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추구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황지우의 ‘시적인 것’에 대한 명제는 당시의 관습적인 시 장르의 해체와 갱신으로서의 시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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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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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추구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황지우의 ‘시적인 것’에 대한 명제는 당시의 관습적인 시 장르의 해체와 갱신으로서의 시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바, 본 연구에서는 이 ‘시적인 것’의 의미 맥락을 전제로 하여 ‘해체시’ 텍스트의 의미생성과정을 시적 언어로서의 상호텍스트성 개념을 빌어 고찰하고자 하였다.
▶‘시적인 것’의 상호 텍스트성과 의미화: “나는 ‘시’를 추구하지 않고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황지우의 명제는 초기의 ‘간주관성’에서 후기의 ‘객관성’으로 그 내용이 바뀐다. 이때의 ‘간주관성’은 ‘시적인 것’과 관련하여 ‘의사소통’을 기본전제로 한 대전제로 보여진다. 이 ‘간주관성’을 의미생성 과정과 관련하여 주목할 대목은 두 곳인데, 첫째는 ‘시적인 것=간주관성’이라고 할 때 이것은 외면의 내부, 외부의 내면이 겹쳐지는 곳, 즉 의미 생성의 복수(複數)적 공간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시 텍스트의 의미 생성은 결코 단일하거나 일의적일 수 없는 복수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하고자 하는 대목은, 시적인 것이 간주관성의 공간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간주관성’의 공간은 고정되고 불변한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며, 그 경계가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한편, ‘간주관성’으로서의 ‘시적인 것’이 3년 후 ‘객관성’으로 개념 범주의 변경을 꾀하게 되는데, 이는 시의 현실 지시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시적 언어의 복수성(複數性)과 불확정성-‘보기’, ‘보여주기’: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간주관성’을 ‘시적인 것’으로 보았던 황지우는 “시는 ‘시적인 것’의 ‘보기’에 의해 얻어진다. ‘시적인 것’을 보면서 보여주는 것이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밝힌다. 이때 ‘보면서 보여준다’는 원리는 글쓰기의 주객관적 원리와 상황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보면서 보여주는 것’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성 차원에서 이 명제를 받아들이면, ‘시’텍스트는 그야말로 ‘창조’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수많은 관계가 연결되는 연합적 공간으로 보여진다. 이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구성하는 텍스트들의 순열(교환, 치환)이자, 주어진 텍스트 공간 안에서의 상호텍스트성으로 해석 가능할 것이다. 이때의 상호텍스트성은 수평적 차원과 수직적 차원에서 역동적으로 복수적인 의미를 산출해냄과 동시에 분명하고 안정된 의미를 제시하지 않기에 불확정성을 통해 단일화된 의미에 저항하는 ‘텍스트 실천’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수평적 차원에서 텍스트 내의 단어는 쓰기 주체와 수신자 둘 다에게 속하며, 수직적 차원에서의 텍스트 내의 단어는 이전의 또 다른 텍스트들을 향해 있다. 따라서 저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은 언제나 현재의 시적 언어들과 과거의 시적 텍스트 사이의 상호텍스트적인 관계에 의해 연결된다. 이때, 수평축(글쓰기 주체-수신자)과 수직축(텍스트-맥락)은 동시에 일어나면서 시적 언어는 최소한 이중적(대화적, 양가적)으로 읽혀진다는 것이 시적 언어로서의 상호텍스트성이 갖는 의미의 복수성이자, 고정되고 위계적인 의미 체계에 대항하는 의미의 역동성(불확정성)인 것이다.
▶시적 담론의 정치성- 현실지시의 ‘간 주관성’: 황지우의 ‘시적인 것’에 대한 선언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끔찍한 모더니티”에 대한 폭로와 비판, 그를 향한 저항과 부정을 위한 언어 장치의 모색이었다. 그래서 “미적인 것은 정치적이며, 정치적인 것은 미적이다”라는 황지우의 주장은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으로서의 ‘시적인 것’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시와 현실은 어떻게 동시에 의미지워질 수 있는가? 황지우가 기존의 ‘시’를 거부한 것은 이전 시 장르의 관습적 규범에서 벗어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계망’으로서의 시적 언어를 추구한 것이었으며, 그 ‘관계망’ 안에서 사회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의미지워지는, 즉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과의 동시적 공간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