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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朝明간 외교적 함수, ‘禮義之國’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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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74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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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15~16세기 조·명간 외교관계에서 형성된 조선의 ‘국가 이미지’를 추적하여 조선과 명 사이 형성되어 간 외교질서 프레임을 고찰하였다. 조선의 어떠한 모습이 명에 ‘禮義之國’으로 인정되게 하였는지 파악하고, 조선의 事大와 명의 禮遇가 맞물려 격상하면서 만들어진 예의지국 담론이 양국간 외교적 함수로 이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 朝明간 전개된 교류와 상호작용의 실체를 검토하는 이러한 작업은 조선의 대명외교의 성격을 사상이나 관념 중심으로 접근했던 기존의 연구방향을 보완하고, 명이 조공국 조선에 보여준 입장 역시 파악하여 朝明 양자간 관계를 살핌으로써 조명관계의 특성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15세기를 지나며 조선이 事大 禮를 다한 모습들이 축적되면서 明은 조선을 ‘禮義之國’이라 인식하고 지칭하였으며, 그것은 단지 외교적 레토릭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양국 간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예의지국’의 면모를 확보함으로써 명에게 갖가지 우대와 편의를 제공받는 등 여타 조공국들과 차별된 대우를 누렸다. 명의 그러한 차등 조치는 다른 조공국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였으나, 조선에게는 ‘예의지국’을 자임하고 내면화하기에 충분한 자부심이었다. 事大 禮를 다한 조선의 모습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고 실질적으로 명에 우대받는 모습이 축적되면서, 16세기에 이르러 ‘예의지국’담론은 조선의 대명외교정책을 운용하는 데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하나의 명제가 되었다. 이제 대명 외교정책은 과연 명에 禮를 잃는 행동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의지국 담론이 굳건해지는 16세기에 이르면 조선에게 ‘예의지국’의 위상은 굴레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외교적 난제를 보다 용이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략으로 활용되는 이중적 성격을 담지하고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大國인 명 역시도 예의지국 담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명은 조선의 외교적 요구에 대해 신뢰하였고, 다소 난처한 요청에도 조선이 예의지국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 그에 걸맞게 조율하였다. 명이 조선의 요구에 부합하는 외교 정책을 보여주면서, 조선의 명에 대한 긴밀함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즉 예의지국 담론은 朝明 상호간 외교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일종의 외교관계의 함수였다는 것이다. 예의지국 명제의 정착은 16세기 조선의 事大認識의 변화, 즉 사상적 변화와 결합하며 조명간의 특수한 외교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朝貢冊封體制’의 성격을 ‘禮義之交’로 쉽게 치환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明 중심의 동아시아질서 내에 실상 각 주체들이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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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15~16세기 조·명간 외교관계에서 형성된 조선의 ‘국가 이미지’를 추적하여 조선과 명 사이 형성되어 간 외교질서 프레임을 고찰하였다. 조선의 어떠한 모습이 명에 ‘禮義之國...

      본 연구는 15~16세기 조·명간 외교관계에서 형성된 조선의 ‘국가 이미지’를 추적하여 조선과 명 사이 형성되어 간 외교질서 프레임을 고찰하였다. 조선의 어떠한 모습이 명에 ‘禮義之國’으로 인정되게 하였는지 파악하고, 조선의 事大와 명의 禮遇가 맞물려 격상하면서 만들어진 예의지국 담론이 양국간 외교적 함수로 이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 朝明간 전개된 교류와 상호작용의 실체를 검토하는 이러한 작업은 조선의 대명외교의 성격을 사상이나 관념 중심으로 접근했던 기존의 연구방향을 보완하고, 명이 조공국 조선에 보여준 입장 역시 파악하여 朝明 양자간 관계를 살핌으로써 조명관계의 특성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15세기를 지나며 조선이 事大 禮를 다한 모습들이 축적되면서 明은 조선을 ‘禮義之國’이라 인식하고 지칭하였으며, 그것은 단지 외교적 레토릭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양국 간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예의지국’의 면모를 확보함으로써 명에게 갖가지 우대와 편의를 제공받는 등 여타 조공국들과 차별된 대우를 누렸다. 명의 그러한 차등 조치는 다른 조공국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하였으나, 조선에게는 ‘예의지국’을 자임하고 내면화하기에 충분한 자부심이었다. 事大 禮를 다한 조선의 모습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고 실질적으로 명에 우대받는 모습이 축적되면서, 16세기에 이르러 ‘예의지국’담론은 조선의 대명외교정책을 운용하는 데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하나의 명제가 되었다. 이제 대명 외교정책은 과연 명에 禮를 잃는 행동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의지국 담론이 굳건해지는 16세기에 이르면 조선에게 ‘예의지국’의 위상은 굴레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외교적 난제를 보다 용이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략으로 활용되는 이중적 성격을 담지하고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大國인 명 역시도 예의지국 담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명은 조선의 외교적 요구에 대해 신뢰하였고, 다소 난처한 요청에도 조선이 예의지국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 그에 걸맞게 조율하였다. 명이 조선의 요구에 부합하는 외교 정책을 보여주면서, 조선의 명에 대한 긴밀함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즉 예의지국 담론은 朝明 상호간 외교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일종의 외교관계의 함수였다는 것이다. 예의지국 명제의 정착은 16세기 조선의 事大認識의 변화, 즉 사상적 변화와 결합하며 조명간의 특수한 외교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朝貢冊封體制’의 성격을 ‘禮義之交’로 쉽게 치환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明 중심의 동아시아질서 내에 실상 각 주체들이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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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is aimed to analyze the discourse of "yeeuizigook’(禮義之國)" arising out of the exchange of Joseon with Ming Dynasty in 15th and 16th centuries and its impact on the diplomacy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order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ationship of Joseon with Ming Dynasty in the early periods of Joseon Dynasty.
      Joseon was privileged by Ming in many respected compared to other tributary states. This is because Joseon obtained the national status of 'Joseon = yeeuizigook’(禮義之國)' as the accumulated consequences of toadyism toward Ming in 15th century. As Joseon was privileged 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Ming with the national status of 'Joseon=yeeuizigook’(禮義之國)', the discourse of yeeuizigook’(禮義之國) became the national image of Joseon toward Ming and the catch phrase in the practical diplomacy of Joseon to Ming. In addition, it became a dogma for Ming which had to be taken into account in the diplomacy with Joseon so a 'special diplomatic relationship' was established between Joseon and Ming.
      There is a tendency to understand that the historical concept of tributary state is one way relationship in which China had strong influence on the tributary states. However, in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Mi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period,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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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is aimed to analyze the discourse of "yeeuizigook’(禮義之國)" arising out of the exchange of Joseon with Ming Dynasty in 15th and 16th centuries and its impact on the diplomacy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order to examine the charact...

      This study is aimed to analyze the discourse of "yeeuizigook’(禮義之國)" arising out of the exchange of Joseon with Ming Dynasty in 15th and 16th centuries and its impact on the diplomacy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order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ationship of Joseon with Ming Dynasty in the early periods of Joseon Dynasty.
      Joseon was privileged by Ming in many respected compared to other tributary states. This is because Joseon obtained the national status of 'Joseon = yeeuizigook’(禮義之國)' as the accumulated consequences of toadyism toward Ming in 15th century. As Joseon was privileged 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Ming with the national status of 'Joseon=yeeuizigook’(禮義之國)', the discourse of yeeuizigook’(禮義之國) became the national image of Joseon toward Ming and the catch phrase in the practical diplomacy of Joseon to Ming. In addition, it became a dogma for Ming which had to be taken into account in the diplomacy with Joseon so a 'special diplomatic relationship' was established between Joseon and Ming.
      There is a tendency to understand that the historical concept of tributary state is one way relationship in which China had strong influence on the tributary states. However, in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Mi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period,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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