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지역의 ‘빨치산 탄생’에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여순사건 그리고 14연대 병사들. 이들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남한지역의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4연대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0641460
주철희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2015
Korean
빨치산 ; 지리산 ; 여순사건 ; 14연대 ; 이영회 ; 남로당 ; Partisan ; Jiri Mountain ; Yeosun Revolt ; 14th Army Regiment ; Lee Young-Hway ; South Korea Labor Party(남로당)
KCI등재
학술저널
67-97(31쪽)
3
0
상세조회0
다운로드남한지역의 ‘빨치산 탄생’에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여순사건 그리고 14연대 병사들. 이들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남한지역의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4연대 ...
남한지역의 ‘빨치산 탄생’에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여순사건 그리고 14연대 병사들. 이들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남한지역의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14연대 출신 빨치산에 관해 알려진 인물이 없다. 여순사건이 발발하면서 ‘총지휘자’ 또는 ‘수괴’ 등으로 국군의 주요 검거 대상자였던 김지회와 홍순석. 그리고 1967년 이후 지창수 상사가 그나마 알려진 인물이다. 14연대는 대략 2,000~2,500명 정도 규모의 부대였다. 이 중 ‘봉기’에 합세하여 입산한 병사는 대략 1,000명 안팎으로 보인다. 이들 빨치산은 1948년에서부터 1955년까지 지리산․백운산․덕유산 등 전남․전북․경남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 글에서는 57사단 또는 불꽃사단 사령관으로 널리 알려진 이영회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영회를 주목한 것은 14연대 출신 빨치산 중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남한지역 빨치산의 탄생과 종막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활동은 지리산 빨치산과 남로당과의 관계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회의 빨치산 활동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독자적․자생적 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이영회가 독선적이며 당의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으로 투쟁을 고집했던 것을 명확하게 해명할 수 없다. 다만, 이영회가 남로당에 적극적인 자세나 협력을 취하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14연대 출신 모든 빨치산의 특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영회는 기동투쟁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세력이 약화할수록 보급투쟁 등 소규모 투쟁으로 생존 방법을 찾는 것이 게릴라전의 특성이지만 이영회는 기동투쟁을 고집했다. 1953년 11월 27일 이영회의 사살로 인하여 지리산 빨치산은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순사건으로 시작된 남한지역 빨치산의 ‘탄생’은 이들이 사살되면서 ‘소멸’하였다. 그중에 이영회는 지리산에서 최후까지 격렬하게 투쟁한 빨치산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데 이 글의 의의가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Yeosun Revolt and the 14th Army Regiment soldiers had a direct association with 'the Partisan's birth' of the South Region. While they were climbing Jiri Mountain (지리산), the partisan activities of the South Region began in earnest. However, ...
The Yeosun Revolt and the 14th Army Regiment soldiers had a direct association with 'the Partisan's birth' of the South Region. While they were climbing Jiri Mountain (지리산), the partisan activities of the South Region began in earnest. However, there are no known partisan figures from 14th Army Regiment. While the Yeosun Revolt broke out, Kim Ji-Hway (김지회) & Hong Sun-Suk (홍순석) were arrested as “ring leaders” of the Army Forces. They and Ji Chang-Su (지창수),master sergeant since 1967, are well known. The 14th Army Regiment‘s magnitude was approximately 2000-2500 people. The soldiers climbing a mountain to join the 'uprising' were roughly 1,000 people. These partisans were active mainly in the whole of Jiri, Baegun (백운) and Deogu (덕유) Mountains of Jeonnam · Jeonbuk · Gyeongnam area from 1948 to 1955. In this article, Lee Young-Hway (이영회), the 57th Army Division commander, is examined in more detail. The reason why Lee Young-Hway deserved to be in the spotlight is that he was an outstanding partisan of the 14th Army Regiment. There is much written about him. In addition, there is written testimony by his family and hometown people. The salient features of Lee Young-Hway were independence and an autonomous struggle for partisans. He was condemned because of being self-righteous with low party loyalty. We cannot clearly explain why he struggled on his own. However, it seems to be true that he did not take a positive stance and cooperate with the South Korea Labor Party. Another characteristic is that Lee Young-Hway started deploying the maneuver struggle. We cannot be conclude that this was followed by all partisan's of the 14th Army Regiment. As the forces of weakened, the struggle to survive was more like a supply struggle characteristic of guerrilla warfare. However, Lee Young-Hway insisted on starting the maneuver struggle. On November 27, 1953, due to the killing of Lee Young-Hway, Jiri Mountain's partisans entered a phase of extinction. The Partisan's 'Birth' in South Korea from the Yeosun Revolt disappeared as they were murdered. According to partisans Lee Young-Hway held a wildly partisan struggle from Jiri Mountain to the end is the significance of this article.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주철희, "해룡면지" 순천시해룡면지편찬위원회 2012
2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1:해방과건군" 1967
3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사" 1997
4 김종준, "한국전쟁기 서부경남지역 빨치산의 조직과 활동" (2) : 2007
5 김광운, "한국전쟁기 북한의 게릴라전 조직과 활동"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48) : 93-128, 2003
6 김영택, "한국전쟁기 남한 내 적색 빨치산의 재건과 소멸" 한국근현대사학회 27 : 124-155, 2003
7 이선아, "한국전쟁 전후 빨찌산의 형성과 활동" 역사학연구소 (13) : 155-188, 2003
8 김영, "총과 백합꽃" 좋은책 1989
9 산청경찰서, "지리산의 포성 : 산청지역경찰전사"
10 정충제, "지리산은 통곡한다" 대제학 1990
1 주철희, "해룡면지" 순천시해룡면지편찬위원회 2012
2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1:해방과건군" 1967
3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사" 1997
4 김종준, "한국전쟁기 서부경남지역 빨치산의 조직과 활동" (2) : 2007
5 김광운, "한국전쟁기 북한의 게릴라전 조직과 활동"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48) : 93-128, 2003
6 김영택, "한국전쟁기 남한 내 적색 빨치산의 재건과 소멸" 한국근현대사학회 27 : 124-155, 2003
7 이선아, "한국전쟁 전후 빨찌산의 형성과 활동" 역사학연구소 (13) : 155-188, 2003
8 김영, "총과 백합꽃" 좋은책 1989
9 산청경찰서, "지리산의 포성 : 산청지역경찰전사"
10 정충제, "지리산은 통곡한다" 대제학 1990
11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연감" 1950
12 정관호, "전남 유격투쟁사" 선인 2008
13 "자유신문"
14 안재성, "이현상 평전" 실천문학사 2007
15 이인모, "이인모" 월간 말 1992
16 "이○○(1951년생, 순천시 해룡면 출신, 이영회의 조카) 대담자 주철희, 순천시 해룡면 도롱마을 자택에서 녹취함"
17 주철희, "여순사건 주도인물에 관한 연구" 전북사학회 (43) : 255-298, 2013
18 이선아,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 활동과 그 영향" 역사학연구소 (20) : 175-205, 2011
19 이태, "여순병란" 청산 1994
20 노영기, "여순 사건과 구례: 여순 사건 직후 군대의 주둔과 진압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사학회 68 : 37-67, 2005
21 백선엽, "실록 지리산" 고려원 1992
22 "송기섭(1922년생, 순천시 해룡면 출신, 도롱교회 장로) 대담자 주철희, 순천시 해룡면 도롱마을 자택에서 녹취함. 2011년 1월 21일"
23 이용하, "섬진강 별곡" 한국참전단체총연합회 2000
24 경찰종합학교, "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 차일혁 총경 일대기" 2008
25 정지아, "빨치산의 딸" 실천문학사 1990
26 유관종, "빨치산을 낳게 한 여수, 14연대반란사건" (13) : 1989
27 신기남, "빨치산 토벌대 지리산 보아라부대" (가을) : 1998
28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빨치산 자료집" 1996
29 장인성, "빨치산 이현상의 산중처 하수복 살아 있다" (8) : 1990
30 이영식, "빨치산" 행림출판 1988
31 "디지털김천문화대전"
32 내무부 치안국, "대한경찰전사 민족의 선봉" 1952
33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대비정규전사(1945~1960)" 1988
34 이태, "남부군" 두레 1988
35 김남식, "남로당 연구" 돌베개 1984
36 "김용익(1926년생, 순천시 해룡면 출신, 순천철도사무소 차장(승무원)) 대담자 주철희, 순천시 해룡면 해룡종합복지센터·도서관 문예창작실에서 녹취함, 2011년 1월 20일"
37 육군본부, "공비토벌사" 1954
38 "경향신문"
韓國山家學을 위한 출정가 –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지리산권 빨치산의 형성과 활동 - 6·25전쟁 직후부터 1951년 ‘남부군’ 결성을 중심으로 -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 201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32 | 0.32 | 0.38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39 | 0.42 | 0.641 | 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