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죽음은 오늘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곧 오늘의 문제요 내일의 해답인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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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학위논문 (석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 목회상담학 , 2008
2008
한국어
253.0259 판사항(21)
서울
iii, 81 p.; 30cm
참고문헌: p.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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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죽음은 오늘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곧 오늘의 문제요 내일의 해답인 것이...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죽음은 오늘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곧 오늘의 문제요 내일의 해답인 것이다. 이러한 전제로 본 본문은 목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가운데 위로의 사역을 담당해야 하는 전임자로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는 임종자와 유가족을 목회적으로 돕는데 목적이 있다.
지금까지 임종자과 유가족을 위한 교회의 사역은 삶에 대한 관심으로 죽음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기피해 왔다. 또한 임상·심리·전인적 이해에 대한 무관심으로 임종자나 유가족에게 보다 적절하고 효과적인 위로나 목회적 돌봄을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장례식을 집례하거나 심방을 하는 형식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형식적 심방에서 벗어나서 좀 더 차원 높은 죽음에 대한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때가 임종자나 유가족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위기일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첫째로 목회적 돌봄에 필요한 죽음에 대한 이해를 일반적 그리고 성서적인 입장에서 정리하였고, 임상에서의 심리적 단계를 퀴블러로스의 이론과 희망의 단계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목회적 돌봄방안으로 소망을 제시함으로서의 신체적 측면에서의 돌봄, 그리고 퀴블러로스의 이론에 따른 심리적 측면에서의 돌봄, 그리고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진행되어왔던 성경적 권면과 세례, 그리고 임종예배를 통한 영적인 측면에서의 돌봄을 살펴보았다. 또한 임종자 못지않게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을 위해서는 릴리 핀커스가 제시한 유가족의 심리상태에 따른 돌봄과 교회적 차원에서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임종자와 유가족을 위한 새로운 그리고 적극적인 목회돌봄 방안으로 생명의 유한성을 자각하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존엄에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죽음준비교육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임종자에게는 구원의 소망을 품게하고, 슬픔에 직면한 유가족에게는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예전적 도움으로서의 성만찬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이해는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임종자와 가족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부활의 신앙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죽음을 향하고 있는 순례자임을 기억하고,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소망을 품고, 오늘의 주어진 삶을 힘차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국문 초록 (Abstract)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죽음은 오늘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곧 오늘의 문제요 내일의 해답인 것이...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죽음은 오늘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곧 오늘의 문제요 내일의 해답인 것이다. 본 장에서는 이제까지 다루었던 내용들을 요약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제시하며 논고를 끝맺고자 한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위기 가운데 가장 큰 위기일 것이다.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수명을 좀 더 연장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죽음을 거부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가장 큰 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망각하며 살아가거나 마치 자기 자신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막상 죽음이 다가왔을 때 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이는 신자에게도 죽음은 예외일 수 없다.
임종자와 사별로 인해 위기를 당한 유가족을 위한 돌봄은 목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이다. 임종자 돌봄에서 종교적 가치가 강조된 것처럼 그 가치를 체현(體現)해야 하는 목회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임종자나 그의 가족들은 자주 영적인 상담자를 원하며, 목회자가 지원해 주면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임종자과 유가족을 위한 교회의 사역은 삶에 대한 관심으로 죽음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기피해 왔다. 또한 임상· 심리· 전인적 이해에 대한 무관심으로 임종자나 유가족에게 보다 적절하고 효과적인 위로나 목회적 돌봄을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장례식을 집례하거나 심방을 하는 형식에 머물렀다. 그리고 임종자나 유가족의 심리적 반응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제시된 복음과 기도나 찬송 등의 권면은 이들의 마음을 더 닫게 만들었다.
이제 교회는 성도 중 누군가가 상을 당하면 단지 장례를 집례하는 정도로, 또는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인사치례적인 형식적 심방에서 벗어나서 좀 더 차원 높은 죽음에 대한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때가 임종자나 유가족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위기일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Ⅱ장에서는 목회적 돌봄에 필요한 임종자와 유가족의 심리상태를 연구하였다. 구약성서에서는 죽음을 죄로 인한 결과로 당연히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죄의 대가로 받아드리고 있고, 신약성서에는 죽음을 구약성서에 같이 죄로 인한 비정상 상태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되었고, 이제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
Ⅲ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임상적 이해를 살펴보았다. 임종자의 심리상태로는 퀴블러로스의 임종자의 심리적 다섯 단계로 살펴보았다. 임종환자는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며, 이 단계 이외에 모든 단계에 걸쳐있는 환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공통의 심리상태인 희망의 단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임종자 못지않게 비슷한 심리적 과정을 겪는 유가족의 심리상태를 살펴보았다. 임종 전의 심리상태로는 충격, 분노, 예비적 슬픔, 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임종 후에는 충격과 부정, 애통, 회복의 단계를 거친다.
Ⅳ장에서는 임종자와 유가족을 위한 목회적 돌봄에 관해 살펴보았다. 죽음에 대해 일반적, 성서적, 그리고 임상적인 이해를 가진 목회자가 올바른 죽음에 태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임종자의 목회적 돌봄으로 소망을 제시함으로서의 신체적 측면에서의 돌봄, 그리고 퀴블러로스의 이론에 따른 심리적 측면에서의 돌봄, 그리고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진행되어왔던 성경적 권면과 세례, 그리고 임종예배를 통한 영적인 측면에서의 돌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유가족을 위해서는 릴리 핀커스(Lily Pincus)가 제시한 유가족의 심리상태에 따른 충격과 혼란의 단계에서의 돌봄, 애통의 단계에서의 돌봄, 회복의 단계에서의 돌봄 등 목회적 돌봄과 목회자가 인도하는 교회적 차원에서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Ⅴ장에서는 임종자와 유가족을 위한 새로운 그리고 적극적인 목회돌봄 방안으로 생명의 유한성을 자각하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존엄에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죽음준비교육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임종자에게는 구원의 소망을 품게하고, 슬픔에 직면한 유가족에게는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예전적 도움으로서의 성만찬을 제시하였다.
이상으로 필자는 죽음에 처한 임종자와 유가족을 목회상담적 상황에서의 돌봄에 대해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이해는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임종자와 가족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부활의 신앙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죽음을 향하고 있는 순례자임을 기억하고,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소망을 품고 오늘의 주어진 삶을 힘차게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