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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팔아먹은)단군조선영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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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책을 내면서 = 34
    • 일러두기 = 37
    • 제1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고구려를 한반도·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연나라의 동호·조선침략기록 해석 = 51
    • 제1절 우리민족 이름인「한민족」에 대한 소고(小考) = 52
    • 목차
    • 책을 내면서 = 34
    • 일러두기 = 37
    • 제1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고구려를 한반도·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연나라의 동호·조선침략기록 해석 = 51
    • 제1절 우리민족 이름인「한민족」에 대한 소고(小考) = 52
    • 제2절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 왜곡시킨 진개의 유령 = 56
    • 제3절『사기』「흉노열전」의 날조된 진개의 동호침략관련기록 = 59
    • 1) 조(趙)나라와 북방종족 = 60
    • (1) 조(趙)나라와 임호·누번국 = 60
    • (2) 대(代)와 음산(陰山)지역의 조(趙)나라 장성 = 62
    • (3) 운중(雲中)·안문(안門)·대군(代郡)의 설치 = 64
    • 2) 동호(東胡)의 인질로 잡힌 진개 = 66
    • 3) 동호에 빼앗겼던 영토를 수복하는 진개 = 69
    • 4) 진개와 진개의 손자 진무양과의 관계 = 70
    • 5) 연(燕)나라의 5군 설치와 장성의 축조 = 71
    • 6) 진시황(秦始皇)의 만리장성(萬里長城) 축조 = 74
    • 7) 강대국 동호 = 82
    • 8) 진제국의 붕괴와 흉노의 황하이남 영토의 수복 = 82
    • 9)『사기』「흉노열전」의 날조된 진개의 동호침략관련기록의 종합해석 = 87
    • 제4절 날조된『염철론(鹽鐵論)』의 연(燕)에 의한 동호·한씨(기자)조선침략관련기록 = 92
    • 1) 부풀려진 제(齊)나라 환공의 북벌 = 92
    • 2) 과장된 조(趙)나라 무령왕의 북벌과 서정 = 96
    • 3) 날조된 연(燕)나라의 동호·요동·조선침략기록 = 99
    • 4) 몽염(蒙恬)의 흉노정벌 = 103
    • 5) 날조된『염철론』의 동호 한씨(기자)조선침략기록 종합해석 = 104
    • 제5절『삼국지』에 전재된『위략』의 날조된 진개의 조선침략관련기록 = 105
    • 1) 전국시대 연(燕)과 조선의 칭왕(稱王) = 106
    • 2) 한씨(기자)조선의 연(燕)나라 정벌계획 = 111
    • 3) 연(燕)나라 장수 진개의 한씨조선 침략 = 114
    • 4) 진나라의 만리장성축조와 한씨조선과의 관계 = 117
    • 5) 초(楚)·한(漢) 혼란기와 위만의 망명 = 121
    • 6) 한씨(기자)조선의 제후에 봉해지는 위만 = 131
    • 7) 위만의 반란 = 134
    • 8)『삼국지』에 전재된『위략』의 날조된 진개의 조선침략관련기록 종합해석 = 137
    • 제2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와 고구려를 한반도·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연나라의 동호·조선 침략기록 연구 = 145
    • 제1절 머리말 = 146
    • 제2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1, 연·조·제나라의 역사기록 = 150
    • 1) 진개의 생존가능연대 = 150
    • (1)『사기』「흉노열전」의 기록 = 150
    • (2) 진개의 동호·조선침략은 서기전 284년 이전일 수 없다 = 152
    • 2) 연(燕)·제(齊)·조(趙)나라의 전쟁기록 분석표 = 154
    • 3) 연(燕)·제(齊)·조(趙)의 전쟁기록 분류 = 158
    • 4)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임을 증명하고 있는『사기』「연소공세가」「전경중완세가」「조세가」의 기록 = 160
    • (1) 연나라와 동호·조선의 전쟁기록은 물론 진개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 연·제·조나라의 역사기록 = 160
    • (2) 연나라 관련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조나라 관련 기록에만 등장하는 동호 = 164
    • (3) 연·동호와의 전쟁으로 변조된 동호·조나라의 전쟁기록 = 166
    • 5) 2절 맺음말 = 168
    • 제3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2, 조작된 기록「현장진개(賢將秦開)」= 170
    • 1)「현장(賢將)」의 사용례 = 172
    • 2)「명장(名將)」의 사용례 = 174
    • 3)「맹장(猛將)」의 사용례 = 180
    • 4)「용장(勇將)」의 사용례 = 181
    • 5) 3절의 맺음말 = 182
    • 제4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3, 연장 진개와 동호와의 전쟁기록 분석 = 184
    • 1) 가필(加筆)된『사기』「흉노열전」의 기록 = 184
    • 2)『사기』의 기습공격(奇襲攻擊)기록 분석 = 186
    • 3)『사기』의 패주(敗走)기록 분석 = 189
    • 4)『사기』의 후퇴(後退)기록 분석 = 190
    • 5) 4절의 맺음말 = 192
    • 제5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4, 진개와 진무양 관련기록 = 194
    • 1)『사기』「자객열전」의 기록 = 194
    • 2)『사기』「흉노열전」의 기록 = 198
    • 3)『전국책(戰國策)』의 기록 = 201
    • 4) 5절의 맺음말 = 202
    • 제6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5, 『사기』「조선열전」의 기록 = 203
    • 제7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6, 제(齊)·연(燕)나라의 국력에 대한 사마천의 증언 = 205
    • 제8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7, 『염철론』「벌공」편의 기록 = 208
    • 1)『염철론』「벌공」편의 동호·조선침략 기록 분석 = 209
    • 2)『염철론』「벌공」편의 기록이 날조되었음을 입증하는『사기』「연소공세가」·「조선열전」= 210
    • 3)『염철론』「벌공」편의 조선침략기록이 날조되었음을 입증하는『염철론』「비호」편의 기록 = 211
    • 4)『염철론』「비호」·「벌공」편의 기존해석 = 213
    • 5) 8절의 맺음말 = 214
    • 제9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8,『삼국지』에 전재된『위략』의 기록 = 215
    • 1) 조선(朝鮮)과 연(燕)나라의 칭왕(稱王) 및 정벌계획 = 215
    • 2) 조선(朝鮮)의 칭왕(稱王)과 날조된 존주실(尊周室)기록 = 217
    • 3) 700년 뒤에 날조된 조선 땅 2,000리 침략기록 = 218
    • 4) 진개의 조선침략기록이 날조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는『위략』의 기록 = 220
    • 5) 9절의 맺음말 = 223
    • 제10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9,『위략』에 기록된 위만의 반란기록 = 225
    • 제11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10, 요서·요동·낙랑·현도·임둔군의 실재위치 = 230
    • 제12절 진개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라는 증거11,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설치기록 = 234
    • 제13절 연(燕)나라의 동호·조선침략기록이 날조된 이유 및 시기 = 238
    • 제3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고구려를 한반도·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요수·요동의 실제위치 연구 = 243
    • 제1절 한국고대역사영역의 크기와 위치를 결정짓는 요수(遼水)와 요동(遼東) = 244
    • 제2절 제(齊)·고죽(孤竹)의 전투로 본 요수(遼水)의 위치 = 246
    • 제3절『회남자(淮南子)』의 요수는 산서성 갈석산에서 발원하여 북경·천진을 흐른다 = 252
    • 1) 지석산(砥石山)에서 발원하는 6대강 요수(遼水) = 252
    • 2) 요수(遼水)는 북경의 서남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 = 257
    • (1) 갈석산(碣石山)에서 나오는 요수(遼水) = 257
    • (2) 동북쪽으로 흐르는 요수(遼水) = 258
    • (3) 요동(遼東)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요수(遼水) = 259
    • (4) 현재의 요하(遼河)는 요수(遼水)가 될 수 없다 = 260
    • (5) 요수(遼水)의 조건을 갖춘 유일한 강 상간하→영정하 = 264
    • 제4절『한서(漢書)』「지리지」의 대요수는 현재의 요하(遼河)가 아니다 = 267
    • 제5절 요하(遼河) 서쪽에 있을 수 없는 요서군 = 270
    • 제6절 현도군·고구려현이 요동과 한반도에 없었음을 증언하는『한서』「지리지」의 강들 = 272
    • 1) 요하의 동쪽에 있을 수 없는 현도군의 마자수·염난수 = 277
    • (1) 현도군의 마자수·염난수의 실제 위치를 찾아서 = 277
    • (2) 현도군의 마자수·염난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학설들 = 279
    • 2) 요하의 동쪽에 있을 수 없는 현도군 고구려현의 요수·대요수·남소수 = 283
    • 제7절 임둔군(臨屯郡)의 위치로 본 요수와 요동·요서·낙랑·현도군의 실제위치 = 286
    • 제4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와 고구려를 한반도와 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만리장성의 실제위치 연구 = 293
    • 제1절 한국사를 말살·축소·왜곡시킨 상상속의 만리장성 = 294
    • 제2절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왜곡시킨 조(趙)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연구 = 298
    • 1) 실제의 위치보다 천리이상 동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날조되어 온 조나라 대군(代郡) = 299
    • (1) 항산산맥(恒山山脈) 동남쪽 대군(代郡)의 구하(구河) = 301
    • (2) 대군(代郡)이 항산산맥(恒山山脈) 동남쪽에 있었음을 증거하는 호지하(호池河) = 305
    • (3) 항산산맥(恒山山脈) 남쪽에 있는 대현(代縣) = 307
    • (4) 대군(代郡)의 실제위치 = 307
    • 2) 실제의 위치보다 2천리이상 북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날조되어 온 조나라의 고궐·운중·안문군 = 310
    • (1)『사기(史記)』「조세가(趙世家)」의 기록 = 310
    • (2)『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기록 = 314
    • (3)『사기(史記)』「흉노열전(匈奴列傳)」의 기록 = 317
    • (4)『사기』「위장군표기열전」의 기록 = 319
    • 3) 조(趙)나라 장성(長城) 기록에 대한 실증적 분석 = 323
    • (1) 산(山)이름으로 오인 받아 온 지역명 음산(陰山) = 323
    • (2) 조(趙)나라 장성(長城) 기록에 대한 기존의 해석 = 326
    • (3) 조(趙)나라 장성(長城) 기록에 대한 올바른 해석 = 327
    • 제3절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왜곡시킨 연(燕)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연구 = 329
    • 1) 연(燕)나라 장성의 동쪽 끝 양평(襄平)의 실제위치 = 329
    • 2) 연(燕)나라 장성유적으로 오인된 내몽고·요녕성서부지역의 장성유적 = 336
    • (1) 건평현(建平縣) 수천(水泉) 고성지(古城址) = 339
    • (2) 적봉시(赤峰市) 교구(郊區) 지가영자성지(遲家營子城址) = 339
    • (3) 적봉시(赤峰市) 오한기(敖漢期) 대전자성지(大甸子城址) = 339
    • (4) 요서지역(遼西地域) 장새(障塞)·성(城)들의 특징 = 340
    • (5) 요서지역 장새·성지(城址)들은 진나라 만리장성이 아니라 신시·단군조선의 문화유적 = 340
    • 3) 연(燕)나라 장성과 만리장성의 동쪽 끝 갈석산(碣石山)의 실제위치 = 342
    • (1) 서진(西晉)이 수축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 갈석산 = 342
    • (2) 갈석산(碣石山)의 실제위치 = 346
    • 가.『사기』「하본기(夏本紀)」의 갈석(碣石) = 346
    • 나.『염철론(鹽鐵論)』의 갈석(碣石) = 350
    • (3)『한서』「지리지」의 갈석(碣石) = 354
    • (4)「갈석(碣石)」은 갈석산(碣石山)이 아니다 = 357
    • 가.『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의 갈석(碣石) = 358
    • 나. 진시황 영정(영政)의 갈석(碣石) = 363
    • 다. 호해(胡亥)와 유철(劉徹)의 갈석(碣石) = 367
    • (5) 날조된 발해북안(渤海北岸)의 갈석산과 갈석 = 373
    • 제4절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왜곡시킨 진(秦)나라 만리장성(長城)의 실제위치 연구 = 377
    • 1) 황하남쪽에 쌓은 진(秦)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 = 377
    • 2) 만리장성의 실제위치 및 실제길이 = 380
    • (1) 만리장성의 어원 = 380
    • (2) 만리장성의 실측방법 = 382
    • (3) 평면지도상의 직선거리로 본 만리장성의 길이 = 385
    • 가. 진(秦)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와 길이 = 385
    • 나. 조(趙)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와 길이 = 386
    • 다. 연(燕)나라 장성(長城)의 실제위치와 길이 = 387
    • 라. 만리장성의 실제위치와 실제길이 = 388
    • 3)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왜곡시킨 상상속의 3만리장성 = 389
    • 제5장 신시·단군조선사를 말살시키고 부여·고구려를 한반도·요동의 약소국으로 조작시킨 연·제·조·동호 영토의 실증적 연구 = 395
    • 제1절 서설(序說) = 396
    • 제2절 제(齊)나라 영토의 크기 및 위치연구 = 397
    • 1)『사기』「소진열전」의 기록 = 398
    • 2)『사기』「제태공세가」의 기록 = 400
    • 3)『사기』「제태공세가」에 대한 사마천의 논평 = 402
    • 4) 제(齊)나라 영토의 크기 및 위치 = 403
    • (1) 제(齊)나라 영토의 위치 = 403
    • (2) 제(齊)나라 영토의 실제크기 측정방법 = 406
    • 제3절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 왜곡시킨 조(趙)나라 영토의 크기 및 실재한 위치 연구 = 410
    • 1) 서설(序說) = 410
    • 2)『사기』의 조(趙)나라 위치에 대한 기록 해석 = 413
    • 3) 조(趙)나라의 동·북쪽국경지역의 국가들인 제(齊)·조선·연(燕)·동호(東胡)·대(代)의 위치 = 420
    • 4) 조(趙)나라 북·서쪽의 국경국가인 동호(東胡)·임호(林胡)·누번(樓煩)의 위치 = 424
    • 5) 날조(捏造)되어 온 조(趙)나라 관련 지역의 위치 = 427
    • (1) 실제보다 북쪽으로 날조되어 온 진(秦)나라 북부 국경지역 상군(上郡)의 실제 위치 = 427
    • (2) 실제보다 북동쪽으로 오인되어 온 상당(上黨) = 430
    • 6) 한국고대사를 말살·축소 왜곡시킨 조나라의 실제 영토위치 = 434
    • (1) 조(趙)나라 위치와 영토규모에 대한 기록의 검증을 통해본 조(趙)나라 위치 및 영토크기 = 434
    • (2) 조(趙)나라 장성을 통해본 조나라의 위치 및 영토크기 = 436
    • (3) 동호의 영토위에 덧씌워 놓은 안문(雁門)·대군(代郡) = 438
    • (4)『고궐(高闕)·오원(五原)·운중(雲中)』의 실제위치 = 439
    • 제4절 동호(東胡)·산융(山戎)의 실재한 위치 연구 = 440
    • 1) 전국시대 소진(蘇秦)이 본 동호(東胡)의 위치 = 442
    • 2) 춘추시대 진(晉)나라에서 본 동호·산융의 위치 = 445
    • 3) 전국시대 조(趙)나라 무령왕이 본 동호(東胡)의 위치 = 447
    • 4)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시대의 동호(東胡)의 위치 = 449
    • (1) 소려(蘇려)가 본 동호(東胡)의 위치 = 449
    • (2) 조(趙)·동호(東胡)간의 전쟁으로 본 동호(東胡)의 위치 = 450
    • 5) 선비족 국가들의 영토로 본 동호(東胡)의 위치 = 451
    • 6) 4절 맺음말 = 452
    • 제5절 연(燕)나라 영토의 실제 크기 및 위치연구 = 454
    • 1)『사기』「소진열전」과「조세가」중의 연(燕)나라의 위치에 대한 기록 해석 = 454
    • 2) 연(燕)나라는 제(齊)나라의 북쪽 접경국이 아니다 = 457
    • 3) 연(燕)나라의 서·북방국가들 = 460
    • (1) 임호(林胡)·누번국(樓煩國)의 위치 = 460
    • (2) 운중(雲中)·구원(九原)·대군(代郡)의 위치 = 461
    • 4) 동호(東胡)는 연(燕)나라의 동방국가가 아니라 서북방(西北方)국가이다 = 465
    • 5) 연(燕)나라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內陸國家) = 465
    • 6) 실재하지 않는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 466
    • 7) 구하(구河)·호지하(호池河)·만리장성의 위치로 본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의 위치 = 470
    • 8) 3∼4천리를 동쪽으로 이동시켜 논 요동의 실제 위치 = 473
    • 9) 북경(北京)으로 날조되어 온 연나라 수도의 실제 위치 = 475
    • (1)「연(燕)」나라로 날조된 고대「언(언)」나라 = 475
    • 가. 북경이 연(燕)의 수도가 아님을 증언하는 언후명청동기 = 475
    • 나. 북경이 연(燕)의 수도가 아님을 증언하는 태보명청동기 = 478
    • (2) 요동의 위치로 본 연나라 수도의 실제위치 = 482
    • (3) 역현(易縣) 연하도(燕下都)가 연나라 수도인「계(계)」= 484
    • 가. 연하도(燕下都)의 궁전유지와 청동기 유물들 = 484
    • 나. 연하도(燕下都)가 연나라 수도이었음을 보여주는 형가의 암살미수사건 기록들 = 486
    • 다. 연하도(燕下都)가 연나라 수도이었음을 보여주는 연(燕)나라 멸망기록들 = 489
    • 라. 연나라 수도인「계(계)」가 연하도(燕下都)이였음을 보여주는『한서』「지리지」의 기록 = 493
    • 10) 갈석산(碣石山)으로 본 연(燕)나라 북쪽국경 = 495
    • 11) 임둔군의 위치로 본 연(燕)나라 영토의 위치 및 크기 = 496
    • 12) 소진(蘇秦)이 본 연(燕)나라의 동쪽국경 = 501
    • 13) 연(燕)나라 영토의 실재(實在) 크기 및 위치 = 502
    • 제6절 고죽·이지의 후계왕조 한씨(기자)·위만조선과 부여·임둔·진번·낙랑·현도·고구려의 실제위치 연구 = 505
    • 참고문헌 =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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