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는 백제 654년(의자왕 14) 혜감국사慧鑑國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개원사開元寺라 불렸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에는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현재의 개심사開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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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는 백제 654년(의자왕 14) 혜감국사慧鑑國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개원사開元寺라 불렸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에는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현재의 개심사開心寺...
개심사는 백제 654년(의자왕 14) 혜감국사慧鑑國師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개원사開元寺라 불렸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인 1350년(충정왕 2)에는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현재의 개심사開心寺로 개칭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한국의 전통사찰』 대전·세종·충남·충북·제주편(조계종출판사, 2018), p, 20.
『조선왕조실록』에는 개심사와 관련된 기사가 일부 전하는데, 1475년(성종 6)에 당시 충청도 절도사를 지내고 있던 김서형에 의하여 산불이 일어났는데, 그 여파로 개심사의 가람이 소실된 것이다. 『朝鮮王朝實錄』성종 6년 4월 11일.
이후 1484년(성종 15)과 1740년(영조 16)에 각각 중수된 기록이 남아있으며, 한국전쟁 등의 전화 속에서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법등을 이어올 수 있었다. 개심사에는 1280년에 중수된 기록이 남아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484년(성종 15)에 중수된 대웅전, 1772년(영조 48)에 조성된 개심가 영산회 괘불탱 등 수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있어 사찰의 연혁을 확인해 주고 있다.
본 연구의 대상인 목조보살좌상은 개심사에서 약 5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현선원의 주불전인 대적전에 우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이는 상호표현 및 착의법, 영락장식 등의 세부적인 특징과 함께 13-15세기에 유행했던 당초문겹보관 등의 특징에서 고려후기 보살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특히 현재 국내에 알려진 1m이상의 고려 후기 대형 보살상은 약 10구 내외로 다른 시기의 상들에 비하여 그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불복장물에 대한 조사를 통해 조성기나 발원문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불상의 재료와 양식, 조성연대 등 종합적인 조사 및 관련 문헌기록 및 학술자료 등 분석을 통해 문화재 가치를 정립하고 지정함으로서 장기적으로 보존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당위성을 바탕으로 개심사 보현선원 목조보살좌상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조사연구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목조보살좌상의 정밀실측 및 기록화, 대상문화재의 연혁과 특징에 대한 인문학적 조사, 불상의 재료학적 특징 및 제작기법에 대한 과학적 조사연구를 실시하여 승격지정 가치 및 당위성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보존현황분석을 통한 장기적인 보존관리방안과 향후 추가적인 학술연구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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