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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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0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5-37(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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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Baekje only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in various fields. Although the capital and Hangang River basin were taken by Goguryeo in 475, Baekje developed power and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However, by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having a feeding frenzy around the Hangang River basin with Shilla, King Seong of Baekje fell in Gwansanseong Fortress Battle. King Uideok, who succeeded to the throne, tried to overcome the crisis. In the crisis, to establish a solid foothold in East Asia, he resumed the development of diplomatic ties with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hile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ending an envoy to North Qi(北齊, Běi Qí).
Because of this change in relations with China, Zhōushū(『周書』) and Běish(『北史』), histories of the Northern Dynasties, included the contents about Baekje’s political system, social custom, culture, religion and so on. In particular records related to Taoism(道敎) in Baekje were important to study Taoism of Baekje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literature and archeological materials about that. Also, the existence of those records implies what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ere interested.
On the other hand, several relics, especially the sculptures of Buddha, showed what Baekje accepted and adopted from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the 6th century, some sculptures of Buddha made in Baekje presented features of both the Southern and Northern China style. It seemed that these sculptures were added the Northern China’s features based on the Southern China style. Moreover, it seemed to be affected by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culptures of Buddha seem to be made of stone and located in the main roads of Baekje.
백제는 동진과 교섭한 이래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다. 개로왕대 북조와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웅진도읍기의 대중관계는 남조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각축전 속에서 ...
백제는 동진과 교섭한 이래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다. 개로왕대 북조와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웅진도읍기의 대중관계는 남조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각축전 속에서 성왕이 사망하고 한강유역도 다시 상실하면서 백제의 국제적 입지가 약화되었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 즉위한 위덕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것이 대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북조와의 교섭 재개였다. 당시 북제 역시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백제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이러한 백제-남북조 간의 교섭양상은 문헌과 유물에서 드러난다. 472년 개로왕이 북위와 국교를 단절한 이래 100여 년이 지난 후 재개된 백제와 북조와의 교섭은 서로에게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周書』와 『北史』 등에는 교류단절의 기간 동안 변화, 발전해 온 백제의 정치, 제도, 사회, 문화, 사상, 풍습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정보가 기록되었다. 이는 백제에 대한 북조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백제의 도교문화는 매우 산발적·단편적으로 나타나는데, 북조 사서에 기록된 도교 관련 기록들은 사비기 백제 도교문화의 일면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백제 역시 북조의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먼저,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북제의 상평오수전은 백제와 북조 간 교류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6세기 이래 제작된 불상들에 남조의 요소가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북조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돌이 불상을 제작하는 주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 북조의 경우처럼 교통로상에서 불상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북조의 영향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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