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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영광 연안김씨가의 농업경영과 자본전환의 모색 = Agricultural Management of Yeonan Kim Clan in Colonial Ch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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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전라남도 영광지역에 400여 년간 세거 해 온 연안김씨가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대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보유하였다. 당시 토지의 매득과 소작경영, 그리고 식리활동을 바탕으로 한 한말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조선후기 양반지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연안김씨가는 관료이자 지역 유지로서의 신분적 배경을 지녔음에도 경제외적 강제를 통한 경제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철저한 경제적 계약과 그 실현을 통한 경제활동에서는 이미 근대지주로서의 속성과 전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근대적 속성은, 일제강점기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을 통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갔다.
    근대적 속성을 지닌 양반지주로서 연안김씨가에게 있어 일제강점기는 정치, 사회적인 위기의 시기였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위기이자 동시에 또 다른 전환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연안김씨가는 일제강점기에도 기본적으로 지주로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그 위에서 자본의 확충과 상업자본의 전환 등을 도모해 나갔다.
    일제강점기에도 연안김씨가의 토지매매는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때로는 대규모 거래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확인할 수 있는 경우만 278건의 15만원 정도의 거래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거래에는 사실상 상속과 증여에 해당하는 가구성원 간의 거래가 존재하며, 실거래가를 낮추어 계약하는 이른바 ‘다운계약서 작성’의 모습도 관찰된다. 또한 토지를 담보로 금전이나 곡식을 대여하고, 상환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담보인 토지를 대신 취득하는 ‘유질계약’의 경우도 다수가 존재하였다.
    연안김씨가의 농업경영은 기본적으로 소작경영을 기본으로 하였고, 소작인에게 수취한 소작료는 경제활동의 기본 자산이었다. 1930년대 연안김씨가는 산지를 포함하여 최소 55만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였다. 전답과 대지만 해도 14만 3천평을 넘어서고 있었고, 한 해 소출이 3천여 석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획득한 곡식들은 대규모로 일본인과의 거래되어 자본화되었으며, 연안김씨가는 지주자본가로서의 지위를 성숙시켜 나갔다.
    1920년을 전후한 무렵부터 연안김씨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대규모의 부동산담보대출을 받고 있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대규모 토지방매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와 같은 대규모 토지거래는 비슷한 시기 상업자본으로의 진출 모색과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상업회사 투자를 위해, 또는 그 정리를 위하여 이와 같은 대규모 토지거래 및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연안김씨가는 지주로서 토지자본을 바탕으로 상업자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였다. 1919년 창립된 제주물산주식회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20년 호남물산주식회사의 창립, 1922년 전남진흥관의 창립과 합명회사 정읍상업조합의 창립 참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연안김씨가의 상업자본 진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많은 손실과 소송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연안김씨가는 기본적으로는 전시대로부터의 지주적 지위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이 시기 들어 상업자본으로의 적극적 진화를 도모해 나갔다. 그러나 대지주로서의 지위와 자본력으로도 그 변화는 쉽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전통적인 양반지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근대적 지주자본, 나아가 상업자본으로의 변환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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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광지역에 400여 년간 세거 해 온 연안김씨가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대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보유하였다. 당시 토지의 매득과 소작경영, 그리...

    전라남도 영광지역에 400여 년간 세거 해 온 연안김씨가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하여 대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보유하였다. 당시 토지의 매득과 소작경영, 그리고 식리활동을 바탕으로 한 한말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조선후기 양반지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연안김씨가는 관료이자 지역 유지로서의 신분적 배경을 지녔음에도 경제외적 강제를 통한 경제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철저한 경제적 계약과 그 실현을 통한 경제활동에서는 이미 근대지주로서의 속성과 전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근대적 속성은, 일제강점기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을 통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갔다.
    근대적 속성을 지닌 양반지주로서 연안김씨가에게 있어 일제강점기는 정치, 사회적인 위기의 시기였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위기이자 동시에 또 다른 전환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연안김씨가는 일제강점기에도 기본적으로 지주로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그 위에서 자본의 확충과 상업자본의 전환 등을 도모해 나갔다.
    일제강점기에도 연안김씨가의 토지매매는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때로는 대규모 거래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확인할 수 있는 경우만 278건의 15만원 정도의 거래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거래에는 사실상 상속과 증여에 해당하는 가구성원 간의 거래가 존재하며, 실거래가를 낮추어 계약하는 이른바 ‘다운계약서 작성’의 모습도 관찰된다. 또한 토지를 담보로 금전이나 곡식을 대여하고, 상환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담보인 토지를 대신 취득하는 ‘유질계약’의 경우도 다수가 존재하였다.
    연안김씨가의 농업경영은 기본적으로 소작경영을 기본으로 하였고, 소작인에게 수취한 소작료는 경제활동의 기본 자산이었다. 1930년대 연안김씨가는 산지를 포함하여 최소 55만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였다. 전답과 대지만 해도 14만 3천평을 넘어서고 있었고, 한 해 소출이 3천여 석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획득한 곡식들은 대규모로 일본인과의 거래되어 자본화되었으며, 연안김씨가는 지주자본가로서의 지위를 성숙시켜 나갔다.
    1920년을 전후한 무렵부터 연안김씨가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대규모의 부동산담보대출을 받고 있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대규모 토지방매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와 같은 대규모 토지거래는 비슷한 시기 상업자본으로의 진출 모색과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상업회사 투자를 위해, 또는 그 정리를 위하여 이와 같은 대규모 토지거래 및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연안김씨가는 지주로서 토지자본을 바탕으로 상업자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였다. 1919년 창립된 제주물산주식회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20년 호남물산주식회사의 창립, 1922년 전남진흥관의 창립과 합명회사 정읍상업조합의 창립 참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연안김씨가의 상업자본 진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많은 손실과 소송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연안김씨가는 기본적으로는 전시대로부터의 지주적 지위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이 시기 들어 상업자본으로의 적극적 진화를 도모해 나갔다. 그러나 대지주로서의 지위와 자본력으로도 그 변화는 쉽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 연안김씨가의 경제활동은 전통적인 양반지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근대적 지주자본, 나아가 상업자본으로의 변환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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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Yeonan Kim clan having resided in Younggwang Jeollanam-do for about 400 years established financial foundation engaging in that much lively economic activities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accumulated wealth from aggressive purchase land, landowner management and profit making activities like Yangban landowner in late choseon. It carried on economic activities under economic contract rather than non-economic compulsion, and it showed what a modern landowner really is.
    Under Japanese rule Yeonan Kim clan went through a social and political crisis but it turned this crisis into an opportunity to seek new directions in economic development. It expanded capital and raised commercial capital based on its status as local worthies. During this time, it dealt in land on a large scale up to 278 contracts worth 150000 won . It made a contract among family members such as inheritance and gift. It made a contract to lower prices . It made a contract for foreclosure by lending money or grain holding a mortgage on land.
    It managed agriculture mainly giving land for tenant farming . In the 1930s, it owned 5500000 pyeong of land at least. It is thought to have 143000 pyeong of farmland and site and to make rice crop up to 3000 seok. It made a capitalize by dealing in crop with the Japanese.
    Since around 1920, it had the loan on real estate from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and Choseon Siksan Bank on a large scale and it tried consistently a large scale land sale , which is done in an effort to form commercial capital . At this time, it actively entered into commercial capital ; it took part in Jeju Produce Development Company in 1919, it launched a Honam Produce Development Company in 1920 and it founded Jeonnam Promotion Bureau and Jeongeup Trade Association in 1922. Notwithstanding many efforts to enter into commercial capital , it suffered a loss and was facing a lawsuit.
    Based on a status as landowner it made actively progress towards commercial capital. To sum up, economic activity of Yeonan Kim clan in Younggwang in Colonial Choseon shows a case to make progressive advance in traditional Yangban landowner, modern land capital and commercial capital p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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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onan Kim clan having resided in Younggwang Jeollanam-do for about 400 years established financial foundation engaging in that much lively economic activities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accumulated wealth from aggressive purchase land, lan...

    Yeonan Kim clan having resided in Younggwang Jeollanam-do for about 400 years established financial foundation engaging in that much lively economic activities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accumulated wealth from aggressive purchase land, landowner management and profit making activities like Yangban landowner in late choseon. It carried on economic activities under economic contract rather than non-economic compulsion, and it showed what a modern landowner really is.
    Under Japanese rule Yeonan Kim clan went through a social and political crisis but it turned this crisis into an opportunity to seek new directions in economic development. It expanded capital and raised commercial capital based on its status as local worthies. During this time, it dealt in land on a large scale up to 278 contracts worth 150000 won . It made a contract among family members such as inheritance and gift. It made a contract to lower prices . It made a contract for foreclosure by lending money or grain holding a mortgage on land.
    It managed agriculture mainly giving land for tenant farming . In the 1930s, it owned 5500000 pyeong of land at least. It is thought to have 143000 pyeong of farmland and site and to make rice crop up to 3000 seok. It made a capitalize by dealing in crop with the Japanese.
    Since around 1920, it had the loan on real estate from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and Choseon Siksan Bank on a large scale and it tried consistently a large scale land sale , which is done in an effort to form commercial capital . At this time, it actively entered into commercial capital ; it took part in Jeju Produce Development Company in 1919, it launched a Honam Produce Development Company in 1920 and it founded Jeonnam Promotion Bureau and Jeongeup Trade Association in 1922. Notwithstanding many efforts to enter into commercial capital , it suffered a loss and was facing a lawsuit.
    Based on a status as landowner it made actively progress towards commercial capital. To sum up, economic activity of Yeonan Kim clan in Younggwang in Colonial Choseon shows a case to make progressive advance in traditional Yangban landowner, modern land capital and commercial capital p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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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 Ⅱ. 매매활동을 통한 토지의 확대와 상속
    • Ⅲ. 농업경영과 식리활동
    • Ⅳ. 자본전환의 모색
    • Ⅴ. 결론
    • Ⅰ. 서론
    • Ⅱ. 매매활동을 통한 토지의 확대와 상속
    • Ⅲ. 농업경영과 식리활동
    • Ⅳ. 자본전환의 모색
    • Ⅴ. 결론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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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靈光 延安金氏 典籍"

    2 洪性讚, "한말·일제하의 지주제 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3 장시원, "한국사론 30 21세기의 한국사학" 국사편찬위원회 2000

    4 하원호,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2권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5 이영학, "통감부의 조사사업과 조선침탈" 역사문화연구소 (39) : 229-262, 2011

    6 김건태,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 역사비평사 2004

    7 허원영, "조선말기 전라도 영광 연안김씨가의 지주경영" 한국민족문화연구소 (56) : 41-82, 2015

    8 허종호, "조선 봉건말기의 소작제 연구" 사회과학출판사 1965

    9 "국가통계포털"

    10 "국가법령정보센터"

    1 "靈光 延安金氏 典籍"

    2 洪性讚, "한말·일제하의 지주제 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3 장시원, "한국사론 30 21세기의 한국사학" 국사편찬위원회 2000

    4 하원호,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2권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5 이영학, "통감부의 조사사업과 조선침탈" 역사문화연구소 (39) : 229-262, 2011

    6 김건태,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 역사비평사 2004

    7 허원영, "조선말기 전라도 영광 연안김씨가의 지주경영" 한국민족문화연구소 (56) : 41-82, 2015

    8 허종호, "조선 봉건말기의 소작제 연구" 사회과학출판사 1965

    9 "국가통계포털"

    10 "국가법령정보센터"

    11 김용섭, "韓國近現代農業史硏究 -韓末·日帝下의 地主制와 農業問題-" 一潮閣 1992

    12 洪性讚, "韓國近代 農村社會의 變動과 地主層" 知識産業社 1992

    13 吳斗煥, "韓國 開港期의 貨幣制度 및 流通에 관한 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1985

    14 宮嶋博史, "植民地下朝鮮人大地主の存在形態に關する試論" (5․6) : 1982

    15 김용섭, "朝鮮後期農業史硏究" 지식산업사 1995

    16 久間健一, "朝鮮不在地主論" 朝鮮總督府 343 : 1943

    17 久間健一, "朝鮮に於ける小作問題の展開性-特に地主と農民の性格を中心として-" 4 (4): 1937

    18 河合和男, "朝鮮における産米增殖計劃" 未來社 1986

    19 山田龍雄, "全羅北道に於ける農業經營の諸相" 8 (8): 1941

    20 鄭然泰, "1940년대 前半 日帝의 韓國農業 再編策 -‘農業再編成定策을 중심으로-" 국사편찬위원회 38 : 1992

    21 김건태, "17~18世紀 兩班地主層의 土地所有樣相" 成均館大學校 史學科 12·13 : 1997

    22 허원영, "(古文書集成 104)靈光 延安金氏 古文書 Ⅰ"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2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古文書集成 104) 靈光 延安金氏 古文書 Ⅰ"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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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5-31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외대사학 -> 역사문화연구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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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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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6 0.49 1.216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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