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作品世界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이여서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주관적인 체험의 世界가 그 現實的이고 구체적인 근원을 찾기 힘들만큼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모호하다고 까지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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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作品世界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이여서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주관적인 체험의 世界가 그 現實的이고 구체적인 근원을 찾기 힘들만큼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모호하다고 까지 비난...
릴케의 作品世界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이여서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주관적인 체험의 世界가 그 現實的이고 구체적인 근원을 찾기 힘들만큼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모호하다고 까지 비난을 받는 그의 表現에는 주관성과 객관성이 내포되어 있어 그 해설의 수 많은 可能性을 제시해 준다. 여기에서 릴케의 참다운 大家的인 편모를 찾을 수 있으며 또한 그의 獨文學史上古典的詩人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말해준다.
이러한 릴케의 詩作世界를 이해하는데 보충的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편지들이다. 그의 편지의 文學的 가치에 관해서 많은 찬사가 부여 되는 理由는 그 수려한 表現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詩에서 얼른 찾아내기 힘든 詩人의 哲學的 立場과 人間觀 및 存在觀을 더욱 분명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詩人의 內面世界의 變化과정을 그 속에서 더욱 역력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편지 속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소홀히 해 왔거나 찾아내지 못했던 적극적인 社會的 의식과 비판정신에 자득차 있다. 人間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內面的 갈등과 모순을 원천적인 것으로 직시하고, 人間에게 선천적인 요소인 그 弱點을 의식시키고 극복하도록 도우려고 하는데 詩人自身의 人道的, 敎育的 의미를 自認하고 있다. Rilke는 人間이 지닌 內面的 갈등과 모순을 쾌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人間이 存在하는 外面의 世界의 모순과 갈등이 바로 이 人間自體의 內面世界의 變化와 그 유동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러한 人間이 지닌 變化와 變形의 可能性을 릴케는 부정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否定的인 面을 直視하고 認定함으로써 좀 더 人間本然의 世界로, 좀더 높은 차원의 人間世界로, 人間이 돌아가기를 주장한다.
人間本然의 資態를 "극복과 긍정"으로 승화시킨 世界, 갈등과 모순, 욕망과 방황을 극복한 調和와 순수의 世界, 이러한 世界란 릴케에게는 天使의 世界를 말한다. 또한 人間의 이러한 조건적 요소라고도 말할 수 있는 갈등과 모순, 욕망과 방황 같은 것을 극복하는 길로 릴케는 "일"(Arbeit)을 통한 무한한 人間의 "자기집중"과 個個人의 "自我의 구현"으로서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릴케에게 종교와 예술의 世界는 人間의 이러한 方向으로 지향해 가는 가장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의 세계이며 그래서 詩人이게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작품이 人間에게는 감명과 의미가 의의를 갖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에서이며 예술가의 그 超人的인 집중과 구현의 과정은 人間生活의 모범으로 삼아지는 것이다. 人間이게 이러한 "순수"와 "극복"의 世界를 구현, 또는 상징해 줄 수 없는 예술작품은 릴케에게는 모두 불건전하거나 未完成品이며, 이러한 方向에서 벗어난 예술활동이나 예술행위는, 人間에게 모범을 보여 줄 수 없다. 기독교에 대한 비난도, "전통"의 의미해석도, 대중과 도시생활의 배타적인 태도로 릴케의 이러한 存在觀과 人間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비판의 태도는 또한 Rilke의 사회의식과 투철한 비판정신의 발로이며, 이 또한 그 裏面에 자리잡고 있는 詩人의 固有하고 확고한 철학적 立場이 있기 때문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兒童의 自由畵에서의 色彩使用量과 人性要因間의 相關 硏究