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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5·18민중항쟁에서 시민군의 조직과 활동 — 시민군의 무장이 가능한 이유 및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Civilian Army in the May 18 People’s Uprising: Centering on the Reason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Civilian Army’s Armed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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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31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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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find answers to the following two questions. First, How was it possible for citizens to organize an armed resistance during the May 18 People’s Uprising? Second, was the civilian army and resistance of some citizens with guns simple immediate action or has political and sociological meaning?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reason why it was possible for citizens to resist with arms during the May 18 People’s Uprising was a combination of the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the situation at that time, and anger at the scene. In 1980, Korean society had a strong desire for Western democracy and a violence-friendly culture. In addition, after the expectations for democratization that emerged after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Chung-hee on October 26 were thwarted, the citizens’ sense of relative deprivation was great. In this situation, a flow of resistance to the inhumane violence of the military was created, and armed resistance to the military’s use of deadly force became possible.
      Secon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armed struggle and the term civilian army should be identified as dynamic, and in that case, the civilian army was changing from a spontaneous resistance to the formation of armed organizations, from the periphery of the uprising to the leadership of the uprising, from self-imposed anger to purposeful resistance. The destination of this change cannot be assumed. However, as can be seen from that direction, the changes in the civilian army at that time were part of the process of creating a new form of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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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was conducted to find answers to the following two questions. First, How was it possible for citizens to organize an armed resistance during the May 18 People’s Uprising? Second, was the civilian army and resistance of some citizens with ...

      This study was conducted to find answers to the following two questions. First, How was it possible for citizens to organize an armed resistance during the May 18 People’s Uprising? Second, was the civilian army and resistance of some citizens with guns simple immediate action or has political and sociological meaning?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reason why it was possible for citizens to resist with arms during the May 18 People’s Uprising was a combination of the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the situation at that time, and anger at the scene. In 1980, Korean society had a strong desire for Western democracy and a violence-friendly culture. In addition, after the expectations for democratization that emerged after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Chung-hee on October 26 were thwarted, the citizens’ sense of relative deprivation was great. In this situation, a flow of resistance to the inhumane violence of the military was created, and armed resistance to the military’s use of deadly force became possible.
      Secon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armed struggle and the term civilian army should be identified as dynamic, and in that case, the civilian army was changing from a spontaneous resistance to the formation of armed organizations, from the periphery of the uprising to the leadership of the uprising, from self-imposed anger to purposeful resistance. The destination of this change cannot be assumed. However, as can be seen from that direction, the changes in the civilian army at that time were part of the process of creating a new form of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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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루어졌다.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둘째, 일부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즉자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것인가?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치사회적 맥락과 당시의 정세 및 현장에서의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1980년 당시 한국 사회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과 폭력 친화적인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또 10·26 이후 만들어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흐름이 만들어졌고, 군의 집단 발포에 총을 든 저항도 가능해진 것이다.
      둘째, 무장 시민들의 무장 투쟁 및 시민군이라는 호칭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동태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 시민군은 자연발생적인 저항에서 무장조직의 결성으로, 항쟁의 주변에서 항쟁지도부로, 즉자적인 분노에서 목적을 가진 저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목적지를 상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방향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시민군의 변화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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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루어졌다.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둘째, 일부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이라�...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루어졌다.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둘째, 일부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이라는 호칭이 단순한 즉자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갖는 것인가?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저항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치사회적 맥락과 당시의 정세 및 현장에서의 분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1980년 당시 한국 사회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과 폭력 친화적인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또 10·26 이후 만들어진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흐름이 만들어졌고, 군의 집단 발포에 총을 든 저항도 가능해진 것이다.
      둘째, 무장 시민들의 무장 투쟁 및 시민군이라는 호칭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동태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 시민군은 자연발생적인 저항에서 무장조직의 결성으로, 항쟁의 주변에서 항쟁지도부로, 즉자적인 분노에서 목적을 가진 저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목적지를 상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방향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시민군의 변화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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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노영기, "총을 든 시민들, 시민군" 역사문제연구소 (107) : 253-279, 2014

      2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3 조지 카치아피카스, "역사 속의 광주항쟁" 5.18연구소 2 (2): 227-247, 2002

      4 최정기, "민주화프레임과 학생운동네트웍, 그리고 5·18민중항쟁 — 1980년 전남대 학생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127) : 185-218, 2020

      5 최정기,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 5·18민중항쟁" 광주광역시·전라남도 2016

      6 박태호, "대중운동과 정치적 감수성의 몇 가지 체제" 사회과학연구원 11 (11): 104-140, 2014

      7 이진경, "대중과 흐름: 대중과 계급의 정치사회학" 그린비 2012

      8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풀빛 1990

      9 보안사령부, "광주사태 상황보고"

      10 이정로,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 전환" 노동문학사 (2) : 14-57, 1989

      1 노영기, "총을 든 시민들, 시민군" 역사문제연구소 (107) : 253-279, 2014

      2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3 조지 카치아피카스, "역사 속의 광주항쟁" 5.18연구소 2 (2): 227-247, 2002

      4 최정기, "민주화프레임과 학생운동네트웍, 그리고 5·18민중항쟁 — 1980년 전남대 학생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127) : 185-218, 2020

      5 최정기,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 5·18민중항쟁" 광주광역시·전라남도 2016

      6 박태호, "대중운동과 정치적 감수성의 몇 가지 체제" 사회과학연구원 11 (11): 104-140, 2014

      7 이진경, "대중과 흐름: 대중과 계급의 정치사회학" 그린비 2012

      8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풀빛 1990

      9 보안사령부, "광주사태 상황보고"

      10 이정로,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 전환" 노동문학사 (2) : 14-57, 1989

      11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민중항쟁일지"

      12 최정기, "광주민중항쟁과 5월운동 연구"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51-86, 1997

      13 김창진, "광주민중항쟁 연구" 사계절 173-221, 1990

      14 안종철, "광주민주화운동과 무장투쟁" 한국동북아학회 20 : 275-299, 2001

      15 장을병, "광주 5월 민중항쟁" 풀빛 149-183, 1990

      16 김태종, "5・18 자치공간과 ‘민주시민’의 탄생: 5・18시민궐기대회 기록을 중심으로" 5.18연구소 21 (21): 37-73, 2021

      17 최정기, "5・18 국가폭력 및 항쟁과 구술조사-증언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에 대한 비판적 성찰" 5.18연구소 18 (18): 79-107, 2018

      18 김영택, "5월 18일, 광주: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역사공간 2010

      19 전명길, "5‧18시민군의 활동에 대한 법철학적 연구: 공권력과 자경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민주평화연구원 5 (5): 25-50, 2022

      20 김양현, "5·18항쟁 증언자료집 Ⅳ"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5

      21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5·18항쟁 증언자료집 Ⅰ" 전남대학교 출판부 2002

      22 5·18기념재단, "5·18의 기억과 역사 6" 2013

      23 이진경, "5·18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한울 131-166, 2009

      24 박광주, "5·18민중항쟁사" 81-102, 2001

      25 최정기, "5·18민중항쟁사" 404-440, 2001

      26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장시위대의 형성및 활동 재구성" 2022

      27 최정기, "5·18국가폭력으로 인한 죽음과 민중항쟁 — 5·18 당시 장례준비 의식의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131) : 217-252, 2021

      28 전남대학교총학생회학술부, "5·18광주민중항쟁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389-405, 1988

      29 전국민주학생연합, "5·18광주민중항쟁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269-289, 1988

      30 시민군 대표, "5·18광주민중항쟁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133-134, 1988

      31 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1997

      32 박해현, "5·18 시민군 기동타격대 활동 재조명" 75-97, 2022

      33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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