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다양한 예술적 표현방식들 중에서도 시각예술이라는 말을 쓸 때는 이미 시각 혹은 시지각(visual perception)은 그 예술을 생산하고 체험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요소...
여러 다양한 예술적 표현방식들 중에서도 시각예술이라는 말을 쓸 때는 이미 시각 혹은 시지각(visual perception)은 그 예술을 생산하고 체험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시각예술에서 시각을 빼놓는 다는 것은 이미 시각예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각 혹은 시지각을 시각예술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아마도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될 수 있겠으나, 문제는 20세기 초의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듯 시각예술이 비단 시각적 요소만으로, 이를테면 형(shape), 색, 형식(form), 양식(style)만으로 가능할 수 있는가, 혹은 이것들이 그 생산자나 소비자들의 다른 무엇과 결별하고서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적인 모더니즘은 근대주의적 자율화의 논리에 기대 시각예술에서도 시각만을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또 그것만을 오로지 시각예술의 전부 양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으며, 도를 넘어 마치 그런 전략을 당위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시작된 후기미술은 그린버그적인 시각의 순수성과 자율성은 한갓된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이에 비판받고 해체되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말하자면 시각은 시각예술에서 본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각이 순수하게 눈과만 관련된다거나, 여타의 다른 감각들이나 신체, 삶, 현실, 역사 등과 유리되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철저히 부정한다. 즉 할 포스터(Hal Foster) 등이 말하듯 시각(vision)은 시각성(visuality)를 떠나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신체적 시각성, 무의식적 시각성, 사회역사적 시각성, 욕망의 시각성 등, 시각은 시각성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 논문의 출발점은 후기 미술의 이러한 비판을 받아 들여 시각의 시각성, 특히 시각의 신체성, 혹은 신체적 시각성의 가능성을 회화공간 속에서 드러난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찾아보고자 하는 데 있다. 이것은 시각, 혹은 시지각과 신체를 별개의 것을 취급하고자 하는 시도에 저항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시각을 그 모체로서의 신체와 결부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시각이 신체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은 또한 그 신체와 한 몸인 정신, 신체의 축적으로서의 신체의 습관, 신체와 늘 교류하는 신체의 배경으로서의 현실적, 일상적 삶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본 논문은 모더니즘의 시각인 남성적 거리두기의 시각과는 다른 여성적, 공감각적, 신체적, 밀착적인 시각을 찬양하며, 그것의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데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이 모색의 길을 안내해 준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준 사람으로는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이며, 구체적인 작업으로 길을 예시한 사람들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다. 메를로 퐁티는 후설과는 다르게 세계인식의 근원적 토대로써 명증한 의식보다는 혼연하며 애매한 지각과 그 배경으로서 신체를 내세웠는데, 이는 할 포스터 등이 말하듯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배경이 되면서, 또한 모더니즘의 논리에 반기를 드는 후기미술에 적합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이어 스텔라의 경우엔 70년대 이후에 전기 작업과는 판이한 작업방식과 경향을 보여주는 것, 이를테면 틀의 해체, 탈중심적 공간표현, 역동적이며 혼합적인 표현, 중첩에 의한 실재 공간의 허용 등이 지각의 신체성을 용인하는 쪽으로의 전향이라고 판단되었으며, 베이컨의 경우엔 회화적 구조, 즉 형상(figure), 삼면화, 아플라, 우연에 의한 제작방식 등이 메를로 퐁티의 살(la chair)적인 상호교착(chiasme)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고 이해되었다.
본 연구는 연구자의 작업태도와 세계관, 그리고 작품의 형식적 특성들이 앞선 두 명의 작가들과의 유대를 통해 해명될 수 있고, 또한 심화, 혹은 차별화의 가능성이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전제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연구자의 주요 작업들인 <자연의 해석(Interpretation of Nature)> 연작에서 자연은 생성을 의미하며, 생성공간은 삶을 통해 체험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인 주체로서의 신체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공간은 메를로 퐁티의 깊이의 지각으로부터 ‘돌출됨’이 강조되며 사물들이나 사물들의 요소에 의한 변형된 공간을 의미한다. 깊이는 대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신체의 지각으로부터 비롯됨으로 체험된 몸과 공간과의 연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연구자는 1996년부터 생명적 요소들을 주제로 신체지각으로부터 발생하는 신체적 공간의 표현적 측면에 주력하였다. 여기에는 여성의 공간, 촉각적 공간(신체성), 반복된 공간,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 설치에 의한 공간변형, 확장이 포함되며 이러한 표현적 측면으로부터 형태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시지각과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신체적 역할의 비중을 달리하는 미술사적인 흐름 속에서 회화의 가능성과 위상변화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20세기 중반이후 시지각과 신체성에 관련하여 신체의 역할에 강조점을 두는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로부터 시각예술에서 신체성과 관련해서 봄의 문제를 규정지으려는 작업들, 즉 시각의 신체성을 묻는 작업들은 다양한 매체실험을 가능하게 하였고 공간개념의 변화를 가져왔다. 평면에서 3차원적 확장으로의 공간의 변화는 신체지각적인 표현을 더욱 요구하였으며, 수용자 입장에서도 지각의 신체성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려는 본 논문의 주된 주제와 의도들이 대안적 시각성의 모색에 다소나마 일조할 수 있다면, 여기에 본 논문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