역은 해방 이전까지는 모두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고, 두 사건은 불과 30여 년의 시간적 거리밖에 없었지만, 하나는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해, 다른 하나는 지역주의에 의해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색깔로 채색되었고, 억?옜隙#? 권위주의체제 아래에서 그 이름에 덧씌워진 색깔의 차이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별천지였다.
그러나 민주화는 이들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 이 두 지역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한국 민주주의로의 1단계 이행이 이루어진 1998년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양자를 묶어주는 단어는 국가폭력이었다. 1998년 제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인권국제학술회의는 두 사건을 짓누르고 있는 국가폭력이라는 개념을 발견하도록 자극을 주었고 두 사건의 차이를 넘어선 동질성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졌다. 분단체제 하에서 통일민족국가의 수립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투쟁은 역사적 연속성을 가진 시대적 과제였다.
이와 아울러 엄청난 희생의 아픔을 딛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사회운동은 물리적 거리투쟁을 포함한 정치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겪은 역사적 경험의 진실을 올바르게 간직하려는 기억 투쟁이라는 사실이 점점 뚜렷해졌다. 광주항쟁 20주년을 계기로 과거청산운동과 함께, 문화운동의 중요성이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한국의 문화운동은 광주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했고 또 어려울 때면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여기로부터 얻었다. 5월문화운동은 또한 4․3문화운동을 자극했고, 때때로 자기성찰의 거울이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문화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별로 진전되지 않았다. 이미 우리의 삶은 1980~90년대의 문화운동을 통해 많이 변화되어 왔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겪은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상상력은 미래를 담보하는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출발지점은 어디가 되어야 하는가.
전남대 5․18연구소는 한국 민주화에서 차지하는 문화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고, 어떤 문화적 재현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가지고, 제주 4․3연구소에 공동 연구를 제안했으며, 다행스럽게도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구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진은 광주와 제주를 오가면서 연구의 방향과 분석틀에 관하여 토론하였고, 2003년 5월에는 광주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연구를 점검하였다. 연구진은 11명으로 출발했는데, 도중에 몇 분이 더 합류하였다.
우리의 공동연구는 3년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1년차에는 기초 자료의 수집과 함께 문화운동의 전개과정을 윤곽지우고, 2년차에는 중요한 텍스트의 분석과 함께 연구범위를 확대하며, 3년차에는 비교연구와 이론화에 중점을 두기로 계획하였다. 이 책은 그 1년차 연구성과를 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