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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사비기 백제의 對中관계와 문화교류- 도교·불교를 중심으로 - = The Relationship of Baekje with China and Cultural Exchange in Sabi Era -Focusing on Buddhism and Tao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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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Baekje only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in various fields. Although the capital and Hangang River basin were taken by Goguryeo in 475, Baekje developed power and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However, by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having a feeding frenzy around the Hangang River basin with Shilla, King Seong of Baekje fell in Gwansanseong Fortress Battle. King Uideok, who succeeded to the throne, tried to overcome the crisis. In the crisis, to establish a solid foothold in East Asia, he resumed the development of diplomatic ties with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hile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ending an envoy to North Qi(北齊, Běi Qí).
    Because of this change in relations with China, Zhōushū(『周書』) and Běish(『北史』), histories of the Northern Dynasties, included the contents about Baekje’s political system, social custom, culture, religion and so on. In particular records related to Taoism(道敎) in Baekje were important to study Taoism of Baekje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literature and archeological materials about that. Also, the existence of those records implies what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ere interested.
    On the other hand, several relics, especially the sculptures of Buddha, showed what Baekje accepted and adopted from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the 6th century, some sculptures of Buddha made in Baekje presented features of both the Southern and Northern China style. It seemed that these sculptures were added the Northern China’s features based on the Southern China style. Moreover, it seemed to be affected by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culptures of Buddha seem to be made of stone and located in the main roads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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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Baekje develop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it sent an envoy to East Jin(東晉, Dōng Jìn) in 372. Moreover, King Gaero discontinue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North Wei(北魏, Běi Wèi) in 472. Since then, Baekje only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in various fields. Although the capital and Hangang River basin were taken by Goguryeo in 475, Baekje developed power and interacted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However, by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having a feeding frenzy around the Hangang River basin with Shilla, King Seong of Baekje fell in Gwansanseong Fortress Battle. King Uideok, who succeeded to the throne, tried to overcome the crisis. In the crisis, to establish a solid foothold in East Asia, he resumed the development of diplomatic ties with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hile maintaining the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sending an envoy to North Qi(北齊, Běi Qí).
    Because of this change in relations with China, Zhōushū(『周書』) and Běish(『北史』), histories of the Northern Dynasties, included the contents about Baekje’s political system, social custom, culture, religion and so on. In particular records related to Taoism(道敎) in Baekje were important to study Taoism of Baekje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literature and archeological materials about that. Also, the existence of those records implies what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were interested.
    On the other hand, several relics, especially the sculptures of Buddha, showed what Baekje accepted and adopted from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ince the 6th century, some sculptures of Buddha made in Baekje presented features of both the Southern and Northern China style. It seemed that these sculptures were added the Northern China’s features based on the Southern China style. Moreover, it seemed to be affected by the Northern Dynasties of China, sculptures of Buddha seem to be made of stone and located in the main roads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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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백제는 동진과 교섭한 이래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다. 개로왕대 북조와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웅진도읍기의 대중관계는 남조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각축전 속에서 성왕이 사망하고 한강유역도 다시 상실하면서 백제의 국제적 입지가 약화되었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 즉위한 위덕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것이 대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북조와의 교섭 재개였다. 당시 북제 역시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백제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이러한 백제-남북조 간의 교섭양상은 문헌과 유물에서 드러난다. 472년 개로왕이 북위와 국교를 단절한 이래 100여 년이 지난 후 재개된 백제와 북조와의 교섭은 서로에게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周書』와 『北史』 등에는 교류단절의 기간 동안 변화, 발전해 온 백제의 정치, 제도, 사회, 문화, 사상, 풍습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정보가 기록되었다. 이는 백제에 대한 북조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백제의 도교문화는 매우 산발적·단편적으로 나타나는데, 북조 사서에 기록된 도교 관련 기록들은 사비기 백제 도교문화의 일면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백제 역시 북조의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먼저,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북제의 상평오수전은 백제와 북조 간 교류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6세기 이래 제작된 불상들에 남조의 요소가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북조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돌이 불상을 제작하는 주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 북조의 경우처럼 교통로상에서 불상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북조의 영향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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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는 동진과 교섭한 이래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다. 개로왕대 북조와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웅진도읍기의 대중관계는 남조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각축전 속에서 ...

    백제는 동진과 교섭한 이래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다. 개로왕대 북조와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웅진도읍기의 대중관계는 남조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각축전 속에서 성왕이 사망하고 한강유역도 다시 상실하면서 백제의 국제적 입지가 약화되었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 즉위한 위덕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것이 대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북조와의 교섭 재개였다. 당시 북제 역시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백제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이러한 백제-남북조 간의 교섭양상은 문헌과 유물에서 드러난다. 472년 개로왕이 북위와 국교를 단절한 이래 100여 년이 지난 후 재개된 백제와 북조와의 교섭은 서로에게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周書』와 『北史』 등에는 교류단절의 기간 동안 변화, 발전해 온 백제의 정치, 제도, 사회, 문화, 사상, 풍습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정보가 기록되었다. 이는 백제에 대한 북조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백제의 도교문화는 매우 산발적·단편적으로 나타나는데, 북조 사서에 기록된 도교 관련 기록들은 사비기 백제 도교문화의 일면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백제 역시 북조의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먼저,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북제의 상평오수전은 백제와 북조 간 교류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6세기 이래 제작된 불상들에 남조의 요소가 그대로 유지되는 동시에 북조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돌이 불상을 제작하는 주요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점, 북조의 경우처럼 교통로상에서 불상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북조의 영향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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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도교문화:행복으로 가는 길" 2013

    2 박지현, "한국고대 문자자료 연구 백제편-上" 주류성 2015

    3 장인성, "한국 고대 도교" 서경문화사 2017

    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한·중·일 고대사지 비교연구(Ⅰ)-목탑지편" 2009

    5 박경은, "하늘에 올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2013

    6 국립부여박물관, "하늘에 올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7 박윤선, "위덕왕대 백제와 남북조의 관계" 한국역사연구회 (61) : 87-117, 2006

    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흥사지Ⅲ" 2009

    9 정은우, "연구논문 : 예산(禮山) 사면석불(四面石佛)의 미술사적 검토" 백제문화연구소 (34) : 215-234, 2005

    10 김수태, "사비시대 백제의 도교" 한국고대사탐구학회 (32) : 223-254, 2019

    1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도교문화:행복으로 가는 길" 2013

    2 박지현, "한국고대 문자자료 연구 백제편-上" 주류성 2015

    3 장인성, "한국 고대 도교" 서경문화사 2017

    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한·중·일 고대사지 비교연구(Ⅰ)-목탑지편" 2009

    5 박경은, "하늘에 올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2013

    6 국립부여박물관, "하늘에 올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7 박윤선, "위덕왕대 백제와 남북조의 관계" 한국역사연구회 (61) : 87-117, 2006

    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흥사지Ⅲ" 2009

    9 정은우, "연구논문 : 예산(禮山) 사면석불(四面石佛)의 미술사적 검토" 백제문화연구소 (34) : 215-234, 2005

    10 김수태, "사비시대 백제의 도교" 한국고대사탐구학회 (32) : 223-254, 2019

    11 박종욱, "백제의 對中國交涉 航路 - 고구려의 해상 차단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 백제학회 (19) : 127-152, 2017

    12 임동민, "백제와 동진의 교섭 항로" 백제학회 (17) : 83-111, 2016

    13 노중국, "백제사회사상사" 지식산업사 2010

    14 김영심, "백제문화의 도교적 요소" 한국고대사학회 (64) : 363-403, 2011

    15 令木 勉,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20주년 기념 : 백제금동대향로, 고대문화의 향을 피우다" 2013

    16 주경미, "백제 왕흥사지 출토 사리장엄구와 6세기 동아시아 불교문화" 2017

    17 길기태, "백제 사비시대의 불교신앙 연구" 서경 2006

    18 소현숙, "백제 불상에 나타난 중국 불교예술의 영향-마애불을 중심으로" 2018

    19 이병호, "백제 불교 사원의 성립과 전개"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20 박찬우, "백제 동성왕대 대남제 외교전략 - 『남제서』 백제전의 표문을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학회 (85) : 279-320, 2017

    21 김영심, "무령왕릉에 구현된 도교적 세계관" 한국사상사학회 (40) : 211-251, 2012

    22 윤선태, "목간이 들려주는 백제 이야기" 주류성 2007

    23 정동준, "동아시아 속의 백제 정치제도" 일지사 2013

    24 구보 노리따다, "도교사" 분도출판사 55-, 1990

    25 酒井忠夫, "도교란 무엇인가" 민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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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박경은, "韓國 三國時代 古墳美術의 怪獸像 時論" 5 : 198-, 1999

    28 박경은, "百濟金銅大香爐의 圖像과 상징성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2018

    29 김영심, "百濟의 道敎 成立 問題에 대한 一考察" 백제연구소 (53) : 159-19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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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김종만, "百濟 金銅大香爐와 古代東亞細亞" 2003

    33 신광섭, "百濟 金銅大香爐와 古代東亞世亞" 2003

    34 김춘실, "百濟 美術의 對外交涉" 1996

    35 국립부여박물관, "百濟 定林寺와 北魏 永寧寺" 2015

    36 양기석, "百濟 威德王代의 對外關係" 19 : 2003

    37 박순발, "百濟 ‘籠冠俑’ 硏究" 백제연구소 (48) : 33-62, 2008

    38 김춘실, "百濟 7세기 佛像과 中國 佛像" 19 : 2000

    39 소현숙, "泰安마애삼존상의 도상과 성격 - 竝立한 二佛의 존명 추정과 ‘정치적 서상’으로서 가능성 탐색 -" 백제문화연구소 (54) : 45-70, 2016

    40 박현숙, "6세기 백제 백제 대외관계의 변화와 그 의미" 19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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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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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 0 0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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