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의 사티로스(Satyros): 고대 그리스미술 속 흑인의 이미지 연구

국문 초록 (Abstract)

그리스인들은 외국인, 여자, 동물과 같은 다양한 타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 작은 폴리스에 흩어져 있던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전쟁이라는 공동의 시련을 통해 자신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엮는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동시에 그리스인을 중심으로 여기는 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를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의 자민족중심주의는 인종이나 민족별로 위계적으로 계층화된 외국인에 대한 차별 시스템인 현대적 의미의 인종차별과는 다른 것으로, 모든 다른 외국인을 그리스인을 기준으로 평가해 다양한 가치와 층위로 인식하는 수준의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한 기준에도 적용되었는데, 흑인의 신체적 특징은 전형적인 그리스의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다름에 대한 인식이 흑인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호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미술가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흑인을 재현한 현존하는 많은 미술품의 존재를 통해 증명된다.
이들 미술품은 그리스 본토에서 직접 만나기 어려웠던 흑인에 대한 희소성의 가치와 이국적인 감상, 그리고 새로운 인종에 관한 시각적 호기심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리스인의 흑인에 대한 관점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신체적인 상이함에 대한 호기심과 그 차이에 대한 매력을 탐닉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리스인과 다른 흑인의 신체적 특징들이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웃음을 유발하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면서, 이러한 흑인의 신체에 대한 인식은 당대에 명작으로 알려진 미술품을 익살스럽게 패러디하는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 미술가들이 흑인의 신체를 유머의 요소로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 중심주의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어 그리스인들의 상대적 우위를 상정하고 흑인의 외형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의 태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각적으로 웃음과 풍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 흑인은 그와 유사한 이미지로 알려진 사티로스와 외형적으로 동화되는 데 더해서 사티로스의 행동양식과 본성까지도 흡수하게 되고, 결국에는 흑인의 신체적 외형 특징에서 비롯된 시각적 인식은 그들에 대한 내적 성향을 규정하는 선입견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흑인에 관한 시각적 의미가 확장되어 그 도상의 용법이 다양화되는 현상은 고대 그리스조각에 서 흑인도상이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