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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금동관모의 제작과 소유방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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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666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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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연구의 목차>

      머리말
      1. 금동관모의 출토예(出土例)
      1) 한성(漢城)시기
      2) 웅진(熊津)시기
      2. 금동관모의 제작기법 변화
      1) 조립기법과 외형
      2) 투조(透彫) 및 조금(彫金)기법
      3) 문양
      3. 관모․관식에 반영된 백제의 지방지배
      1) 금동관모 소유단계
      2) 은제관식(銀製冠飾) 소유단계
      3) 관모에서 관식으로의 변화와 그 배경
      4. 금동관모를 통해 본 백제의 대외교류
      1) 대가야고분 출토 백제계 관모
      2) 일본열도 출토 백제계 관모
      맺음말


      <개요>

      1. 금동관모의 제작기법

      ① 백제 금동관모의 특징
      현재까지의 출토된 7점의 관모를 살펴보면 ‘고깔모양 외형과 꽃봉오리모양 장식’이 특징이다. 문양판의 수량 등 부품의 차이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수촌리1호분과 4호분, 부장리5호분 출토품은 전면에 새날개모양의 장식이, 뒷면에는 부채모양의 장식 부가되어 있다. 백제 금동관모에 이러한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은 새로이 알게 된 것이다.

      ② 백제 금동관모에서 관찰되는 문양구성의 차이
      7점의 관모는 각기 문양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대체로 측면에는 용, 정면과 후면에는 용과 봉황을 시문한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수촌리1호분 출토품에는 구름을 뚫고 비상하는 용무늬가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투조나 조금기법 역시 빼어나 최고의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③ 문양변천을 통한 상대편년
      관모 문양의 완성도(문양의 정밀함)와 문양구성의 차이(용+봉황, 봉황+어린문, 용, 인동문)를 기준으로 상대편년을 진행하면, 1단계(용원리9호, 수촌리1호) → 2단계(수촌리4호, 안동고분) → 3단계(부장리5호, 입점리1호)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2. 관모․관식에 반영된 백제의 지방지배

      ① 한성시기 후반(금동관모 소유단계)
      이 시기 관모의 지역적 분포양상은 천안(용원9호)+공주(수촌1호) → 공주(수촌4호)+고흥(안동고분) → 서산(부장5호)+익산(입점1호)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이를 금귀걸이, 금동신발, 중국도자의 출토예를 함께 검토하면 이러한 물품은 남한강 수계, 서해안 일대, 화성․오산일대, 금강수계, 천안․청원 일대, 고흥반도에 분포한다.
      금동관모 소유자를 담로제(檐魯制)와 관련한 지방관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본 연구자는 고분축조의 연속성, 지역색을 고려하면 현지 유력자의 무덤일 가능성 높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② 사비시기(은제관식 소유단계)의 양상
      사비시기의 능산리형석실에서는 은제관식과 은제 허리띠가 부장되는데 그 주인공을 지방관으로 보는 견해와 현지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복암리3호분에 여러 기의 능산리형석실이 축조되어 있는데 기존의 분구를 활용하고 있으며 매장주체부가 전용 옹관묘 → 석실내 옹관묘 → 능산리형석실 등 계기적으로 변화되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재지인일 가능성이 높고 지방관은 귀장의 원칙이 지켜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③ 변화의 배경
      금동관모+금귀걸이+금동신발 세트부장에서 은제관식+은제 허리띠 세트부장으로 변화되는 이면에는 지방세력에 대한 백제중앙의 지배력의 강화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중요거점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지방지배를 관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모를 통해 본 백제의 대외교류>
      ① 대가야(大加耶)와 왜(倭) 수장묘 출토 백제계 금동관모의 해석
      백제의 관모는 백제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대가야와 일본열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대가야의 경우 합천 옥전고분군의 5세기 전반대 무덤인 23호분에서 백제계 금귀걸이와 함께 출토되었고, 일본의 경우 에다후나야마고분을 비롯 쥬젠노모리고분[十善ノ森古墳] 등 여러 무덤에서 백제계 관모가 출토되었다.

      ②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인일 가능성을 고려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현재는 백제문물이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대가야나 왜로 전해지고 다시 재분배된 결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연구에서는 백제계 관모가 어느 시점에 어느 무덤에서 어떤 유물과 함께 출토되는지를 검토하여 백제의 대외교류양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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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의 목차> 머리말 1. 금동관모의 출토예(出土例) 1) 한성(漢城)시기 2) 웅진(熊津)시기 2. 금동관모의 제작기법 변화 1) 조립기법과 외형 2) 투조(透彫) 및 조금(彫金)기법 3) 문양 3...

      <연구의 목차>

      머리말
      1. 금동관모의 출토예(出土例)
      1) 한성(漢城)시기
      2) 웅진(熊津)시기
      2. 금동관모의 제작기법 변화
      1) 조립기법과 외형
      2) 투조(透彫) 및 조금(彫金)기법
      3) 문양
      3. 관모․관식에 반영된 백제의 지방지배
      1) 금동관모 소유단계
      2) 은제관식(銀製冠飾) 소유단계
      3) 관모에서 관식으로의 변화와 그 배경
      4. 금동관모를 통해 본 백제의 대외교류
      1) 대가야고분 출토 백제계 관모
      2) 일본열도 출토 백제계 관모
      맺음말


      <개요>

      1. 금동관모의 제작기법

      ① 백제 금동관모의 특징
      현재까지의 출토된 7점의 관모를 살펴보면 ‘고깔모양 외형과 꽃봉오리모양 장식’이 특징이다. 문양판의 수량 등 부품의 차이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수촌리1호분과 4호분, 부장리5호분 출토품은 전면에 새날개모양의 장식이, 뒷면에는 부채모양의 장식 부가되어 있다. 백제 금동관모에 이러한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은 새로이 알게 된 것이다.

      ② 백제 금동관모에서 관찰되는 문양구성의 차이
      7점의 관모는 각기 문양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대체로 측면에는 용, 정면과 후면에는 용과 봉황을 시문한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수촌리1호분 출토품에는 구름을 뚫고 비상하는 용무늬가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투조나 조금기법 역시 빼어나 최고의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③ 문양변천을 통한 상대편년
      관모 문양의 완성도(문양의 정밀함)와 문양구성의 차이(용+봉황, 봉황+어린문, 용, 인동문)를 기준으로 상대편년을 진행하면, 1단계(용원리9호, 수촌리1호) → 2단계(수촌리4호, 안동고분) → 3단계(부장리5호, 입점리1호)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2. 관모․관식에 반영된 백제의 지방지배

      ① 한성시기 후반(금동관모 소유단계)
      이 시기 관모의 지역적 분포양상은 천안(용원9호)+공주(수촌1호) → 공주(수촌4호)+고흥(안동고분) → 서산(부장5호)+익산(입점1호)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이를 금귀걸이, 금동신발, 중국도자의 출토예를 함께 검토하면 이러한 물품은 남한강 수계, 서해안 일대, 화성․오산일대, 금강수계, 천안․청원 일대, 고흥반도에 분포한다.
      금동관모 소유자를 담로제(檐魯制)와 관련한 지방관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본 연구자는 고분축조의 연속성, 지역색을 고려하면 현지 유력자의 무덤일 가능성 높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② 사비시기(은제관식 소유단계)의 양상
      사비시기의 능산리형석실에서는 은제관식과 은제 허리띠가 부장되는데 그 주인공을 지방관으로 보는 견해와 현지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복암리3호분에 여러 기의 능산리형석실이 축조되어 있는데 기존의 분구를 활용하고 있으며 매장주체부가 전용 옹관묘 → 석실내 옹관묘 → 능산리형석실 등 계기적으로 변화되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재지인일 가능성이 높고 지방관은 귀장의 원칙이 지켜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③ 변화의 배경
      금동관모+금귀걸이+금동신발 세트부장에서 은제관식+은제 허리띠 세트부장으로 변화되는 이면에는 지방세력에 대한 백제중앙의 지배력의 강화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중요거점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지방지배를 관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관모를 통해 본 백제의 대외교류>
      ① 대가야(大加耶)와 왜(倭) 수장묘 출토 백제계 금동관모의 해석
      백제의 관모는 백제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대가야와 일본열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대가야의 경우 합천 옥전고분군의 5세기 전반대 무덤인 23호분에서 백제계 금귀걸이와 함께 출토되었고, 일본의 경우 에다후나야마고분을 비롯 쥬젠노모리고분[十善ノ森古墳] 등 여러 무덤에서 백제계 관모가 출토되었다.

      ②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인일 가능성을 고려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현재는 백제문물이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대가야나 왜로 전해지고 다시 재분배된 결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연구에서는 백제계 관모가 어느 시점에 어느 무덤에서 어떤 유물과 함께 출토되는지를 검토하여 백제의 대외교류양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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