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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韓 · 日 서적 교류 고찰  :  18세기 통신사 사행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xchange and circulation of books between Chosun and Japan in the Late Chosun Dynasty : Focusing on the travel records on 18th century Chosun Tong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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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thesis, I have surveyed the exchange and circulation of books between Chosun and Japan in the 18th century. The subjects are the travel records of Chosun Tongsinsa. The exchange had been happened centering around Wakan (倭館) and the contact of Envoy.
      Let me explain the Korean books outflown into Japan. In the early 18th century, the Korean books related to Japan had been outflown, and published and circulated in Japan. Next, Japan was interested in Korean studies, specially in Sung-Confucianism(性理擧) and had a clear grasp of it. As time went by, Japan had purchased Korean books in many variety. And Japan had tried to get an accurate grasp of the real aspects of Chosun.
      Chosun had forbidden the books outflow into Japan. Because it was unpleasant that the information about her leak out. So Korean books generally had been smuggled into Japan. To the late 18th century, outflown books had been increased in numbers and variety.
      Now let me describe the Japanese books inflowed into Chosun. At that time Japan's publication was excellent. Japanese had published the record books of response poetry and prose(唱和集) between Korean and Japanese in short time, and gave those to Tongsinsa as present. It was possible not only because of Japanese desire to Korean culture but also their publishing technique. For this, Japans cultural level had been introduced to Chosun, and Korean intellectuals had become to have interest in Japanese books and culture.
      Mostly, in the travel records of 1748 and 1763, we can find the titles of the Japanese books inflowed into late Chosun Dynasty. From that time on, Korea had looked for and studied the whole Japanese culture. So the books close to the real aspects of Japan had been written in Chosun.
      Korean intellectuals had taken deep interest in Japanese thought. Their knowledge and critique about Neo-Confucianism(朱子學派) and Archaist(古學派) were very deep. In literature, an anthology of Hakuseki Arai was brought and took attention and acknowledgements.
      Japan did not put an embargoes on her books into Korea, therefore no concept of smuggle was. Japan had not been worry over Chosun, because Japanese books were of few interest to Korean intellectuals in the early Chosun, and latterly were not confidential matters in outflow any l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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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thesis, I have surveyed the exchange and circulation of books between Chosun and Japan in the 18th century. The subjects are the travel records of Chosun Tongsinsa. The exchange had been happened centering around Wakan (倭館) and the contact...

      In this thesis, I have surveyed the exchange and circulation of books between Chosun and Japan in the 18th century. The subjects are the travel records of Chosun Tongsinsa. The exchange had been happened centering around Wakan (倭館) and the contact of Envoy.
      Let me explain the Korean books outflown into Japan. In the early 18th century, the Korean books related to Japan had been outflown, and published and circulated in Japan. Next, Japan was interested in Korean studies, specially in Sung-Confucianism(性理擧) and had a clear grasp of it. As time went by, Japan had purchased Korean books in many variety. And Japan had tried to get an accurate grasp of the real aspects of Chosun.
      Chosun had forbidden the books outflow into Japan. Because it was unpleasant that the information about her leak out. So Korean books generally had been smuggled into Japan. To the late 18th century, outflown books had been increased in numbers and variety.
      Now let me describe the Japanese books inflowed into Chosun. At that time Japan's publication was excellent. Japanese had published the record books of response poetry and prose(唱和集) between Korean and Japanese in short time, and gave those to Tongsinsa as present. It was possible not only because of Japanese desire to Korean culture but also their publishing technique. For this, Japans cultural level had been introduced to Chosun, and Korean intellectuals had become to have interest in Japanese books and culture.
      Mostly, in the travel records of 1748 and 1763, we can find the titles of the Japanese books inflowed into late Chosun Dynasty. From that time on, Korea had looked for and studied the whole Japanese culture. So the books close to the real aspects of Japan had been written in Chosun.
      Korean intellectuals had taken deep interest in Japanese thought. Their knowledge and critique about Neo-Confucianism(朱子學派) and Archaist(古學派) were very deep. In literature, an anthology of Hakuseki Arai was brought and took attention and acknowledgements.
      Japan did not put an embargoes on her books into Korea, therefore no concept of smuggle was. Japan had not been worry over Chosun, because Japanese books were of few interest to Korean intellectuals in the early Chosun, and latterly were not confidential matters in outflow any l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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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조선후기 한·일 書籍 交流와 流通에 대해 고찰했다. 중심자료는 18세기 通信使行의 使行錄과 관련 書籍이다. 서적 교류는 倭館과 使臣 왕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 유출된 조선 서적을 보면, 초기에는 조선의 일본 관련 서적이 유출되고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며 유통되었다. 다음으로 일본은 조선의 학문 특히 性理擧에 관심을 두어 그 요체를 파악했다. 후기로 갈수록 일본은 조선의 생활과 지리·병제와 외교·역사·법제·의학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서적을 구입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은 서적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했다. 이는 조선의 기밀이나 조선에 관한 정보 나아가 일본에 대한 조선의 인식이 일본에 전해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서적 교류는 대체로 密貿易이라는 형태를 띠었다. 서적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은 1763년에야 확인된다.
      18세기 후반 사행록으로 갈수록 일본에 유출된 서적은 수적으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종류도 다양해진다. 초량의 왜관이 안정되면서 왜관을 통한 유출이 증가되고, 통신사행도 회를 거듭할수록 역관의 밀무역을 통한 유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신사행에 참여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 문화와 일본내 조선 서적의 유통에 더욱 관심을 기우리게 되었기에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일본 서적의 조선으로의 유입을 살필 때, 당시 일본 출판문화의 우수성을 빠뜨릴 수 없다. 일본 지식인은 통신사행과의 唱和集을 빠른 기간에 출판하고 통신사에 선물했다. 이는 조선문화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출판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조선 지식인은 일본에서 간행된 중국 서적을 자비로 구매하거나 일본인에게 선물 받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일본의 문학적 수준이 조선으로 소개되었고 조선 지식인이 일본 서적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1748년과 1763년의 사행록에서 조선후기 수입된 일본 서적이 확인된다. 이때부터 일본의 군사와 병법 지세론·격조선론 지리서 통신사행 전반에 관한 기록·元나라의 일본침략 기록서·백과사전·관원에 관한 기록·사상서 둥을 구하고 고찰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저서들이 출현하고, 일본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식이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일게 되었다.
      조선 지식인은 일본 思想에 관심이 많았다. 朱子學派를 긍정하고 古學派의 서적과 사상을 논쟁의 중심에 두었는데 그 내용도 깊이가 있었다. 특히 고학파를 異端이라 비판했으니 이는 程朱를 신봉하던 당시 지식인들에게 사명과 같았다. 그러나 일본 사상의 삼대 학파인 陽明學을 빠뜨렸고 古學에서도 聖學을 중요하게 인지하지 않았다. 문학의 경우 新井白石의 문집이 유입되어 관심을 끌었고 시문이 인정을 받았다.
      일본은 자국의 서적이 조선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이에 서적의 밀무역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저에는 조선에 대해 우려할 일이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초기 조선 지식인들은 일본 서적에 대한 갈망이 그다지 없었고, 후기로 오며 조선으로 수입된 서적들은 유출되면 곤란한 기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일 서적 유통에는 두 나라 사이만큼 상이함이 존재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서적 교류가 증가했으니 이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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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조선후기 한·일 書籍 交流와 流通에 대해 고찰했다. 중심자료는 18세기 通信使行의 使行錄과 관련 書籍이다. 서적 교류는 倭館과 使臣 왕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 유출된 ...

      본고는 조선후기 한·일 書籍 交流와 流通에 대해 고찰했다. 중심자료는 18세기 通信使行의 使行錄과 관련 書籍이다. 서적 교류는 倭館과 使臣 왕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 유출된 조선 서적을 보면, 초기에는 조선의 일본 관련 서적이 유출되고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며 유통되었다. 다음으로 일본은 조선의 학문 특히 性理擧에 관심을 두어 그 요체를 파악했다. 후기로 갈수록 일본은 조선의 생활과 지리·병제와 외교·역사·법제·의학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서적을 구입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은 서적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했다. 이는 조선의 기밀이나 조선에 관한 정보 나아가 일본에 대한 조선의 인식이 일본에 전해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서적 교류는 대체로 密貿易이라는 형태를 띠었다. 서적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은 1763년에야 확인된다.
      18세기 후반 사행록으로 갈수록 일본에 유출된 서적은 수적으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종류도 다양해진다. 초량의 왜관이 안정되면서 왜관을 통한 유출이 증가되고, 통신사행도 회를 거듭할수록 역관의 밀무역을 통한 유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신사행에 참여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 문화와 일본내 조선 서적의 유통에 더욱 관심을 기우리게 되었기에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일본 서적의 조선으로의 유입을 살필 때, 당시 일본 출판문화의 우수성을 빠뜨릴 수 없다. 일본 지식인은 통신사행과의 唱和集을 빠른 기간에 출판하고 통신사에 선물했다. 이는 조선문화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출판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조선 지식인은 일본에서 간행된 중국 서적을 자비로 구매하거나 일본인에게 선물 받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일본의 문학적 수준이 조선으로 소개되었고 조선 지식인이 일본 서적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1748년과 1763년의 사행록에서 조선후기 수입된 일본 서적이 확인된다. 이때부터 일본의 군사와 병법 지세론·격조선론 지리서 통신사행 전반에 관한 기록·元나라의 일본침략 기록서·백과사전·관원에 관한 기록·사상서 둥을 구하고 고찰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저서들이 출현하고, 일본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식이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일게 되었다.
      조선 지식인은 일본 思想에 관심이 많았다. 朱子學派를 긍정하고 古學派의 서적과 사상을 논쟁의 중심에 두었는데 그 내용도 깊이가 있었다. 특히 고학파를 異端이라 비판했으니 이는 程朱를 신봉하던 당시 지식인들에게 사명과 같았다. 그러나 일본 사상의 삼대 학파인 陽明學을 빠뜨렸고 古學에서도 聖學을 중요하게 인지하지 않았다. 문학의 경우 新井白石의 문집이 유입되어 관심을 끌었고 시문이 인정을 받았다.
      일본은 자국의 서적이 조선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이에 서적의 밀무역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저에는 조선에 대해 우려할 일이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초기 조선 지식인들은 일본 서적에 대한 갈망이 그다지 없었고, 후기로 오며 조선으로 수입된 서적들은 유출되면 곤란한 기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일 서적 유통에는 두 나라 사이만큼 상이함이 존재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서적 교류가 증가했으니 이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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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조선 서적의 일본으로의 유통
      • 3. 일본 서적의 조선으로의 유통
      • 4. 한·일 서적 교류의 의의 및 한계
      • 1. 머리말
      • 2. 조선 서적의 일본으로의 유통
      • 3. 일본 서적의 조선으로의 유통
      • 4. 한·일 서적 교류의 의의 및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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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浪速 日新堂藏版, "兩東唱和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 元重擧,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소명출판 2006

      3 하우봉,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관 연구" 일지사 1-311, 1989

      4 강재언,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1-359, 2005

      5 이혜순, "조선통신사의 문학"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0-467, 1996

      6 미야케 히데도시, "조선통신사와 일본" 지성의 샘 1-287, 1996

      7 김경숙, "조선 후기 서얼문학 연구" 소명출판 1-527, 2005

      8 박재금, "원중거의 화국지에 나타난 일본인식, 우리 한문학사의 해외체험" 집문당 223-248, 2006

      9 다시로 가즈이, "왜관" 논형 1-367, 2005

      10 元重擧,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 소명출판 2006

      1 浪速 日新堂藏版, "兩東唱和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 元重擧,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소명출판 2006

      3 하우봉,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관 연구" 일지사 1-311, 1989

      4 강재언,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1-359, 2005

      5 이혜순, "조선통신사의 문학"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0-467, 1996

      6 미야케 히데도시, "조선통신사와 일본" 지성의 샘 1-287, 1996

      7 김경숙, "조선 후기 서얼문학 연구" 소명출판 1-527, 2005

      8 박재금, "원중거의 화국지에 나타난 일본인식, 우리 한문학사의 해외체험" 집문당 223-248, 2006

      9 다시로 가즈이, "왜관" 논형 1-367, 2005

      10 元重擧,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 소명출판 2006

      11 김경숙, "승사록의 서술 방식과 사행록으로서의 의의"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10 : 199-233, 2006

      12 南? 玉, "붓끝으로 부사산 바람을 가르다" 소명출판 2006

      13 成大中, "부사산 비파호를 날 듯이 건너" 소명출판 2006

      14 비토 마사히데, "보는 일본문화사" 예문서원 1-248, 2003

      15 이동희, "동아시아 주자학 비교 연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00-356, 2006

      16 이마이 쥰, "논쟁을 통해 본 일본 사상"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481, 2001

      17 김치우, "고사촬요 책판목록과 그 수록 간본 연구" 아세아문화사 13-19, 2007

      18 京華書坊 用拙齋, "韓客筆語,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9 長門 明倫?藏版, "長門癸甲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0 하우봉, "通信使謄錄의 史料的 성격"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2 : 551-533, 1991

      21 吳下 玄洲朝文淵, "蓬島遺珠 後篇,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2 成海應, "硏經齋全集" 민족문화추진회 273-277,

      23 김경숙, "玄川 元重學의 對馬島人 인식과 그 의미 - 일본 '內地人' 인식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국어국문학회 141 : 333-369, 2005

      24 申維翰, "海遊錄" 민족문화추진회 1967

      25 申叔舟, "海東諸國記" 조선사료총간 2 1933

      26 金世濂, "海?錄" 민족문화추진회 1967

      27 趙? ?, "海?日記" 민족문화추진회 1967

      28 平安書林柳枝軒刊行, "桑韓星?餘響,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9 京華書坊 圭文館 發行, "桑韓塤?集,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30 浪華 河閒正胤 校閱, "桑韓唱酬集,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31 南紀 劉維翰文翼, "東?餘談,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32 任守幹, "東?日記" 민족문화추진회 1967

      33 柳成龍, "懲毖錄, 大和屋伊兵衛, 1695,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34 曺命采, "奉使日本時聞見錄" 민족문화추진회 1967

      35 李裕元, "國譯林下筆記, 민족문화추진회, 2000"

      36 李德懋, "國譯靑莊館全書, 민족문화추진회, 1978"

      37 丁若鏞, "國譯茶山詩文集, 민족문화추진회, 1994"

      38 韓致奫, "國譯海東繹史, 민족문화추진회, 1996"

      39 李? 瀷, "國譯星湖僿說, 민족문화추진회, 2000"

      40 李圭景, "國譯五洲衍文長箋散稿, 민족문화추진회, 1981"

      41 平安書肆 弘書軒梓行, "善隣風雅 後篇,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2 那波師曾, "問?餘響,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3 浪華書林, "和韓唱和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4 魚叔權, "『考事撮要』,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45 柳得恭, "?齋集" 민족문화추진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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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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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6 0.46 0.4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1 0.808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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