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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균질적인 세계의 발견-루쉰의 번역관 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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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두 개의 주제, 즉 ‘중국인의 성격과 아Q의 최후’, ‘억지번역(硬譯)과 침묵’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① 먼저 루쉰이 중국인의 성격의 번역을 실행하지 않았던 까닭을 추론할 것이다. 중국인의 성격의 특질을 살펴보고 ‘국민성’이라는 술어에 대한 루쉰의 반응, 그리고 ‘국민성’ 이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Q의 최후장면과 환등기 에피소드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에 중국인의 성격의 번역에 대한 바람을 기록해 둔 것만 보아도 국민성 비판에 대한 루쉰의 끈질긴 시선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루쉰이 중국인의 성격을 번역하지 않고 ‘연기’한 까닭은 무엇인가? 저열한 국민성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아Q는 오히려 ‘전사’로 읽혀지고, 환등기 사건은 루쉰의 자신에 대한 해부로 읽혀진다면, 루쉰은 국민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거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쉰은 오히려 국민성의 비균질적인 측면에 주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 루쉰이 투명성과 균질성을 전제로 하는 국민성 담론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번역관을 살펴보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루쉰의 번역관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술어는 ‘억지번역(硬譯)’이다. 루쉰과 량스추의 번역에 관한 태도는 유명한데, 사카이 나오키의 술어에 따르면 루쉰은 번역을 ‘말걸기(to address)’로 보고, 량스추 ‘전달하기(to communicate)’로 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쓰기든 말하기든 모든 언어행위는 기본적으로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루쉰의 번역에 대한 관념은 단순히 ‘이(異)언어간 번역’에서 가독성과 충실성 사이에서 번역가의 특정한 선택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바라보는 루쉰 자신의 시각과 보다 더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는 루쉰의 국학비판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그의 국학 비판은 균질적이고 투명한 고문(중국어)이라는 단일체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대한 회의/부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쉰의 ‘억지번역’은 비균질적인 중국어의 발견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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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두 개의 주제, 즉 ‘중국인의 성격과 아Q의 최후’, ‘억지번역(硬譯)과 침묵’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① 먼저 루쉰이 중국인의 성격의 번역을 ...

      본 연구는 두 개의 주제, 즉 ‘중국인의 성격과 아Q의 최후’, ‘억지번역(硬譯)과 침묵’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① 먼저 루쉰이 중국인의 성격의 번역을 실행하지 않았던 까닭을 추론할 것이다. 중국인의 성격의 특질을 살펴보고 ‘국민성’이라는 술어에 대한 루쉰의 반응, 그리고 ‘국민성’ 이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Q의 최후장면과 환등기 에피소드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에 중국인의 성격의 번역에 대한 바람을 기록해 둔 것만 보아도 국민성 비판에 대한 루쉰의 끈질긴 시선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루쉰이 중국인의 성격을 번역하지 않고 ‘연기’한 까닭은 무엇인가? 저열한 국민성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아Q는 오히려 ‘전사’로 읽혀지고, 환등기 사건은 루쉰의 자신에 대한 해부로 읽혀진다면, 루쉰은 국민성 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거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쉰은 오히려 국민성의 비균질적인 측면에 주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② 루쉰이 투명성과 균질성을 전제로 하는 국민성 담론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번역관을 살펴보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루쉰의 번역관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술어는 ‘억지번역(硬譯)’이다. 루쉰과 량스추의 번역에 관한 태도는 유명한데, 사카이 나오키의 술어에 따르면 루쉰은 번역을 ‘말걸기(to address)’로 보고, 량스추 ‘전달하기(to communicate)’로 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쓰기든 말하기든 모든 언어행위는 기본적으로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루쉰의 번역에 대한 관념은 단순히 ‘이(異)언어간 번역’에서 가독성과 충실성 사이에서 번역가의 특정한 선택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바라보는 루쉰 자신의 시각과 보다 더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는 루쉰의 국학비판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그의 국학 비판은 균질적이고 투명한 고문(중국어)이라는 단일체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대한 회의/부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쉰의 ‘억지번역’은 비균질적인 중국어의 발견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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