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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자료, 『묵암비망록』 비판 = Criticism of Muk-am Memorandum, the Made Historical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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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1978, a single historical material caused a stir in academia. It was the material called ‘Muk-am Memorandum’. This data was released as a diary record of Muk-am Lee Jong-il,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However, this data disappeared a year after it was newly discovered. And during the process, only one researcher monopolized and utilized the data.
    In the meantime, there have been several researchers who have argued for the manipulative of Muk-am Memorandum. However, no fundamental criticism was made. As a result, the Muk-am memorandum was used to create a popular memory about the independence activist Lee Jong-il.
    This study reviewed the excavation and loss process of the memorandum and examines the contradictions that emerged in the process.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as a continuous change in the disclosure of the data image and the original text. And the articles after June 1919 and weather records were copied from other materials.
    This study found that most of the contents of Muk-am memorandum were created. There should never be a case again in which a researcher monopolizes and utilizes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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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978, a single historical material caused a stir in academia. It was the material called ‘Muk-am Memorandum’. This data was released as a diary record of Muk-am Lee Jong-il,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However, this data disappeared...

    In 1978, a single historical material caused a stir in academia. It was the material called ‘Muk-am Memorandum’. This data was released as a diary record of Muk-am Lee Jong-il, one of the 33 national representatives. However, this data disappeared a year after it was newly discovered. And during the process, only one researcher monopolized and utilized the data.
    In the meantime, there have been several researchers who have argued for the manipulative of Muk-am Memorandum. However, no fundamental criticism was made. As a result, the Muk-am memorandum was used to create a popular memory about the independence activist Lee Jong-il.
    This study reviewed the excavation and loss process of the memorandum and examines the contradictions that emerged in the process.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as a continuous change in the disclosure of the data image and the original text. And the articles after June 1919 and weather records were copied from other materials.
    This study found that most of the contents of Muk-am memorandum were created. There should never be a case again in which a researcher monopolizes and utilizes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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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78년 하나의 자료가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묵암비망록』이라는 자료였다. 이 자료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독립선언서의 인쇄과정을 책임졌던 인물인 묵암 이종일 선생의 일기 기록이라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새롭게 발굴된 지 1년 만에 망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중 오직 한 연구자가 자료를 독점하고 활용하였다.
    그 동안 『묵암비망록』 가필설을 주장하는 여러 연구자들이 있었지만, 근본적 비판이 이루어지지 못 하면서 독립운동가 이종일에 대한 대중적 기억 만들기와 천도교 독립운동사 서술이 『묵암비망록』을 토대로 이루어져 왔다.
    본고는 『묵암비망록』의 발굴과 망실 과정을 되짚어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점들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자료 이미지와 원문 공개에는 지속적인 변형이 있었고, 자료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감춰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묵암비망록』에 실린 날씨 기록은 김윤식의 『속음청사』를 베낀 것이었고 1919년 6월 이후 기사들도 절반가량 『장효근일기』를 표절한 것이었다. 1912년 이종일과 한용운의 민족문화수호운동 관련 논의나 1913~1914년 독립의군부 활동과의 연계, 1919년 전지적 작가시점의 독립운동 조망 등 독립운동 관련 서술들도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본고는 이상의 실증적 검토의 결과, 현재 전하는 『묵암비망록』이 만들어진 자료임을 확인하였다. 다시는 한 연구자가 자료를 독점하고 다른 연구자와 공유하지 않는 행태를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며 상호간 학술적 토론을 통해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이 작동할 수 있도록 역사학계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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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하나의 자료가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묵암비망록』이라는 자료였다. 이 자료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독립선언서의 인쇄과정을 책임졌던 인물인 묵암 이종일 ...

    1978년 하나의 자료가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바로 『묵암비망록』이라는 자료였다. 이 자료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독립선언서의 인쇄과정을 책임졌던 인물인 묵암 이종일 선생의 일기 기록이라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새롭게 발굴된 지 1년 만에 망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과정중 오직 한 연구자가 자료를 독점하고 활용하였다.
    그 동안 『묵암비망록』 가필설을 주장하는 여러 연구자들이 있었지만, 근본적 비판이 이루어지지 못 하면서 독립운동가 이종일에 대한 대중적 기억 만들기와 천도교 독립운동사 서술이 『묵암비망록』을 토대로 이루어져 왔다.
    본고는 『묵암비망록』의 발굴과 망실 과정을 되짚어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점들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자료 이미지와 원문 공개에는 지속적인 변형이 있었고, 자료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오히려 감춰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묵암비망록』에 실린 날씨 기록은 김윤식의 『속음청사』를 베낀 것이었고 1919년 6월 이후 기사들도 절반가량 『장효근일기』를 표절한 것이었다. 1912년 이종일과 한용운의 민족문화수호운동 관련 논의나 1913~1914년 독립의군부 활동과의 연계, 1919년 전지적 작가시점의 독립운동 조망 등 독립운동 관련 서술들도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본고는 이상의 실증적 검토의 결과, 현재 전하는 『묵암비망록』이 만들어진 자료임을 확인하였다. 다시는 한 연구자가 자료를 독점하고 다른 연구자와 공유하지 않는 행태를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며 상호간 학술적 토론을 통해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이 작동할 수 있도록 역사학계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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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용운 판결문"

    2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특별판 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3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특별판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4 이현희, "한국근대사와 동학" 23 : 1996

    5 박화성, "타오르는 별 : 유관순의 일생" 세운문화사 1972

    6 "중앙일보"

    7 "조선일보"

    8 문일웅, "제국신문과 근대: 매체·담론·감성" 현실문화 2014

    9 이현희, "제2독립선언서의 역사적 의의: 「자주독립선언문」의 분석" 신인간사 1979

    10 김광식, "전인적인 독립운동가, 한용운" 역사공간 2015

    1 "한용운 판결문"

    2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특별판 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3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특별판 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4 이현희, "한국근대사와 동학" 23 : 1996

    5 박화성, "타오르는 별 : 유관순의 일생" 세운문화사 1972

    6 "중앙일보"

    7 "조선일보"

    8 문일웅, "제국신문과 근대: 매체·담론·감성" 현실문화 2014

    9 이현희, "제2독립선언서의 역사적 의의: 「자주독립선언문」의 분석" 신인간사 1979

    10 김광식, "전인적인 독립운동가, 한용운" 역사공간 2015

    11 "장효근일기"

    12 이현희, "장효근일기" 장서각 (25) : 1977

    13 "자주독립선언서"

    14 "일요신문"

    15 윤소영, "일본신문 한국독립운동기사집 (Ⅰ): 3·1운동편(1) 大阪朝日新聞"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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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이종일, "옥파이종일선생논설집 제3집" 옥파기념사업회 1984

    20 이종일, "옥파이종일선생논설집 제1집" 옥파기념사업회 1984

    21 이현희, "역사적으로 본 3·1운동" 신인간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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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박찬승, "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다산초당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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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5-20 학술지등록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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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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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2 1.442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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