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Act on the Jeju 4⋅3 Incident’ was enacted in 1999, and the ‘Special Act on the 10⋅19 Yeosu·Suncheon Incident’ was enacted in 2021. This time gap reflects the history of the ‘Memory Struggle’ of Jeju and the eastern part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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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Special Act on the Jeju 4⋅3 Incident’ was enacted in 1999, and the ‘Special Act on the 10⋅19 Yeosu·Suncheon Incident’ was enacted in 2021. This time gap reflects the history of the ‘Memory Struggle’ of Jeju and the eastern part o...
The ‘Special Act on the Jeju 4⋅3 Incident’ was enacted in 1999, and the ‘Special Act on the 10⋅19 Yeosu·Suncheon Incident’ was enacted in 2021. This time gap reflects the history of the ‘Memory Struggle’ of Jeju and the eastern part of South Jeolla Province. The long journey toward the truth-finding of the two incidents is in line with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but the opportunity is about 20 years apart, such as the time of April 19 in 1960 and May 18 in 1980. This thesis aims to examine the ‘Memory Struggle’ of the residents of the eastern part of Jeonnam, targeting the period from after the ‘Yeosun Incident’ to before the fact-finding movement in the 1980s. The reason is to seek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at should be done?” in history, in the current situation where the ‘Special Act’ is enacted and the ‘Committee on Yeosun Incident’ is active. This thesis aims to examine the ‘objectivity’ and ‘will’ through the ‘Memory Struggle’ of the local people before the full-fledged truth-finding movement in the 1980s. On the one hand, they had no choice but to live by ‘oblivion’ of the ‘Yeosun incident’, whether of their own will or not, but on the other hand, they had ‘boiled’ toward the point of severing under the water.
국문 초록 (Abstract)
‘제주 4⋅3사건 특별법’은 1999년,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은2021년 제정되었다. 이 시간의 격차는 제주와 전남 동부 지역민들의‘기억투쟁’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두 사건...
‘제주 4⋅3사건 특별법’은 1999년,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은2021년 제정되었다. 이 시간의 격차는 제주와 전남 동부 지역민들의‘기억투쟁’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두 사건의 진상규명을 향한 대장정은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하지만, 그 계기는 1960년 4⋅19와 1980 년 5⋅18의 시간만큼 20여 년의 차이가 난다. 본 논문은 여순사건 이후부터 1980년대 진상규명 운동이 벌어지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전남 동부 지역민들의 ‘기억투쟁’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현재 ‘특별법’이 제정되고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과거 역사 속 ‘객관’과 ‘의지’를 통해 구해보고자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한편에서는 여순사건을 자의건 타의건‘망각(忘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면 아래에서 끊는 점을 향해 항시 ‘비등(沸騰)’해 왔다.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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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한 풀고 눈 감으면 좋으련만(증언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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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경제상황과 여순사건의 사회경제적 배경 – 순천지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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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10⋅19, 비교연구를 위한 초국경적 상상력과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