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전한과 후한의 통치 방식 사이에 확인되는 일정한 변화가 단지 국가권력의 强弱이라든가 혹은 정권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취락의 분포 형...
필자는 전한과 후한의 통치 방식 사이에 확인되는 일정한 변화가 단지 국가권력의 强弱이라든가 혹은 정권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취락의 분포 형태의 변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한대의 묘장 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았다. 즉 본고에서는 묘장의 위치와 취락의 위치가 거의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서 묘장의 분포를 통해 취락의 분포를 추적해 보았다. 기존에 발표된 모든 발굴보고서와 자료들을 동원하고, 또 필자가 직접 실측한 경위도 좌표를 이용하여 현성과 묘장의 거리를 가능한 정확하게 산출해 보았다. 그 결과 전한시대에는 대부분의 묘장이 현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소농민 역시 현성 내부 혹은 인접한 곳에 집중해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점은 전한시대까지 국가권력의 제민지배체제가 관철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후한시대에는 현성 근처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멀리 떨어진 곳까지 넓고 불규칙하게 취락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후한의 이러한 특징은 각종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집단 이산, 호족들의 장원 건설 등으로 말미암아 현성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취락이 형성·분포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전한시대에 비해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취락에 침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물론 후한시대에도 전한시대와 같이 현성 근처에 분포한 취락이 절반에 가깝다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지배체제는 지속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전한시대와 비교할 경우, 후한시대에 들어서 기존과 같은 제민지배체제의 관철이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지배 형태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은 그 원인을 이런 취락 분포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