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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의 여가(schole) 개념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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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주 텍스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과 <정치학> 7-8권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은 관조적 활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정치학> 7-8권은 최선의 정체에서 교육(paideia)의 역할과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착하고 있다. 특히 여가와 관련해서 음악 교육의 특성을 논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두 저작을 중심으로 해서 ‘여가’을 독립적인 개념으로 주제화 할 것이고, 이런 연구는 플라톤의 <법률>에 제기되는 ‘여가’와의 비교를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자는 플라톤은 단편적으로 ‘여가’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것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여가’와 관련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여가’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주제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에서 여가를 행복과 연관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실천적 탁월성(훌륭함)보다 이론적 탁월함이 우위에 있고, 이론적 탁월함 중에서 철학적 지혜(sophia)에 따르는 활동이 실천적 지혜에 따르는 활동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최대한 발현하는 것으로서의 행복(eudaimonia)은 철학적 지혜에 따른 활동이다. 여기서 행복이 단지 획득되어야 할 일정한 정적인 상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행복은 활동이며, 이런 활동은 인간 영혼의 고유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다. 바로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 활동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이런 활동은 진리에 일치하는 것이고, 신적인 것이고, 가장 연속적인 것이고, 가장 즐거운 것이며 자족적인 것이고,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고, ‘여가’와 관련한다고 앞선 논의를 기초로 해서 그는 제시한다(1077a11 -1077b15). 이런 언급으로부터 관조적 활동은 행위 자체를 열망하는 것이고, 행복은 이런 성격을 갖는 여가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히 도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하듯이 여가를 얻기 위해 여가 없는 노동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쟁이나 여가 없는 정치적 행위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에서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상의 언급들로부터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가를 관조적 활동, 철학적 지혜, 행복을 주는 활동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7-8권의 핵심주제는 교육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탁월함과 훌륭함을 위한 교과목으로서 가장 적절한 것을 음악이라고 간주한다. 음악은 여가를 위한 것이며, 인간이 여가를 최대한 선용하는 데, 즉 탁월함의 교육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가 선용을 위한 교과과목으로서의 음악은 자유민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민다운 사람에게는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는 삶은 적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여가를 필요로 하며, 여가 없는 노예에게는 철학이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 본성은 우리에게 훌륭하게 노동하도록 명령할 뿐만 아니라 “여가를 제대로 선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가는 노동보다 더 바람직하며 노동의 목표가 된다. 더 나아가 여가는 노동과 대립되는 단순한 놀이와도 구별된다. 놀이는 노동의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단순한 휴식을 줄 뿐이다. 반면에 “여가는 즐거움과 행복과 복된 삶을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1338a1). 노동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은 필요하거나 유용한 것이거나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인 반면에, 여가는 여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했던 여가에 대한 언급을 자유민을 위한 교과목, 즉 음악 교육의 필요성과 관련한 논의에 도입한다. 여가는 그 자체를 위한 활동이고, 이런 성격의 활동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가장 즐거운 활동이며 행복과 복된 삶을 보장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1338a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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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주 텍스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과 <정치학> 7-8권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은 관조적 활동에 대한 아리스토텔...

    (1)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주 텍스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과 <정치학> 7-8권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은 관조적 활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에 <정치학> 7-8권은 최선의 정체에서 교육(paideia)의 역할과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착하고 있다. 특히 여가와 관련해서 음악 교육의 특성을 논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두 저작을 중심으로 해서 ‘여가’을 독립적인 개념으로 주제화 할 것이고, 이런 연구는 플라톤의 <법률>에 제기되는 ‘여가’와의 비교를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본 연구자는 플라톤은 단편적으로 ‘여가’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것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여가’와 관련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여가’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주제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9장에서 여가를 행복과 연관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실천적 탁월성(훌륭함)보다 이론적 탁월함이 우위에 있고, 이론적 탁월함 중에서 철학적 지혜(sophia)에 따르는 활동이 실천적 지혜에 따르는 활동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최대한 발현하는 것으로서의 행복(eudaimonia)은 철학적 지혜에 따른 활동이다. 여기서 행복이 단지 획득되어야 할 일정한 정적인 상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행복은 활동이며, 이런 활동은 인간 영혼의 고유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다. 바로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 활동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이런 활동은 진리에 일치하는 것이고, 신적인 것이고, 가장 연속적인 것이고, 가장 즐거운 것이며 자족적인 것이고,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고, ‘여가’와 관련한다고 앞선 논의를 기초로 해서 그는 제시한다(1077a11 -1077b15). 이런 언급으로부터 관조적 활동은 행위 자체를 열망하는 것이고, 행복은 이런 성격을 갖는 여가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히 도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하듯이 여가를 얻기 위해 여가 없는 노동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쟁이나 여가 없는 정치적 행위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에서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상의 언급들로부터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가를 관조적 활동, 철학적 지혜, 행복을 주는 활동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7-8권의 핵심주제는 교육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탁월함과 훌륭함을 위한 교과목으로서 가장 적절한 것을 음악이라고 간주한다. 음악은 여가를 위한 것이며, 인간이 여가를 최대한 선용하는 데, 즉 탁월함의 교육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가 선용을 위한 교과과목으로서의 음악은 자유민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민다운 사람에게는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는 삶은 적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여가를 필요로 하며, 여가 없는 노예에게는 철학이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 본성은 우리에게 훌륭하게 노동하도록 명령할 뿐만 아니라 “여가를 제대로 선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가는 노동보다 더 바람직하며 노동의 목표가 된다. 더 나아가 여가는 노동과 대립되는 단순한 놀이와도 구별된다. 놀이는 노동의 긴장감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단순한 휴식을 줄 뿐이다. 반면에 “여가는 즐거움과 행복과 복된 삶을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1338a1). 노동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은 필요하거나 유용한 것이거나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인 반면에, 여가는 여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했던 여가에 대한 언급을 자유민을 위한 교과목, 즉 음악 교육의 필요성과 관련한 논의에 도입한다. 여가는 그 자체를 위한 활동이고, 이런 성격의 활동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가장 즐거운 활동이며 행복과 복된 삶을 보장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1338a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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