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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독일 계몽주의의 宋儒 理學적 기초와 그 문화 철학의 의미 -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儒學 理性觀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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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서구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서양 문화 범주에서 벗어난 완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별개의 문명권이었다. 특히 중국 문화는 인격신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종교 신앙 사회 체계와는 달리 인문주의․이성주의가 형성시킨 종법 인륜 체계의 윤리 중심 사회였다. 중국 문화는 흔히 ‘인문성’과 ‘비종교성’으로 특징되며 그 발전 방향은 서양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다. 특히 중국 이성주의의 절정인 송명 이학은 ‘天’의 인격적인 면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숭배와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 문화에서 천은 대부분 도덕적 차원에서 내면화되었다. ‘윤리’가 신성한 존재로서 신의 자리를 대신했던 것이다.중세 서구의 천이 초월적이고 인격적 존재로 인간 심성에 투영되어 종교적 문화를 구성했다면 극동의 중국에서는 천이 도덕적 차원에서 내성화되어 이성주의적 인문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이성주의 문화는 근대 서구가 중세의 종교 시대로부터 근대의 이성 시대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한편 유가의 천도관은 서양 선교사에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그 하나는 마테오 리치와 부베 등의 색은파를 대표로 하는 공자의 외재적 초월을 긍정하는 태도로서 원시 유가에는 종교가 존재했지만 신유학에 와서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타락하여 무신론으로 빠졌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롱고바르디와 생트 마리를 대표로 하는 공자의 외재적 초월을 부정하여 중국 문화를 완전히 무신론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역시 송유 이학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인식은 라이프니츠와 볼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라이프니츠의 서양에서의 중국의 인식에 대한 공헌은 주로 형이상학과 종교 방면에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중국 이해의 총체적인 지평을 토대로 급기야 생애 최후의 저작이자 그의 중국 철학에 대한 종합 분석서인 <중국인의 자연신학에 대한 논고>를 남기게 된다. 그는 예수회의 補儒論에 입각해서 롱고바르디와 생트 마리의 관점을 반박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송유의 ‘리’와 가톨릭의 ‘신’이 완전히 서로 동일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회의 범위를 넘어선 라이프니츠의 특수한 이론이기도 하다. 이처럼 리와 연관된 중국의 유기체적인 성격은 이학에 의해 중국적 세계상이 체계화된 다음에 라이프니츠가 매개가 되어 서양철학사상의 흐름 속에 이식되었다.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계승자이자 독일 계몽 사조의 개창자이다. 볼프의 <중국의 실천 철학>이란 중국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소개된 중국 유교 경전 속의 ‘원시 유학’을 가리킨다. 이처럼 라이프니츠와 볼프 모두가 중국 유학을 찬미하고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라이프니츠가 주로 송대 이학에 관심을 가졌다면 볼프는 원시 유학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볼프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라이프니츠의 자연 신학(형이상학)적 시각을 윤리학적 관점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는 중국 문화 속에는 계시 신앙이나 자연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라이프니츠와의 인식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자연 도덕학의 가능성’과 ‘철학왕의 정제’를 설명하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이 두 문제는 모두 자연율의 기초 상에서 착근된 것이다. 볼프는 중국을 거울삼아 무신론자의 자연 도덕과 정치로 그 자신의 입론의 예증을 삼았다. 라이프니츠와 볼프 모두 서양의 사유 방식으로 중국의 정보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일종의 서양의 ‘중국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견해는 중서철학교류사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서양 중국학의 성립에 있어서도 상당한 계발을 주었다. 그들이 ‘이성’을 중국 철학의 제1원칙으로 파악한 것은 적확했지만, 중국의 윤리를 말할 때 이해한 중국의 이성은 사물의 본원과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 이성’이 아닌 바로 도덕 수양에 근거한 ‘도덕 이성’, ‘자각 이성’이었다. 라이프니츠-볼프학파의 이성 존중이 관념론을 이성론으로 보았을 때 독일의 관념론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국적 ‘도덕 이성’의 개념은 볼프의 윤리학이 매개가 되어 서양의 이성적 함의로 이식되었다. 볼프는 분명 서양의 전통적 방식으로 중국 철학 속의 이성 개념을 해석하고 오독하였다. 더군다나 중국의 ‘실천 이성’과 서양의 ‘과학 이성’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라이프니츠에서 연결되는 볼프의 실천 철학으로서의 ‘중국적 이성’ 읽기의 노력은 이후 근현대 서양 철학사 속에서 그 이성의 함의를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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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서양 문화 범주에서 벗어난 완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별개의 문명권이었다. 특히 중국 문화는 인격신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종교 신앙 사회 체계...

    서구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서양 문화 범주에서 벗어난 완전히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별개의 문명권이었다. 특히 중국 문화는 인격신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종교 신앙 사회 체계와는 달리 인문주의․이성주의가 형성시킨 종법 인륜 체계의 윤리 중심 사회였다. 중국 문화는 흔히 ‘인문성’과 ‘비종교성’으로 특징되며 그 발전 방향은 서양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다. 특히 중국 이성주의의 절정인 송명 이학은 ‘天’의 인격적인 면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숭배와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 문화에서 천은 대부분 도덕적 차원에서 내면화되었다. ‘윤리’가 신성한 존재로서 신의 자리를 대신했던 것이다.중세 서구의 천이 초월적이고 인격적 존재로 인간 심성에 투영되어 종교적 문화를 구성했다면 극동의 중국에서는 천이 도덕적 차원에서 내성화되어 이성주의적 인문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이성주의 문화는 근대 서구가 중세의 종교 시대로부터 근대의 이성 시대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한편 유가의 천도관은 서양 선교사에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그 하나는 마테오 리치와 부베 등의 색은파를 대표로 하는 공자의 외재적 초월을 긍정하는 태도로서 원시 유가에는 종교가 존재했지만 신유학에 와서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타락하여 무신론으로 빠졌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롱고바르디와 생트 마리를 대표로 하는 공자의 외재적 초월을 부정하여 중국 문화를 완전히 무신론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 역시 송유 이학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인식은 라이프니츠와 볼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라이프니츠의 서양에서의 중국의 인식에 대한 공헌은 주로 형이상학과 종교 방면에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중국 이해의 총체적인 지평을 토대로 급기야 생애 최후의 저작이자 그의 중국 철학에 대한 종합 분석서인 <중국인의 자연신학에 대한 논고>를 남기게 된다. 그는 예수회의 補儒論에 입각해서 롱고바르디와 생트 마리의 관점을 반박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송유의 ‘리’와 가톨릭의 ‘신’이 완전히 서로 동일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회의 범위를 넘어선 라이프니츠의 특수한 이론이기도 하다. 이처럼 리와 연관된 중국의 유기체적인 성격은 이학에 의해 중국적 세계상이 체계화된 다음에 라이프니츠가 매개가 되어 서양철학사상의 흐름 속에 이식되었다.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계승자이자 독일 계몽 사조의 개창자이다. 볼프의 <중국의 실천 철학>이란 중국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소개된 중국 유교 경전 속의 ‘원시 유학’을 가리킨다. 이처럼 라이프니츠와 볼프 모두가 중국 유학을 찬미하고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라이프니츠가 주로 송대 이학에 관심을 가졌다면 볼프는 원시 유학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볼프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라이프니츠의 자연 신학(형이상학)적 시각을 윤리학적 관점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는 중국 문화 속에는 계시 신앙이나 자연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라이프니츠와의 인식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자연 도덕학의 가능성’과 ‘철학왕의 정제’를 설명하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이 두 문제는 모두 자연율의 기초 상에서 착근된 것이다. 볼프는 중국을 거울삼아 무신론자의 자연 도덕과 정치로 그 자신의 입론의 예증을 삼았다. 라이프니츠와 볼프 모두 서양의 사유 방식으로 중국의 정보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일종의 서양의 ‘중국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견해는 중서철학교류사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서양 중국학의 성립에 있어서도 상당한 계발을 주었다. 그들이 ‘이성’을 중국 철학의 제1원칙으로 파악한 것은 적확했지만, 중국의 윤리를 말할 때 이해한 중국의 이성은 사물의 본원과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 이성’이 아닌 바로 도덕 수양에 근거한 ‘도덕 이성’, ‘자각 이성’이었다. 라이프니츠-볼프학파의 이성 존중이 관념론을 이성론으로 보았을 때 독일의 관념론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중국적 ‘도덕 이성’의 개념은 볼프의 윤리학이 매개가 되어 서양의 이성적 함의로 이식되었다. 볼프는 분명 서양의 전통적 방식으로 중국 철학 속의 이성 개념을 해석하고 오독하였다. 더군다나 중국의 ‘실천 이성’과 서양의 ‘과학 이성’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라이프니츠에서 연결되는 볼프의 실천 철학으로서의 ‘중국적 이성’ 읽기의 노력은 이후 근현대 서양 철학사 속에서 그 이성의 함의를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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